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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18 19:09 수정 : 2015.01.15 14:30

강정구 전 평화통일연구소 소장.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짬] 평화통일연구소 강정구 감사

“역사를 좀더 멀리,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2030~50년 기간에 미국-중국 세력교체(새로운 균형)가 완결될 것이다. 그 시기가 한반도 평화통일의 최적기다.”

2004년 9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부설 평화통일연구소의 설립 초기부터 10년간 이끈 뒤 올 1월부터 감사를 맡고 있는 강정구(사진) 전 소장은 그러나 “2020년무렵까지는 미국, 일본이 이제까지의 패권적 기득권 유지를 위해 세력교체라는 역사의 순리를 역전시키려 애를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전략(아시아로의 축 이동)이나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우경화 가속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즉 아베의 도발은 말하자면 ‘미국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는 이 과도기적 변화를 제대로 파악해서 자주적·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또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했다. “2차대전 뒤 냉전체제로 가는 과도기에 나라가 분단되고 전쟁까지 치렀다. 그 전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도 광해군의 실용적 접근을 뒤엎고 망해가던 명나라를 섬기자는 대명 사대주의자들의 인조반정으로 병자호란의 참화를 자초한 면이 있다. 청조말 과도기의 잘못된 대처가 청일전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한반도는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 비극을 두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강 고문은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만 대처한다면 엄청난 기회, “진짜 ‘통일 대박’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과도기라는 결정적 시기의 방향 설정은 10도만 틀리게 잡아도 그 뒤의 결과는 180도 달라진다. 지금의 결정이 우리의 50년, 100년 뒤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문제의식과 인식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미-중 세력 교체 완결 시점인
2030~50년 남북 평화통일 최적기
결정적 시기 대처 못하면 또 위기


연구소 설립부터 10년간 소장 맡아
주한미군 철수·군축 논의 금기 깨
22일 평통사 20돌·연구소 10돌 행사

그는 감사라지만 “회계감사가 아니고 업무감사”여서, 연구작업 등 실무 책임에선 좀 벗어났으나 연구의 방향과 과제 설정, 평가 등을 연구원들과 함께 논의하는 업무의 연속성이 여전히 강하다고 했다.

“10년 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군사·안보·외교 분야의 실천활동에 필요한 전문성과 대안 제시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는 요구가 평통사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한데 그런 분야는 이른바 ‘냉전영역’이어서 학계에서도 심층 연구를 꺼렸고, 시민사회나 민중운동 세력도나 그 영역에 손대기가 어려웠다. 그 분야는 군부(국방부)나 외교부, 청와대, 그리고 미군과 미국의 국무·국방부 쪽이 거의 정보를 독점했다.”

평화통일연구소는 바로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시민사회·민중세력의 군사·안보·외교 분야 전문지식 등 대응역량을 프로 수준으로 끌어올려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냉전적 정보·지식 독점체제와 맞장뜨기를 하며 잘못된 논리를 격파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없이, 약 3천 명 정도 회원의 자발적 회비로만 운영되고 있다.

창립 10돌을 맞은 지금 그는 “전문성 확보에선 충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성역이 꽤 많이 허물었다는 자부심도 피력했다. “주한미군 철수나 군축, 한미 군사동맹 폐기 같은 주장은 이 전엔 입에 올릴 수도 없는 금기였으나 이젠 하나의 운동으로서 합법적 시민권을 획득했다.” 오혜란 평통사 전 사무처장이 그런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인천지검 공안부로부터 국가보안법상의 북체제 고무찬양·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기소됐으나 지난 2월 1심 판결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그는 “정부도 평통사 덕을 많이 봤다”고 했다. 주한 미군 전략적 유연성 논의 때 한국을 전 세계 진출 전초기지로 삼으려던 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적용지역이 아시아태평양까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평통사는 그 적용범위가 한반도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조약 내용 검토로 재확인했다고 했다. 2014~18년 한미 ‘방위비분담금’ 제9차 협상 때 미군은 비인적(非人的) 주둔비의 한국 부담이 40~45%에 그친다며 일본처럼 5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평통사는 미 의회자료 등을 검색해 미국 주장대로 하더라도 이미 한국이 일본보다 더 높은 65%를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94년 고 홍근수 목사(2013년 작고)를 중심으로 결성된 평통사(상임대표 문규현 신부)는 오는 22일 서울 효창동 백범연구소에서 여는 ‘20살 평통사, 가슴이 뛰네’ 기념행사에서 평화통일연구소 10돌도 함께 축하한다.

연구소는 ‘한-미관계 새판 짜기’를 내걸고 그동안 4권의 단행본 시리즈와 30여종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전쟁과 분단을 끝내는 한반도 평화협정>(2010)은 정전협정 대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그뒤 3년 안에 외국군과 기지를 철수하는 방안과 구체적인 절차들을 담았다.

“대미 추종적인 군사·안보·외교 분야 고위관료들은 미국이나 일본이 바라는 그런 것들을 앞장서서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야 자신들의 지위와 출세도 보장될 테니까. 막스 베버는 일단 목표가 주어지면 이를 위해 수단을 합리화해 무한추구하는 관료들의 속성을 경계하면서 그걸 무너뜨리는 게 정치가의 할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과도기, 이 결정적인 시기에 우리 정치 리더들에게 그런 인식이 전혀 없어 보인다” 강 고문은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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