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현 피디.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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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평양 걸그룹, 모란봉 악단’ 펴낸
오기현 피디
조용필·윤도현 평양공연 등 ‘충격’
2012년 김정은 지시로 새악단 조직 MB이후 남북막혀 10년교류 ‘무산’
힘의 논리보다 문화·도덕가치 위력
“모란봉악단과 남북합동공연 기대” 오 피디는 모란봉 악단 활동은 “유튜브에 다 떠 있어 누구나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북쪽 사람들도 유에스비(USB), 씨디(CD), 책 정도 크기의 몇 만원짜리 중국제 이브이디(EVD) 등을 통해 남쪽 드라마나 방송, 영화를 예전보다 훨씬 쉽게 접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며 “이는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는 텔레비전을 통한 서독의 문화침투를 억지로는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동독이 자신들도 재미있는 프로를 만들어 대항하려 했다는 ‘오락의 변증법’을 예로 들면서, “모란봉 악단 창단도 그런 차원의 대응일 수도 있다”고 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활발했던 남쪽 방송사들의 방북 공연에 대한 북쪽 관객들 반응을 보면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우리와 함께 작업했던 북쪽 실무자들도 처음엔 이것저것 간섭하며 규제했으나 나중엔 그런 규제가 거의 사라졌고, 서로 털어놓고 얘기하는 사이가 됐다.” 98년 언론인 신분이 아니라 프러덕션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처음 평양에 갔던 오 피디는 이듬해 평양에 어머니와 동생을 남겨 두고 월남했던 천문학자 조경철(2010년 작고)씨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조경철 박사의 52년만의 귀향>을 만들었다. 조 박사와 당시 북의 대기업 용성기계연합 간부로 있던 동생을 극적으로 만나게 해줬던 그 다큐는 남북 최초의 민간인 공식 교류요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 성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많은 화제를 낳았던 2005년 가수 조용필의 류경체육관(정주영 체육관) 공연도 그가 기획했다. 그는 당시 방송3사의 평양 공연들은 크게 동질감 조성에 무게를 둔 ‘공감요법’과 북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충격요법’ 두 가지 기조로 기획됐다면서, “ 하지만 공감요법조차도 북에는 충격을 주기는 매한가지였다”고 회고했다. 특히 유일무이하게 북에 생중계된 윤도현밴드의 공연은 북 사회에 굉장한 충격을 가해 북쪽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남쪽 가수가 윤씨라고 한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개인적으로 좋아해 북이 먼저 제의했던 조용필의 평양 공연 역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조용필 공연 당시 “우리가 요구하는 것 거의 대부분을 북이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가까왔던 남북관계는 지금 까마득한 옛일이 됐다. 오 피디는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 이후 남북 통로가 막히면서 언론인 방북이나 접촉도 극도로 제한되고 있다며, “마지막이 된 재작년(2013년) 방북도 언론인 자격이 아니라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 이사 자격으로 간 것”이라고 했다. “그때 그래도 갖고 갔던 카메라로 북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금 찍어온 영상을 보도 때 일부 방영했는데, 그 때문에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가 우리 정부로부터 반년간 대북 접촉 자체를 금지당했다.” 그는“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하드파워, 즉 정치적·경제적 힘의 논리대로 대응하는 기조로 돼 있다”며, “하지만 국가간의 관계는 때로는 소프트파워, 즉 문화와 도덕적 가치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드파워가 중요하지만 소프트파워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수가 있다. 부시 정부시절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힘의 약세는 적의 도발을 부른다고 했고, 오사마 빈 라덴은 사람들이 강한 자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지만 그들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한반도에서도 힘의 논리는 상호 긴장만 불렀고, 앞으로도 영원히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프트파워 자산인 대중문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남북관계에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 피디는 방북 뒤 남쪽 언론에 그 체험을 연재하고 강연 활동을 하다가 ‘종북주의자’로 몰려 당국의 수사까지 받고 있는 재미동포 신은미씨 문제와 관련해 “북은 공식 영역과 비공식 영역이 확연히 구별되는 굉장히 중층적인 사회”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와 얽힌 공식 영역이 아닌 우리와 별로 다를 게 없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북쪽 사람들 대다수도 우리처럼 부부끼리 갈등하고 자식 교육 때문에 고민한다. 그들 사이에도 돈과 건강, 출세 등이 화제의 중심이다. 북을 볼 때는 공식 영역만 보지 말고 비공식 영역도 함께 봐야 한다. 신씨가 한 얘기도 이 비공식 영역에 관한 것들이다.” 오 피디는 언젠가 남북관계가 다시 순풍을 타게 되면, “모란봉 악단과 함께 한 번 폼나게 남북 합동공연을 기획해 보고 싶다”면서 “대중문화 공연이야말로 가장 쉽고 가장 강력한 교류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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