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대 교수.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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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제주 오름 전문가 신영대 교수
제주인들 품어주고 치유해주는 공간
중산간 지역 무차별 관광개발로 위기 호텔 근무하며 풍수·역학 10년 독학
30대때 제주 정착 오름 연구서 출간
중문학 박사·태극권 사범·시인 등단도 지난 5일 오후 신 교수는 제주도 동쪽 가장 끝에 위치하고 있는 용눈이 오름을 올랐다.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상에 오르다가 오래전부터 수련한 태극권 한 초식을 한다. 구불거리는 부드러운 3개의 능선이 신 교수의 내공 깊은 팔 사위와 어울려 기를 뿜어낸다. 순간 구름이 몰려들었고, 눈보라가 치기 시작한다. 가을의 끝을 힘차게 잡고 버티고 있는 갈대가 소리를 내며 누웠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흩날리는 눈은 점차 굵어진다. 오름 능선에 오르자 요란한 천둥과 번개가 친다. 마치 누워 있던 용이 용틀임하며 오르는 형국이다. “오름에 오르는 순간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느낌입니다. 오름은 그리움의 대상이고, 모든 상처를 어루만져 줍니다. 오름은 사색의 공간이고 물음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제주인들에게 오름은 의지처입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위로를 받고 치유를 받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한동안 대지를 뒤흔들던 천둥과 번개가 사라지고 다시 구름 뒤에 가렸던 밝은 햇살이 오름의 속살을 비춘다. 신 교수는 “미래의 제주는 오름을 떠나선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라산은 어미닭이고, 368개 오름은 병아리입니다. 어미의 품에 안긴 병아리처럼, 오름은 다시 인간을 품고 있습니다. 세계 그 어느 지역도 흉내내지 못하는 제주만의 색깔과 특색이 바로 오름입니다.” 그래서 신 교수는 해안선 중심의 올레길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오름을 연결하는 ‘오름길’은 진정한 제주의 생태와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길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신 교수가 최근 중국 자본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며 ‘개발 광풍’에 휩싸인 제주에 해안선 지역뿐 아니라 중산간 지역의 개발도 마구잡이로 이뤄지고 있는 것을 크게 걱정하는 이유는 해안선에 밀집한 제주 주민들이 마시는 식수는, 빗물이 중산간의 오름에 스며들어 시간이 흐른 뒤에 해안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천박한 경제개발 논리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는 제주의 환경을 지금부터라도 보호해야 합니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제주 환경보존을 위한 모임을 만들기 시작한 신 교수는 제주 출신이 아니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그는 어려서부터 산천을 좋아했고, 풍수와 역학, 신선사상 등에 심취했다. 마을에 상이 나면 장지에 가서 유심히 묫자리를 살폈다. 좋은 땅을 가려 묘지를 쓰는 이유와 사람의 운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고전을 열심히 읽은 그는 졸업 후 호텔에 취직해 10여년 근무하면서도 전국의 명찰, 명당 등을 살피며 역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0대부터 본격적으로 역학, 풍수지리, 관상법, 단학 등을 연구한 신 교수는 30대 중반부터 제주에 정착해 산세와 하천 등 제주의 풍수와 문화를 연구했다. <제주의 오름과 풍수> 등 제주 오름에 대한 책을 쓰면서 10여년간 사회인들을 대상으로 풍수지리를 강의하고 있기도 하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을 소재로 풍수분야 스토리텔링을 하기도 했다. 뒤늦게 중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까지 따낸 신 교수는 40대부터 중국 산둥성에서 각종 유파의 태극권을 사사했고, 2005년에는 산둥성에서 열린 국제태극권대회에서 금메달 2개를 따기도 했다. 한시(漢詩)로 시인 등단까지 한 신 교수는 “도를 수행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이제는 생활 속에서 수행이 이루어져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며 “도덕이 회복되고 인정이 넘치는 참다운 세상을 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제주/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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