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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5 19:36 수정 : 2015.01.09 16:55

환경운동가 박중록씨

[짬] 낙동강 하구 지킴이 환경운동가 박중록씨

‘새로 생긴 모래톱’이란 뜻의 신자도에 어선이 멈췄다. 1980년대 말 생겨난 이 모래톱은 바다 풍랑으로부터 낙동강을 보호하려는 듯 두 팔을 벌려 낙동강 하구를 감싸 안은 형태였다. 수달과 고라니의 발자국이 찍힌 고운 모래밭을 지나자 띠와 통보리사초가 빽빽한 너른 초원이 펼쳐졌다. 바다 건너 해안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싼 아파트단지가 없었다면 몽골 초원에 온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푸드덕!” 갑자기 발밑에서 커다란 새가 날아올랐다. 1~2분 사이 무려 10마리가 인적을 놀라게 했다. 꿩인가? “쇠부엉이입니다.” 박중록(55·부산 대명여고 교사·사진)씨가 말했다. “이렇게 많은 수가 보인 것은 처음”이라는 그는 “기자가 왔다고 다 모였나 보다”며 웃었다. “관통도로가 들어서기 전엔 을숙도에 많았다”고 덧붙였다.

15년 전 망원경 관찰하다 “경이” 실감
2005년 을숙도대교 건설반대 참여
매월 둘째 주말 5개 조사팀 자원봉사

‘낙동강 하구 조류조사 보고서’도 발간
280종 34만마리 서식 ‘신이 내린 땅’
“신공항·엄궁대교 등 개발사업 위협”

13일 박 교사와 그의 단짝 김시환(49)씨가 낙동강 하구에서 벌이는 조류 조사 현장에 동참했다. 마침 한파가 몰아닥쳐 모래톱으로 나가자 칼바람이 불었다. 이렇게 추운 날 조사를 하는 이유는 뭘까.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엔 낙동강 하구를 5개 팀이 구역을 나눠 일제히 조사합니다. 벌써 10년째 하는 일입니다.” 그사이 강물 위에 떠 있는 오리는 모두 같은 종류로 알았던 아마추어들이 500쪽 가까운 <낙동강 하구 조류조사 보고서>를 낼 정도로 든든한 낙동강 하구 지킴이로 변했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는 박씨는 그 중심에 서 있다.

신호대교 아래에 펼쳐진 넓은 갯벌에 새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청둥오리와 홍머리오리 사이로 큰고니가 긴 목을 물속에 뻗어 새섬매자기 뿌리를 훑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배가 고픈가 봐요. 사람들이 있는데도 방파제 가까이 접근하는 걸 보니.” 이곳에서 많게는 4천마리가 겨울을 나는 큰고니는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전체 개체수의 60%가 낙동강 하구를 찾는다. 그런데 이곳의 먹이가 부족하다 보니 11~12월 하굿둑 남쪽에 머물던 큰고니 떼는 1~2월쯤 다른 곳으로 먹이를 찾아 떠나간다. 지난 10년 동안의 자료를 검토한 결과 알아낸 사실이다.

큰고니들이 머리를 날개 밑에 감추고 휴식에 들어가자 멸종위기종 1급인 노랑부리저어새가 나타났다. 주걱 부리로 갯벌을 휘저으며 먹이를 찾더니 소득이 없는지 곧 휴식에 들어갔다. 조사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존 등급이 높은 ‘멸종위기종 1급’의 조류 12종 가운데 크낙새를 뺀 11종을 낙동강 하구에서 관찰했다. 대부분이 보호종인 맹금류도 이날 관찰한 흰꼬리수리, 매, 물수리를 포함해 모두 23종이 이곳에 서식한다.

조사단이 지난 10년간 낙동강 하구에서 관찰한 조류는 모두 280종으로 우리나라에서 기록된 총 조류 550종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개체수는 연평균 34만마리가 넘는다. 박씨는 이곳을 “신이 내린 땅”이라고 말한다.

“겨울철에 100종 이상의 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여기가 유일합니다. 직접 와 보면 왜 이곳을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라고 하는지 실감할 수 있지요. 그렇게 망가졌는데도 아직 새들이 오는 걸 보면 참 대단한 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을숙도 근처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습지의 기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박씨가 조류 탐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었다. “하굿둑 위에서 망원경으로 오리 떼를 보았는데 그저 다 같은 줄 알았던 오리의 다양한 색깔과 형태가 경이로웠습니다.” 이후 매주 2번은 현장에 나왔고 방학이면 아예 낙동강에서 살았다. 국내외 자료를 뒤지며 혼자 공부를 했다.

조류 조사에 나선 계기는 논란 많았던 명지대교(을숙도대교) 건설 때였다. “낙동강 하구의 핵심인 을숙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있는 다리를 확장해 쓸 수도 있었는데 해안순환도로 개발을 위해 부산시는 건설을 강행했다고 그는 말했다.

2005년 다리 건설 허가가 나자 환경단체들은 공사중지 소송을 냈고 이때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축적해 놓은 조사 자료가 근거가 됐다. “소송에선 일본 전문가가 증인으로 섰습니다. 국내 전문가라는 분들은 개발사업을 위한 용역 자료를 많이 내놓았을 뿐 낙동강 하구를 보호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낙동강 하구는 하굿둑 건설 못지않은 타격을 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비롯해 엄궁대교 건설과 에코델타시티 사업 등 많은 개발사업을 앞두고 있다. 박씨는 이런 개발사업으로 낙동강의 숨은 보석이 망가지면 안 된다고 믿는다.

‘M4’라는 표지를 다리에 단 민물도요도 그런 보석의 하나다. 일본에서 단 표지를 붙이고 2010년 가을부터 5년 동안 계속 관찰된 이 작은 새는 낙동강 하구에서 겨울을 난 뒤 일본을 거쳐 러시아까지 5천㎞가 넘는 비행을 하는 힘든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3일 모래톱의 하나인 도요등에서 5번째 모습을 드러냈다.

다큐 영화 <위대한 비행>의 주인공이기도 한 큰뒷부리도요 ‘얄비’를 처음 발견한 것도 이 조사팀이었다. 2008년 4월20일 신호대교 아래서 처음 목격한 이래 같은 장소를 4번 찾아왔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낙동강 하구를 거쳐 알래스카로 가 번식한 뒤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논스톱 비행을 하는 가공할 여정을 거듭한 것이다. “우리가 버티는 힘은 이런 가슴 뛰는 자연의 신비에서 옵니다.”

낙동강 하구/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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