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29 19:17
수정 : 2015.01.09 14:34
[짬]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김해성 목사
지난해 겨울 지구촌사랑나눔 사무실로 버려진 외국인 영아를 데려다 보호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왔다. 15살 중국동포 소녀가 중국에서 성폭행으로 임신한 뒤 부모를 찾아 한국에 왔다가 거리에서 낳은 아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름 아닌 미혼모센터에서 요청을 해온 것이었다. 정부 지원을 받는 시설에서는 외국인 아이를 받아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즈음 경남 창원의 한 종합병원에서도 비슷한 연락이 왔다. 중국인 남편이 본국으로 도주해버린 뒤 우즈베키스탄 산모 역시 분만실에서 사라져버렸다며 아이를 돌봐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데려와 경찰에 신고하자 서울시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다시 데려가더니 며칠 뒤 되돌아왔다. 역시나 외국 아이여서 보호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지구촌사랑나눔 대표인 김해성(53·사진) 목사는 무조건 두 아이를 받아들였다.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여성 임산부들과 아이들이 한둘이 아닐뿐더러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실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기꺼이 그들을 품에 안을 둥지를 만들었다. 새해 1월14일 ‘이주여성 지원센터’(센터) 문을 연다.
미혼모센터 ‘외국 국적’ 아이 보호 못해
이주민끼리 낳은 아이들 유기도 늘어
정부, 법적 근거 없다며 ‘사각지대’ 방치
베이비박스만이 아니라 산모부터 지원
모자원·영아원·그룹홈까지 지속 보호
새해 1월14일 ‘이주여성 지원센터’ 개원
서울 오류동 기존의 지구촌학교 옆에 5층짜리 건물을 마련해 새 단장을 마친 이주여성 지원센터는 엄마와 아기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모자원과 영아원, 조금 자란 아이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룹홈까지 갖췄다. 상담, 정기검진, 양육 지원 등을 제공하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돕는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 15개 언어로 통역을 지원하고,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운영중인 어린이집, 학교, 쉼터와도 연계해 지속적인 지원을 할 방침이다. 지원 대상에는 정부의 초기 정착 지원 기간(6개월)이 지난 난민 신청자와 난민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일시적으로 국내에 머무는 것을 허가받은 인도적 체류자 등도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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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김해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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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누구이든 모두 귀중한 생명이고, 우리 땅에서 태어났는데, 국적이 다르다고 함부로 버려지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모른체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김 목사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돕겠다”는 취지를 유난히 강조했다. 그 사연을 설명했다.
맨 처음 해결책으로 그는 이주민 아기를 위한 베이비박스를 떠올렸다. “때마침 <한겨레>에서 기획연재한 ‘베이비박스 그 후 캠페인’을 보고 동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연약한 생명을 살리는 게 급선무니까 아이들부터 돌보기로 결심했던 거죠.” 그런데 뜻밖의 반발에 부닥쳤다. “입양아단체 회원들이 항의 방문을 와서 자신들처럼 흔적도 없이 버려지는 아이들의 인권을 생각해 봤느냐고 하더군요. 입양 30~40년 뒤 뿌리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때 절망감을 생각해 봤느냐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주여성 임신부들부터 돌봐서 애초에 아이를 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는 창원에서 사라졌던 우즈베키스탄 산모를 찾아 설득한 끝에 매주 아이를 찾아와 직접 젖을 주며 돌보게 했고 마침내 모자는 지난 10월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다.
김 목사는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태어나기 전부터 방치되는 아이들에게도 자기 뿌리를 지키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지구촌사랑나눔 산하에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과 약국을 열어 이주민들의 건강을 보살피기 시작한 것은 2004년 6월부터다. 따라서 센터는 10년 만에 또 하나의 짐을 스스로 지게 된 셈이다. 더구나 정부 지원 한푼 없이 오로지 후원금에 의존해야 하는 까닭에 센터의 앞날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외국 국적 아이들도 정부의 보호·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 절실한 형편이다.
돌이켜 보면 그가 이주민 노동자 인권운동에 뛰어든 지 올해로 30년 가까이 됐다. 1986년 노동상담소 ‘희망의 전화’를 열어 노동운동을 시작한 그는 92년 공장에서 일하다 한쪽 팔을 잃은 필리핀인을 도우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이어 94년 성남에 ‘외국인 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을 세워 본격적으로 나섰다.
2000년 지구촌사랑나눔을 만든 이래 김 목사는 외국인 노동자를 도울 때마다 번번이 현행법과 제도에 부딪혔다. 전국의 외국인 지원단체를 소집해 법 개정 운동을 벌인 끝에 지난 6월 여야 만장일치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법)과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개정을 이뤄낸 것도 그였다. 공청회와 서명·헌법소원 운동을 주도하다 경찰에 폭행당해 13차례나 입원했다. 96년에는 불법체류자 단속에 나서는 법무부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4개월 동안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이제는 이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커가는 아이들에게도 젖만 줄 수는 없고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서로 도우며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이주민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자립 방법의 하나로 그는 새해 협동조합 사업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2012년 이주민 협동조합을 발족한 이래 화장실 설치부터 어린이집 운영, 노동문제 상담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지구촌사랑나눔의 사업도 협동조합 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후원·봉사 누리집(g4w.net) 또는 전화 (02)863-6610.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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