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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4 19:12 수정 : 2015.01.15 14:34

재야 사학자 김상구 씨.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짬] ‘김구 청문회’ 펴낸 재야 사학자 김상구씨

주류 역사의 통념에 도전해온 ‘재야 역사 연구자’ 김상구(58·사진)씨가 이승만의 친일 행적을 밝혀낸 데 이어 김구를 재해부한 <김구 청문회>(매직하우스 펴냄)를 출간했다. ‘친일파가 만든 독립영웅’이란 도발적인 부제를 내걸어 논란을 각오한 듯하다.

“물론 김구 자신이 친일파였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친일파 부일배들로 이뤄진 한민당으로부터 많은 자금을 받고 그들과 결탁하기도 했다. <백범일지>도 친일파 이광수가 윤문·첨삭한 것으로, 말미의 ‘나의 소원’도 친필본에는 없다. 자료조사를 통해 그게 이광수의 생각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광수가 1928년 <동아일보>에 쓴 ‘젊은 조선인의 소원’이라는 글과 유사하다.”

김씨는 책의 제2권에서, 백범의 차남인 김신씨의 증언을 그 논거로 인용한다. “춘원은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답니다. 아버님은 그의 행실 때문에 망설였는데, 누군가가 글솜씨도 있는 사람이고, 속죄하는 기분으로 맡겠다니 시켜보라고 했대요. 그가 윤문을 한 것은 사실이나, 아버님이 그걸 알고 맡기셨는지 의문입니다.”(‘최일남이 만난 사람’ <신동아> 1986년 8월호)

일찍이 <해방일기>를 쓴 역사학자 김기협씨도 해방 전후사 연구를 하면서 김구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이 깨졌다며 백범의 ‘인간적 한계’를 거론한 적이 있다. 김씨는 “문제는 그보다 더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백범일지>는 우선 역사 서술의 토대가 되는 기초적 사실, 이른바 사료 인용과 해석의 ‘디테일’부터 오류나 왜곡이 의외로 많다.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 이후 퍼져나간 반일운동 당시 백범이 죽였다(1896년 3월)는 ‘쓰치다’는 그의 주장처럼 일본 육군 중위가 아니라 민간 상인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천감옥에 수감된 김구를 사형 직전에 고종이 막 개통된 서울~인천 간 전화로 직접 형집행 정지명령을 내려 살렸다(1896년 윤8월)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김씨가 논거로 인용한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발표 논문을 보면, 궁중과 정부 부처 간 자석식 직통전화가 개통된 것은 1898년 1월, 서울~인천 간 시외전화가 개통된 건 1902년이었다.

<김구 청문회>에는 이런 논란거리가 가득하다. 그는 김구가 돌연 남북·좌우합작을 주장하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것도 우파 내부의 권력투쟁 관점에서 바라본다. 또 김구의 집요한 반탁운동이 결과적으로 남한 단정과 분단 고착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백범의 반소·반공·반탁 노선, 심지어 단독정부 반대와 남북·좌우합작론조차 자신이 대표하는 임시정부 봉대, 즉 자신의 권력 장악을 위한 좌충우돌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승만 친일행적 추적 이어
일제 문서 등 1차사료 바탕으로
‘백범일지’ 사실관계 오류 지적

왜 하필 지금 김구 비판서인가? “부러 시점을 지금에 맞춘 게 아니다. 10년 가까이 준비해왔다. 집필에만 2년이 걸렸다. 정치적 의도 같은 건 손톱만큼도 없다. 누구는 나더러 ‘뉴라이트’라고 하고 또 누구는 ‘좌빨’이라고도 한다. 이쪽 아니면 저쪽 식의 정치적 시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아나키스트에 가깝다.”

그는 2012년에 이어 올해 3월 재발간한 <다시 분노하라: 이승만의 숨겨진 친일행적>(책과나무 펴냄)에서는 이승만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범재 김규흥과 3·1혁명> <전쟁과 기독교: 미 제국의 두 기둥>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 등의 다른 전작들에서도 그의 저돌적인 자료 발굴 노력은 주목을 받았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서굉일(71) 한신대 명예교수는 2일 “일제의 문서 등 프라이머리 소스(1차 사료)를 전거로 제시하는 김씨의 연구는 귀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재준·문익환 목사의 후학이기도 한 서 교수는 “이런 문제 제기를 외면해선 안 된다. 허점도 있을 수 있지만, 피아로 갈려 싸우지만 말고 이를 기쁘게 받아들여 실사구시적으로 함께 논의하고 제대로 검증해서, 우리가 외면해온 사실들을 정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말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우리 미래의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게 책을 쓴 이유다. 김구와 임시정부 등 우파 중심의 역사는 훨씬 더 풍부하고 의미가 컸던 항일독립운동사 전체를 너무 왜소하게 만든다. 역사는 정직하게 써야 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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