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바라 게이고 자막회사 ‘니시가하라 자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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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한국영화 일본어 자막 전문업체 하야시바라 게이고 대표
대학 조선어과 전공 서울대 연수도
위성방송 한국 드라마 자막 ‘알바’ 고래사냥·남부군·남영동1985…
한국 현대사 다룬 작품 대부분 소개
새달 ‘또하나의 약속’ 시민펀딩 계획 1975년 일본 돗토리현에서 태어난 하야시바라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88년 서울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그 시절 한국에서도 그랬겠지만, 일본에서도 국제교류 등을 멋있게 생각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그는 90년 다니던 중학교가 부산의 중학교와 자매 교류를 하게 돼 처음 한국 땅도 밟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학생들에게 한국은 ‘독재’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그는 “같이 왔던 일본 학생들이 한국 친구들에게 ‘한국에선 왜 맨날 데모를 하느냐’는 질문을 했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는 94년 도쿄외국어대학 조선어과에 입학했다. 96년에는 서울대 언어학과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재학하며 한국 사회를 체험했다. 한국의 학생운동이 쇠퇴해가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의 구속 등을 빗대 ‘거제도에선 멸치는 안 잡혀도 손자는 잡힌다’는 싸늘한 유머가 맴돌던 시절이었다. 그 뒤 98년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는 돌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무렵 일본엔 한국 문화를 소개하던 위성방송 <케이엔티브이>(KNTV)가 있었다. 그는 98년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시절 선배의 소개로 이 방송에서 일본어 자막을 다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작업한 것은 ‘베스트 극장’ 등 한국의 단막극이었다. “그땐 비디오에 자막을 다는 장비가 비싸 직접 방송국으로 가서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1시간짜리 작품에 자막을 다는 데 무려 30시간이 걸렸다.” 그로부터 15년, 그의 손을 거친 한류 콘텐츠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너무 많아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는데 분명 200편 정도는 넘을 것”이라며 웃었다. 많이 알려진 작품만 해도 <모래시계>, <주몽>, <발리에서 생긴 일>, <드림 하이> 등이 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한 뒤 10년 동안은 한류 붐으로 일감이 많아 정작 한국 여행은 꿈도 못 꿀 정도였다. 그러나 한류 붐이 서서히 꺼져가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번역은 하청을 받는 일이기 때문에 일감이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그 무렵 그의 눈에 띈 것은 2009년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 출연한 배우 이미숙이었다. 처음 한국 문화를 접했을 때 봤던 영화 <고래사냥>(1984)에 출연했던 바로 그 배우였다. 그는 5년 동안 모은 자금을 털어 <고래사냥>의 판권을 산 뒤 2012년 일본어 자막을 넣은 디브이디(DVD)를 제작했다. “왜 그랬느냐고요? 저는 88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을 ‘1차 한국 붐 세대’라 부릅니다. 당시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고래사냥>이 들어 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이들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다 보면 그 세대들이 다시 모여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종의 스몰 비즈니스죠. 물론 이런 영화는 10년, 20년이 지나도 한두장 팔리기 때문에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후 하야시바라는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재일한국인 양심수의 재심 무죄와 원상회복을 쟁취하는 모임’의 김정사 이사장과 만남을 통해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과 <남영동 1985>(2012)를 일본에 소개할 수 있었다. 그는 “‘남영동…’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영화를 일본 사회가 받아들이는 틀을 만들자는 게 목적이었다. 한국의 사회성 있는 영화를 지속적으로 일본 관객들이 볼 수 있고 또 그게 한국 영화계에 도움이 된다면 사업적으로 이익이 남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가장 큰 과제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피해자 황유미씨의 사연을 다룬 <또 하나의 약속>의 일본 상영이다. 새달 중순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상영할 예정이지만, 현재 가진 것은 정식 판권이 아닌 일본에서 4차례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판권외 권리’에 불과하다. 그는 “한국에서도 ‘크라우드펀딩’(시민투자)을 통해 이 영화를 만들었듯 일본에서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판권을 구입할 자금을 모아보면 어떨까 궁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역시 일본 사람들은 ‘일을 벌여 잘 안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아요. 일단 저지르고 보는 한국의 행동주의가 부럽습니다.” 한-일 문화교류의 목적은 양국 시민들이 문화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역사의 아픔을 이해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욘사마와 케이팝을 앞세운 한류가 시들한 지점에서 하야시바라의 도전이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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