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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05 19:00 수정 : 2015.01.15 14:21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짬] ‘민중사상 특강’ 여는 백기완 선생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세월호 참사…. 민중의 생존권이 걸린 투쟁 현장이라면 팔순 노구를 이끌고서 기꺼이 달려가는 재야의 어른 백기완(81·사진) 통일문제연구소장. 그가 팔십 평생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터득해 온 민중사상을 강연 형식으로 풀어놓는다. 오는 21일 저녁 7시30분 서울 종로 조계사 안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리는 ‘2014 백기완의 민중사상 특강’이 그 자리다. ‘나는 왜 따끔한 한모금에 이리 목이 메는가’라는 주제로 펼치는 이 특강에서 그는 버선발 이야기, 저치가는 이야기, 멍석마리 이야기, 쇠뿔이 이야기, 달거지 이야기 등 집안 어르신과 농어촌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민중정서와 민중사상을 강의할 예정이다. 3일 낮 서울 대학로 연구소에서 백 선생을 만났다.

돈없고 배우지 못하고 집없다고 ‘괄세’
글 아니라 온몸으로 깨우친 ‘민중사상’
달거지·멍석마리·쇠뿔이…이야기 풀어

50년대 도서관 뒤져도 ‘민중’ 단어 없어
“글줄 아는 놈들이 죽였구나” 깨달아
한평생 ‘저항·해방’ 민중이야기 찾아

“1954년 여름이었어.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덕산리로 농민운동을 갔을 때였는데, 바닷가에 수천명의 뼈다구가 철~썩 철썩, 물결에 휩쓸리고 있더라구. 이장 말이, 6·25 전쟁통에 남쪽 북쪽 군인들 죽은 걸 치우자니 빨갱이로 욕먹고 안 치우면 게으르다고 욕먹는 상황이라는 거야. 내가 그걸 모아 산을 만들었어. 막소주 부어 놓고 소주 마시며 한없이 울었지. 그리고 내가 바다로 뛰어든 거야. 뼈다구를 바다에 던졌었거든. 그 뼈다구를 다시 건지겠다고 뛰어든 거지. 그러다가 간신히 구출돼서 달 뜬 밤에 난 뻗어 있었어. 그런데 웬 노인이 다가오더니, ‘이거 봐, 저 달이 잠긴 바다에는 몹쓸 놈들을 다 처넣고 달거지를 해야 돼. 왜 젊은 놈이 뛰어들어?’ 이러는 거야. ‘달거지’란 말을 그때 처음 들었지. 거짓말하고 못된 짓 하는 놈들을 바다에 집어넣고 달을 건져오게 하는 옛 풍속이 바로 달거지야.”

누구는 이 이야기를 단편소설감이라고도 했다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몸으로 살고 쓴 것이어서 소설과는 다르다”고 백 선생은 강조했다. 그는 21일 강연에서 민중정서에 대한 이야기 세 가지와 민중사상 이야기 세 가지를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실은 열가지 백가지가 넘지만 강의를 한시간으로 쭐쿼(줄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괄세를 받으면서 살았어. 첫째로는 돈이 한푼도 없다는 거야. 어린 나이에 고향 떠나 서울 와 가지고 7년 동안 10원을 못 써 봤어. 그렇게 돈이 없다 보니 사람대접을 못 받았지. 둘째로는 학교 안 댕긴다고 또 날 괄세하는 거야. 세번째로는 집이 없어서 괄세를 받았지. 그러니까 나는 민중사상과 정서를 말이나 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야.”

민중사상 특강 제목에 ‘따끔한 한모금’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데 대해 부인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눈물이 바로 따끔한 한모금”이라는 말로 이 제목에 대한 애착을 설명했다.

“50년대 중반이었어. 노동판에서 막일을 하고서 보름쯤 되면 돈을 주거든. 그래야 밥을 먹으니까. 그런데 그것도 안 주더라고. 메칠 있다 오라는 거야. 그래서 밥을 굶은 채 만리동 고개를 넘어가다가 내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어. 그런데 그때 갑자기 따끔한 한모금을 마시고 싶더라구. 공짜술을 마시려고 명동으로 갔더니 명동 술꾼들이, 거지새끼가 밥을 빌어야지 술을 빈다며 길바닥에 메다꽂더라구. 그놈들한테 민중의 염원이 담긴 옛이야기를 해 줬지. 그랬더니, 이야기를 하려면 희랍신화나 영웅호걸 이야기를 해야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지랭이 얘기가 웬말이냐는 거야. 그런 이야기들은 성인대덕들의 고담준론에 의해 도태된 지 수백 수천년 됐다는 거지. 또 그놈들이 말하길, ‘가난한 놈 얘기 자꾸 하는 걸 보니까 너 빨갱이로구나’ 이러는 거야. 매를 직사하게 맞았지. 폭력으로 보복할 일이 아니라 진짜 민중사상이 뭔지 알려줘야겠다 싶어 도서관에 갔지. 책을 여러권 봐도 민중 얘기는커녕 민중이라는 낱말도 없어. ‘민중의 사상, 삶의 역사, 이야기는 글줄 아는 놈들이 수천년 동안 죽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지. 그럼 민중의 사상을 말할 실증적 자료는 어디에 있나? 민중의 이야기 속에 있는 거야. 민중의 얘기를 한번 들어봐. 하잘것없는 옛날 얘기 같지만, 저항과 해방의 논리가 완전히 농축돼 있는 게 옛날 얘기야. 내가 그것 때문에 60년을 싸웠어.”

특강에서 그가 집안 어르신과 가족한테 들은 이야기며 농어촌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민중사상에 대해 설명하게 된 까닭이다.

“사람은 글을 쓰든 뭘 하든 ‘진짜’ 사람을 만나러 다녀야 해. 자꾸 글만 읽으려 하지 말고. 글만 읽어서는 소시민적 한계에 갇히고 마는 거야. 냇가나 바닷가에 가면 작은 모래구멍에 사는 작고 새까만 벌레가 있어. 그 작은 구멍을 자기의 소우주라고 알고 있는 미물이지. 그 구멍에다 대고 ‘만만이 꼬끼오~!’ 하고 소리치면 벌레는 금방 죽고 말어. 자본주의 문명이 우리 모두를 그 벌레처럼 만들었어. 우리가 왜 썩어문드러진 자본주의 문명을 깨부술 물살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거냐고. 내가 보기에는 생각 따로 있고 삶 따로 있기 때문이거든. 저항이니 해방이니 하는 걸 낱말로만 이해하고 실제로는 소시민적 갈망에 다 용해돼 버리는 거야. 소시민적 한계에 갇히지 않고 계급해방과 자기해방을 곁들이자면 싸우는 현장을 늘 가까이해야 하는 거야.”

백 선생은 이번 특강이 소시민적 체질에 오염된 세상에 던지는 벼락, 허위와 회유의 ‘띠따 소리’(거짓 소리, 못된 소리)를 깨부수는 ‘괏따 소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사 제목도 일러주었다. ‘세상 사람들아, 이 피맺힌 괏따 소리를 들어라!’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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