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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2 23:10 수정 : 2015.01.12 23:10

첫 장편소설 <오늘밤도 지났네>를 발표한 이순례 씨.

[짬] 74살에 첫 장편소설 펴낸 작가 이순례씨

“칠순 넘어 등단이라구요?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다만, 이제라도 한평생 가슴에 품었던 이야기를 작품으로 써낼 수 있어서 다행스럽고 고마울 뿐입니다.”

올해 나이 일흔넷, 첫 장편소설 <오늘밤도 지났네>(교수신문사 펴냄)를 발표한 이순례(사진)씨는 필생의 업을 풀어낸 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전업작가들도 서서히 은퇴할 나이에, 지난 3년간 칩거하며 썼다는 이 소설을 통해 그는 비로소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내밀한 가족사의 비극에서 기인한 세상과의 오랜 불화, 그리고 늦은 중년에 만난 남편과 전격적인 결혼과 사별 등 자신이 살아온 경험들을 미려한 문장 속에 켜켜이 녹여놓고 있다.

책을 펴낸 <교수신문>의 편집국장이자 문학평론가 최익현씨는 추천의 글에서 “(…) 그는 일흔을 넘겼지만, 그의 의식과 시선,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로 본다면, 그는 아직 젊다. 피천득 선생의 조언대로, 단 한 편의 글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는 한국문학의 말년의 양식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올드 걸’의 문학적 귀환”이라며 반기고 있다.

대학시절 문학상 받고 작가의 꿈
등단 기회 놓친 뒤 출판사 운영
57살 늦은 결혼·사별 뒤 3년간 집필

“쓸쓸히 떠난 친언니 위한 진혼곡”
‘한국문학 말년의 양식 이정표’ 호평
15일 ‘오늘밤도 지났네’ 출간기념회

“1998년 57살 때 여섯살 많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어요. 난 초혼이었고 그는 사별한 뒤 재혼이었죠. 만난 지 18일 만에, 네번 만나고 결혼을 약속할 정도로 서로에게 끌렸고, 뒤늦게 만난 만큼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즐겁고 다정하게 살았어요. 2009년 말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떠나기까지, 11년간 꿈같은 나날이었죠.”

그는 짧았지만 강렬했던 결혼의 행복과 돌연한 사별의 충격, 그리고 눈물과 회한의 나날이 없었다면 이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주인공 윤서의 중학 시절 시작된, 인서 언니의 불행과 그에 대한 외면, 그리고 50대 후반 한인범 의원과의 결혼과 가족 간의 불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촉망받는 음대생이었으나 어느 날 눈이 풀린 채 집으로 돌아온 인서 언니의 추락은 김제에서 내로라하는 병원 집안을 어둡게 만든 주요 요인이 된다. 인서 언니의 추락은 기억 속 과거 저목이나 정순이와 같은 ‘비정상 인간’ 군상과 겹치면서 부끄러운, 감추어야 할 비밀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인서 언니가 아니라, 정신이 나간 인서 언니를 대하는 윤서를 포함한 가족 모두의 외면이 담합한 결과다. 서울 에스(S)대 영문과를 나와 출판사를 운영하는 윤서의 의식은 이러한 인서 언니의 불행, 이 불행을 외면하고 그로부터 달아나려고만 했던 가족의 비윤리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작가 후기에서 소설을 써야만 했던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겉은 조용한 것 같았지만 속은 미쳐 있었던 세월이었다 (…) 인서 언니를 그냥 덮어버리고 그냥 밟고 지나갈 수는 없으므로. 설령 이 진혼곡이 아무 소득도 없는 곤혹스러움으로 끝나버린다고 할지라도 이 지상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일처럼 인서 언니를 그냥 매몰시킬 수는 없으므로.’ 소설의 제목 ‘오늘밤도 지났네’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에서 ‘보리수’ 2절에 나오는 빌헬름 뮐러의 시구절이다.

실제로 ‘외면’이란 소설의 주제는 삶의 고비고비에서 그의 ‘안식’을 흔들곤 했다. ‘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전해 들었을 때 홀로 망월동 묘역을 수도 없이 찾아가 눈물로 아파했던 그는 지난해 다시 세월호 참상을 목격하고 팽목항으로, 광화문으로 달려가 엉엉 울었다. 그리고 자신을 가장 부끄럽게 만들었던, 비극에 대한 침묵과 외면은 인서 언니와 가족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인생의 수레바퀴를 한 바퀴 돌고 난 지금, 너무 더디게 왔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가 이처럼 ‘더디게’ 작가의 길을 돌아온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숭실대 영문학과 4학년 때 ‘대학 문화상’에 뽑힌 그는 심사위원이던 다형 김현승 교수의 총애를 받았고, 졸업 직후 <현대문학> 장편소설 공모에서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을 계기로 황순원 선생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러다 공모전의 석연찮은 심사 내막을 알고는 스스로 전업작가의 길을 포기했다. “화려한 등단의 관문은 거치지 못했지만 박경리, 피천득, 원응서, 강석근 선생님 등등 당대 문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아쉽지 않았어요. 대신 출판사(명림당)를 직접 차려 글에 대한 갈증을 달랠 수도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그는 <예장 전국여교역자회 20년사>와 <한일신학대학 70년사>를 집필하는 등 평생 ‘글쟁이’로 살아왔다. 필력이 알려지면서 1992년 대선 직전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첫번째 자서전 <나의 사랑 나의 조국>(도서출판 명림당 펴냄)을 쓰기도 했다. “불과 40일밖에 여유가 없어 정신없이 써냈다”는 그는 애써 말을 아꼈다. <…나의 조국>은 이후 미국·일본·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번역됐고, 97년 대선을 앞두고 <내가 만난 이희호>(피천득 외 26명)도 그가 편저했다.

오는 15일 오후 5시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교수신문사 주최로 열리는 <오늘밤도 지났네> 출간기념회에서는 신학자 정현경 교수(뉴욕 유니언신학대)의 사회로, 이 이사장의 축사와 베이스 김인수 교수(세종대)의 축가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02)3142-4112.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교수신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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