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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01 19:09 수정 : 2015.01.15 14:28

명연파 평품집 집장. 사진 평품집 양은영씨 제공

[짬] ‘평화를 품은 집’ 문연 명연파 집장

지난 9월27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자유로를 따라가다 임진강에서 1.7㎞, 이 강의 한 줄기 파평천을 20m 앞에 두고 황톳빛 나무집 세 채가 나란히 둥지를 튼 야트막한 밤나무숲 산자락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어섰다. 민간에서 지은 국내 첫 평화복합시설 ‘평화를 품은 집’(평품집)이 문을 여는 날이다. 명연파(55·사진) 평품집 집장은 손님맞이에 행사 주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임진강이 바로 앞에 있고 남북 분단의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DMZ) 가까운 곳에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안보관광, 통일전망대, 땅굴관광은 있어도, 구호가 아닌 내용으로 평화를 공부하고 교육하는 공간이 없었다. 민간 차원에서라도 씨앗을 뿌리고자 평품집을 열게 됐다.”

뜻을 세워 터를 구한 지 11년, 첫 삽을 뜬 지 1년6개월 만에 평품집이 일반인을 위해 활짝 문을 연 것이다. 평품집은 평화를 주제로 한 특성화 도서관인 평화도서관과 ‘닥종이 인형으로 만든 (일본군)위안부’전이 상설로 열리는 다락갤러리, 다큐멘터리·영화를 상영하는 평화품은소극장(평품소극장), 근대 100년 동안 벌어진 대량학살(제노사이드) 역사를 갈무리해 놓은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전쟁 반대와 평화 주제의 책을 내는 꿈교출판사를 품고 있다. 올봄에 평화도서관과 평품소극장이 먼저 문을 열었고, 8월에 다락갤러리가, 이번에 국내 첫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이 완성되면서 비로소 완전히 문을 열게 됐다. 툭툭 떨어지는 밤을 주우며 평품집 안쪽 모퉁이를 돌면 북카페 빵집 소라브레드가 있어 밤나무 아래 탁 트인 발코니에서 책과 차, 커피, 빵을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다.

평품집은 명 집장과 황수경 꿈교출판사 대표, 양은영 팀장, 박소현 편집자 등 활동가 5명을 비롯해 “무수한 이들의 도움과 재능기부”로 만들어졌다.

명 집장은 특히 제노사이드 역사관에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근대 100년 동안 세계에서 벌어진 학살사건 가운데 희생자가 30만명이 넘는 대량학살로, 킬링필드(캄보디아), 르완다, 난징, 아르메니아, 나치 홀로코스트 등 5개 사건의 역사와 증언·사진·동영상 자료를 전시해 놓았다. 국내에 처음 생긴 제노사이드 역사관이다. “제노사이드 역사관이 필요한 이유는 평화교육이다. 대량학살의 밑바닥에는 다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놓여 있다. 그래서 분쟁과 폭력이 발생하고 사람을 죽인다. 대량학살은 다름을 인정 않는 피라미드의 마지막 결과일 뿐이다.” 명 집장은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교에 알리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집을 따로 지어 제노사이드 역사관을 확대할 꿈을 품고 있다.

민간 첫 평화복합시설 최근 개관
출판업 30년 헌신하다 ‘집장’ 변신
평화 테마 북카페·소극장·갤러리에
국내 첫 ‘제노사이드’ 역사관 눈길
“대량학살은 다름 인정않아 발생…
평화교육 개발하고 역사관 키울것”

“2009년 제주를 찾았다가 제주4·3평화기념관 한 귀퉁이에서 제노사이드 관련 자료를 보았다. 지구상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이렇게 모르고 있구나. 접경지역 파주에서 대량학살 문제를 통해서 평화를 이야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평품집 제노사이드 역사관은 제주4·3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날 오전 평품식 개관 행사는 ‘퀴부카’(‘기억하라’는 뜻의 르완다 말)를 주제 삼은 ‘100개의 촛불 켜기’로 시작됐다. 1994년 르완다에서 100일 동안 희생된 100만명을 기억하며, 르완다 대량학살 영상과 단편영화 상영, 희생자 추모시 낭독이 이어졌다. 개관 행사에는 정근식 한국제노사이드학회 회장,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이해동 목사, 권윤덕 그림책작가를 비롯해 150여명이 참가했다.

평품집의 월례 공부모임을 함께하고 있는 작가 권윤덕씨는 “지난달엔 제주4·3에 대해 공부했는데, 오전에 공부하고 오후에 소극장에서 영화(<지슬>)를 보았다. 영화의 여운 속에 다들 아무 말도 않고 소라브레드 북카페에 부스스 나와 앉아 차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저 앞길에서 탱크들이 훈련한다고 줄지어 지나가더라. (전쟁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곳에서 평화를 공부한다는 의미가 너무도 실감이 났다. 평품집은 평화를 배우고 휴식도 하고 숲과 자연이 큰 위안을 주는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평품집은 꿈교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판매하여 운영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선 권 작가를 비롯한 5명의 그림책작가와 공동 기획하여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과 제주4·3항쟁 등을 형상화하는 ‘평화를 품은 그림책’ 시리즈를 펴낼 예정이다. 올봄 평화도서관 등이 먼저 문을 열면서 “지금까지 알음알음으로 가족·학교·단체·소모임 단위로 주말엔 30~50명, 주중엔 하루 10~20명가량이 꾸준히 평품집을 찾아왔다”(황수경 대표)고 한다.

평품집은 평화캠프, 인권·환경캠프, 1박2일 교사 워크숍, 계절학기를 비롯해 어린이와 청소년, 어른을 위한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운영할 계획이다. 그냥 쉬러 가도 된다. 숲속 평화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북카페에서 우리밀 천연발효빵과 핸드드립 커피를 즐기면 그만이다. 문 여는 시간은 4~9월 오전 10시~오후 6시, 10월~3월은 오후 5시까지다.

명 집장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1983년부터 30년간 일하다 지난해 말 부사장직에서 퇴직했다. 한국 출판의 한 시대를 풍미한 출판영업자였다. 평품집 일에 전념하려고 그만뒀다고 했다. “30년 동안 영리 목적의 일을 열심히 했으니, 이제 자기 몫을 취할 게 아니라 어느 시점에선 그동안 일한 것을 다시 돌려줘야 갈 수 있겠다, 죽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어떻게 가요, 안 돌려주고.”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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