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 목사. 사진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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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한국컴패션 대표 서정인 목사
2014년 마지막날, 저마다 묵은해를 정리하고 새해 덕담을 주고받는 순간에 그의 휴대전화에는 지구촌 곳곳의 재난사고 속보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날 아침 대형 태풍이 불어닥쳐 3만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한 필리핀 피해지역에서 후원 어린이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보고였다. 이처럼 그가 실시간으로 돌보는 아이들이 세계 26개 나라에 12만4000여명에 이른다. 바로 한국컴패션 대표 서정인(51·사진) 목사의 일상이다.
“2003년 뜻밖의 소명을 받고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기적 같은 나날의 연속입니다. 올해만 해도 워낙 경제상황이 좋지 않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가라앉은 까닭에 적극적인 후원 모금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지난해보다 결연 회원이 1000명 넘게 늘었고 전체 후원액도 증가했거든요. 고맙고도 놀라울 뿐입니다.”
2003년 한국컴패션 설립 때 ‘소명’미국 신학대학 교수직 버리고 귀국
원조 대상국에서 후원국 전환 첫 사례 11년 만에 220명에서 12만4천명 후원
‘세월호 참사’ 침체 우려 불구 더 늘어
새해 130개 교회 연대 ‘북한 서밋’ 예정 지난 4월16월 ‘세월호 참사’ 이후 대부분의 시민·문화단체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컴패션도 반년 가까이 후원 캠페인 활동을 전면 중단해야 했다. 대신 가장 희생자가 많았던 경기도 안산 지역을 찾아가 위로와 봉사활동을 했다.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희생자 유가족 중에도 컴패션 후원자가 7명이나 된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에서도 한국컴패션이 지속적으로 후원 규모를 넓혀온 비결은 무엇일까? 서 대표는 ‘신뢰’와 ‘투명성’을 꼽았다. “국제컴패션 자체가 1952년 한국전쟁 고아들을 보살피면서 출범해 93년까지 41년간 구호를 한 덕분에 우리 국민들 사이에 믿음을 심어줬다고 봅니다. 또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 회계시스템을 도입해 전세계 회원 단체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내 후원금이 결연한 아이들에게 언제 어떻게 쓰이는지 정확하게 확인이 된다는 뜻이죠. 후원금의 약 90%가 아이들을 위해 쓰이고 있구요.” 실제로 한국컴패션의 출범과 ‘초고속 성장’은 전세계 구호단체들 사이에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한국컴패션은 본부가 구호활동을 끝내고 철수한 지 10년 만인 2003년 컴패션의 구호 혜택을 받고 자란 재미 한인들 중심으로 결성됐다. 오랫동안 한국이 독점하다시피 받아온 사랑을 더 어려운 지구촌 아이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는 ‘기도’가 국제컴패션을 움직인 덕분이었다. 이후 11년 만에 한국컴패션은 130만명에 이르는 국제컴패션 후원 아동의 10%를 차지하며 11개 회원국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 서 대표가 펴낸 에세이집 <고맙다>(규장 펴냄)도 12쇄를 찍을 정도로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첫해 220명 후원으로 시작할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해마다 목표를 정하고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해왔는데 그때마다 가수 션과 정혜영 부부, 차인표 신애라 부부 등등 거짓말처럼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곤 했어요. 처음 소명을 받을 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서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인 77년 부모를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가 1.5세로 자랐다. 경기고 등에서 교사로 재직했던 부친이 강직한 성품 탓에 오해를 받고 정보당국의 감시까지 당하면서 4형제 자녀들을 자유로운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시키고자 선택한 결단이었다. 목사의 길을 택한 그의 기독교 신앙은 독실한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 미국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성결대 등에서 강의를 하던 그는 모교 지도교수의 도움으로 교수 임용을 받아 2002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때까지 ‘컴패션’ 자체를 알지 못했고 개인적인 인연도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평소 제 성향을 지켜본 교수님들의 추천으로 한국컴패션 대표를 뽑는 인터뷰를 하게 됐지요. 그리고 누구보다 아내(김희수)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어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여러 언어와 문화를 익히게 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 기도해보라’는 것이었어요.” 대학시절 미국 유학을 온 아내를 만나 결혼한 그는 장인이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설립한 김준곤(2009년 작고) 목사란 사실도 처음엔 알지 못했단다. 아들 셋을 키우느라 결혼 조건이기도 했던 ‘입양 서약’을 실천하지 못했던 부부는 약속처럼 인터뷰에서 “그 고난받는 아이들이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못 본 체할 수 있겠느냐”고 답을 했단다. 아내는 어떤 예감이 있었는지 컴패션 본부에서 채용 통보를 받기 전부터 귀국할 짐을 쌌다. “한국컴패션 1호 결연으로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바랐던 첫딸을 얻었어요. 필리핀의 준 마리 마글라상이죠. 지금은 고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됐어요. 그렇게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12명입니다.” 한국컴패션의 새해 소망은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 동포 아이들”인 ‘북한 어린이 돕기’다. 서 대표가 미국 시민권을 지금껏 지니고 있는 까닭도 바로 북한 활동을 위해서다. 실제로 그 덕분에 그는 지난해에도 여러 차례 북녘땅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다. 국제컴패션을 통해 2013년 처음으로 북한 전역의 고아원에 겨울용 이불을 직접 선물한 데 이어 모니터링을 하러 간 것이었다. “전세계 컴패션 후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원단에 새겨서 직접 제작한 이불을 보냈어요. 한 고아원의 보모가 ‘아이들이 땀 흘리며 자는 모습을 처음 봤다”며 감격해하면서 전해준 아이들의 반응도 너무나 감동적이었죠. 아침에 잠이 깬 아이들이 이불에 그려진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서 밥 먹을 생각을 하지 않더래요.” 한국컴패션은 ‘소망의 땅, 북한-교회가 희망입니다’를 구호로 130여개 교회와 연대를 맺었다. 언제든 북한이 문을 열고 후원을 받아들일 때를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새해 6월엔 ‘2015 북한사역 서밋’도 열 예정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나님의 뜻에 맡길 뿐입니다. 그저 단 한명의 아이라도 더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서 대표는 미국에 계시는 어머니의 기도 주제 ‘늘 겸허하라’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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