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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30 19:13 수정 : 2015.01.11 17:46

전영애 서울대 교수.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짬] 후학들 위해 ‘여백서원’ 연 전영애 서울대 교수

통유리로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시정 주변은 전 교수의 시 선생님인 라이너 쿤체(독일)의 정원이다. 나무마다 쿤체의 시가 대리석에 새겨져 있다. 제목이 ‘당부 그대에게’라는 시에 눈이 간다. “나보다 일찍 죽어요, 조금만 일찍/ 당신이 아니도록/ 집으로 오는 길을/ 혼자 와야 하는 이” 절절히 사랑하는 마음이 뚝뚝 묻어난다.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진다.

“낙엽이 쌓인 괴테 길을 산책해 보실래요?” 산을 휘감아 도는 비탈길에 손수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큰 나무 밑에는 괴테의 시가 간간이 돌에 새겨져 있다. 언덕 정상에는 철골 구조물이 높이 자리잡고 있다. 전망대다. “제가 키가 작잖아요. 겨우 150㎝예요. 그래서 높이 올라가 멀리 보고 싶었어요. 올라가 보세요. 석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사춘기 소녀의 심성이다. 3층 구조물에 올라서니 멀리 산들이 겹겹이 물결친다. 내리막길에는 괴테의 시가 없다. “시를 읽다가 미끄러질까봐서 일부러….” 배려심이 넘친다.

전체 수석으로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전 교수는 2011년 동양인으로는 처음 독일 바이마르 괴테 학회가 주는 ‘괴테 금메달’을 수상한 세계적인 괴테 문학의 석학이다. 초등학교 시절 왕복 11㎞를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가난했지만 부모님은 공부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다. 16살에 시집온 어머니(김한섭)는 비록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한글을 깨쳐 한지에 일일이 붓글씨로 쓴 직접 만든 책은,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할 정도로 읽고 또 읽은 흔적이 진하다.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아버지(전우순)는 영주고 교사로 평생 사셨는데, 허벅지가 상처투성이였단다. 공부할 때 졸지 않으려고 자전거 바퀴살로 때려서 그렇다고 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라는 게 아버지의 신조였어요.”

‘괴테 금메달’ 수상한 괴테 전문가
10년간 틈틈이 준비 오랜 꿈 이뤄
정원·산책로엔 쿤체·괴테 시 새겨
“숙박비·예약 걱정말고 그냥 와요”

부친이 평생 모은 1억원 보태
증조부도 도산·소수서원 원장 역임
매월 마지막 토요일마다 모임
“남은 인생은 서원지기로 살 생각”

‘여백’은 아버지의 호다. 여든다섯살에 킬리만자로 정상에 올라 화제가 됐던 아버지는 한 달에 용돈을 30만원도 안 쓰면서도 딸이 정자를 짓는다니까 평생 모은 돈 1억원을 딸에게 줬다. 전 교수는 그 돈에 자신의 전세금을 보태 서원을 완성했다. 전 교수의 증조부와 고조부도 서원을 지었다. 증조부는 도산서원과 소수서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여백서원 규모는 땅 3966㎡(1200평)에 산 6611㎡(2000평), 건물이 165㎡(50평) 정도다. 독문학 관련 서적이 가득한 서고도 있다. 독일 학자가 기증한 1819년에 출판된 괴테의 <서동시집>과 1854년 판본의 <파우스트>가 서고 한편에 소중히 보관돼 있기도 하다.

10년 전 전 교수는 친구와 250만원씩 500만원을 모아 작은 폐옥을 집필실 용도로 사며 여주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 몇년 동안 여백서원에는 ‘오마토’와 ‘시마토’라 부르는 5월과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모임에 30여명의 손님들이 북적였다. 1년에 두 번 제자들이 모이는 날이다. 전 교수가 1996년 서울대 부임 이후부터 맡고 있는 교양강좌 ‘독일 명작의 이해’를 수강한 제자들이 대부분이다. 서울대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손꼽히는 전 교수의 수업은 카프카, 토마스 만, 헤세 등 독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읽고 감상문을 쓴 후 자기 글과 다른 수강생들의 글을 엮어 학기말에 ‘책’을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제 수업에는 교재가 없어요. 종이가 귀하고, 내가 쓴 글이 귀하고, 남이 쓴 글을 귀하게 여기라고 책을 만들어 제출하게 해요.”

이제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월마토’ 모임을 갖는다. 누가 올지 모른다. 전 교수는 기다리지 않는다. 오면 반가워 좋고, 안 오면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이제 남은 인생은 서원지기로 살 겁니다. 여주에 도자기를 굽는 이가 많으니까 저는 시를 굽는 역할을 할 겁니다. 또 신통한 젊은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치는 ‘박수부대’ 역할도 할 것입니다.”

최근 산문집 <인생을 배우다>(청림출판)를 펴낸 전 교수는 “쉬고 싶을 때 오세요. 서원에 오면 모르는 이도 친구가 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정말 아무 프로그램이 없어요.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쉬는 자리길 바라요.”

서원의 다락에는 깨끗한 침낭 20개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여주/글·사진 이길우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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