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동 ‘소문난집 추어탕’의 주인공 권영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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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낙원동 우거지해장국집 주인 권영희씨
25살 때 시집와 10년 거든 뒤 대물림
낙원상가 구석 64년째 ‘착한값’ 정성 추어탕에서 미꾸라지 빼 싼값 유지
탑골공원 돈없는 노인들 ‘공짜 대접’
“적게 벌어도 행복하니까 그냥 하죠” 서울 종로 탑골공원 담을 따라 낙원상가 건물 오른쪽으로 돌다보면 유난히 어르신들이 북적이는 식당이 나타난다. ‘우거지 얼큰탕’을 파는 식당이다. 좁은 실내에는 ‘후루룩 후룩룩’ 국물 들이키는 소리가 정겹다. 둥근 나무 탁자는 혼자 와서 낯선 사람과 나란히 앉아 먹는 것도 자연스럽게 한다. 자리를 잡으면 해장국 한 대접이 곧바로 나온다. 오직 한가지 메뉴이기에 따로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된다. 파고다 공원 근처라 나이 든 손님들이 많다. 주인장 권씨는 25살에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이 식당에서 일손을 돕기 시작했다. 시어머니 이윤옥씨는 6·25 전쟁 와중인 1951년 1·4후퇴 때 고향 평양에서 피난 내려와 이 자리에 식당을 차려 백반을 팔기 시작했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시어머니는 평양냉면 전문점으로 메뉴를 바꿨다가 다시 추어탕을 전문으로 팔았다다. 그 시절 음식값은 500원, 짜장면이 600원이던 때였으니 이미 깔끔한 맛과 착한 가격으로 문전 성시를 이뤘다. 하루 평균 천 그릇씩 팔렸다. 1980년대 초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권씨가 식당을 물려받았다. 어느덧 33년 그 사이 음식값은 1000원에서 1500원으로, 다시 5년 전 2000원이 됐다. 착한 값을 고수하려니 추어탕에서 미꾸라지를 빼고 우거지 얼큰탕으로 바꿨다. 하지만 손님들에겐 여전히 사랑을 받았다. 권씨의 손맛과 정성 덕분이다. 권씨는 매일 새벽마다 소뼈는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우거지는 가락동 농산물시장에서 사온다. 우거지는 흐물흐물 녹을 정도로 푹 삶았다가 그늘에 한번 말려서 쓴다.국산 소뼈를 우려낸 국물에 한번 삶은 우거지를 넣은 뒤 대파와 두부, 갖은 양념을 넣어 끓인다. 반찬은 고춧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듯 짭짤한 깍두기뿐이다. 손님 입맛에 맞출 소금과 고춧가루 통이 놓여 있다. 손님들은 대부분 오랜 단골들이다. 초기에는 낙원상가의 악사들과 인력거꾼, 그리고 직장인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지금은 주머니가 얇은 어르신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많이 온다. 또 우거지국이 소화가 잘되고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오는 부잣집 사모님도 있다. 전날 마신 술에 지친 속을 달래려는 월급쟁이 술꾼들도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권씨는 “우거지를 만들 때 속배추를 쓰면 맛이 없어요. 진녹색 겉배추를 써야 우거지 특유의 맛이 나요”라며 “우리집 우거지 얼큰탕을 먹어 본 사람들은 우거지 섬유질이 좋아 소화가 잘된다며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질이 좋은 우거지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배추가 많이 나는 가을엔 쉽게 우거지를 구하지만 봄과 여름엔 고기보다 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가을에 미리 많이 확보에 창고에 저장해둔다. 한때는 100여명씩 단체손님들도 많았다. 줄서서 기다렸다. 주변 상인들은 ‘종로 돈은 저 집이 다 벌어들인다’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워낙 단가가 싸다보니 하루종일 일해도 주머니에 남는 돈을 얼마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권씨가 이 ‘착한 가격’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파고다 공원의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한다는 마음이다. “돈이 없는 어르신들은 일부러 불러서 그냥 대접해요. 어려운 시절 살아오신 분들이고, 한국을 성장시킨 주역들이시잖아요. 좀 적게 벌면 어때요. 행복하니까 그냥 하는 거죠.” 권씨는 다른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온종일 식당 일에 매어 있기 때문이다. “싼값으로나마 어르신들이나 서민들에게 한끼 대접하는 것이 바로 봉사라고 생각해요.” 식당문을 나서며 손님이 건네는 “고맙습니다” 한마디가 그의 큰 보람이다. “대부분의 식당 주인들은 손님들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집 손님들은 반대로 주인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 식당은 설(구정)과 추석 명절 이틀씩, 일년에 나흘만 쉰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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