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서울시극단장.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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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연극 ‘봉선화’ 예술총감독 김혜련 서울시극단장
충격·상처·공감·치유의 과정 담아
‘에미 이름은…’ 원작자 윤정모 극본 동포들 후원으로 여름 한달 미주순회
내년 일본 공연 추진중 중국도 요청
“한국 콘텐츠는 원석…문화대혁명 필요” 원작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토대로 작가 윤정모가 극본을 쓴 ‘봉선화’는 지난해 9월 초연 뒤 올 4월 앵콜공연을 거쳐 7~8월 약 1개월간 미주 순회공연까지 성공리에 마쳤다. 지금껏 모두 50여회 무대에 올려졌다. 작가 윤씨와 70년대 중반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기도 한 김 단장은 “성노예 피해자들은 바로 우리 어머니들이다. 윤 작가가 정말 절묘한 대화체로 감정이입을 이끌어 그 아픔을 제대로 알게 해준다”고 했다. 20년이 넘는 뉴욕 생활을 마감하고 2009년 영구귀국한 뒤 공모 과정을 거쳐 지난해 2월부터 서울극단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봄 앵콜공연 때 마침 한민족대회 등에 참가하러온 미주 동포들이 보고 미국에서도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공연팀의 체제비와 극장 대관료 등 모든 경비도 현지 동포들이 지원했다. “로스앤젤레스 2회·시카고 1회·뉴욕 2회 등 모두 5회 공연을 했다. 한 번은 공연이 끝났는데도 한참동안 침묵만 흐르다 조금 뒤에야 누군가의 신호로 박수가 쏟아졌다. 관객들에 물어보니 너무 먹먹해서 말을 할 수 없다며 묻지도 말라고 하더라.” “대형 뮤지컬은 한 편의 극장 세트비용만 50억원이 넘는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한 작품당 겨우 3억원 남짓이다. 이번 공연 예산은 1억7천만원인데, 일부를 다른 급한 용도로 빼다 쓰는 바람에 어려움을 더 겪었다.” 그는 조건에 맞추자면 말이 안 되는 일을 자신이 벌였다며, “결제를 좋아하는” 파당적 ‘문피아’들에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문화를 창조해야 할 현장 문화인들이 되레 창조당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필요하다.” 김 단장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없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안톤 체홉과 셰익스피어를 떠올리며 “우리 작품도 제대로 번역해서 국제 무대에 올리고 싶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해진 것도 자기 것을 지켜냈기 때문이 아니냐”고 했다. “스무살도 안 된 대학시절 연극을 시작하면서 멋모르고 번역극들을 했지만, 나이 마흔 넘어서는 번역극을 한 적이 없다. 지금도 입센이다 뭐다 외국 유명 작가들 작품 공연에 대해서는 대문짝만하게 다루고 논문까지 써대지만 국내 창작극에 대해선 글 한 줄 제대로 쓰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짓을 했더라도 유명세를 타는 이들 공연이라면, 보잘 것 없는 번역극이라도 대서특필하지 않는가.” 이런 문화 현실도 “결국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 탓”이라며 이런 말도 했다. “20여 년 뉴욕에서 죽어라고 일만 했다. 거기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눈물나게 실감했다. 한국인들에겐 노예근성이 없다. 독립적이고 주인의식이 너무 강해 어딜 가도 잘 산다. 낯선 곳이나 개척지일수록 더 빨리 주인으로 자리잡는다.” 그가 2009년 영구귀국한 것도 “한국인의 뛰어난 컨텐츠, 그리스·로마 못지 않은 고유의 컨텐츠를 발견했기 때문”이며, “그것을 공연화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지 않은 순수예술로서의 가치를 발현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서구에서 일본, 중국의 컨텐츠들은 이미 다 써먹어 소진됐다. 한국 컨텐츠는 원석 그대로 남아 있다. 바깥에서 보면 그런 게 잘 보인다. 일부 그런 데 착안한 시도들이 없지 않으나 국적불명이다. 나도 그 방법을 계속 탐구하고 있는데, 연극방법론을 활용해 역사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려대 영문과(66학번) 1학년 때부터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한 김 단장은 이른 결혼 뒤 육아 때문에 잠시 중단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연극 활동을 했고 중앙대 대학원에도 다녔다. 84년부터 뉴욕대 교육연극과에서 석사학위를 딴 뒤 제3세계 연극을 미국에 가장 먼저 도입한 현지 극단 라마마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극단 서울’을 창단하고 뉴욕 아시아청소년교육연극단 대표도 지냈다. <엘에이 라디오 코리아>의 공동설립자인 ‘5촌 당숙’ 김병우씨와 24시간 방송 <라디오코리아 뉴욕1480>을 운영하면서 “우리는 교포가 아니라 동포입니다”라는 캠페인도 벌였다. 또래보다 훨씬 젊어보이는 그는 세상 사람들이 나이든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제야 세상을 좀 알겠고, 일도 좀 하겠다 싶고, 하면 참 잘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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