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씨.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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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7년째 ‘미래예측 보고서’ 펴낸
유엔미래포럼 박영숙씨
세계미래학회 등 20여개 기구 참여
2008년부터 ‘유엔미래보고서’ 발간 ‘2045년 이후미래’ 전문가도 예측불가
의식주·수명·일자리 모두 바뀔 것
“미래 눈감은 정부 정책에 울분 느껴”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인 박영숙(60·사진)씨가 2008년부터 미래학자인 제롬 글렌과 함께 해마다 미래연구 싱크탱크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미래예측 보고서를 펴내며 ‘미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미래의 변화가 다양하고도 급격하게 우리의 삶을 바꿀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향후 20년 안에 거대하고 급속한 변화를 가져오는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수많은 일자리를 소멸시킬 것입니다. 물론 새롭게 등장하는 일자리도 있어요. 미래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실제 써먹지 못할 지식과 기술을 배우며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지난해 연말 7번째 보고서인 <유엔미래보고서 2045>(교보문고 펴냄)를 출간한 박씨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어한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상상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나마 앞으로 30년 뒤인 2045년까지는 세계의 미래학자들이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노기술, 합성생물학,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30년 뒤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변화할 미래의 모습을 알아야 대비는 물론, 우리 삶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미 늘어나고 있는 인간의 수명에 대해 물어보았다. “의학의 발달로 2045년에는 평균 수명이 130살을 넘게 됩니다. 대부분의 질병이 퇴치되기 때문이죠. 유전자 정보 시스템의 구축은 질병의 예방을 가능하게 합니다. 발병하기 전에 예방하거나 초반에 치료가 가능한 거죠. 이식을 위한 장기 생산이 5년 뒤면 가능하게 됩니다. 10년 뒤엔 인간 장기 78개를 3D 프린터로 만들어낼 수도 있어요.” 심지어 인간의 뇌까지 2050년에는 슈퍼컴퓨터에서 내려받을 수 있어 육체는 죽지만 정신은 컴퓨터와 가상현실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수명 연장은 곧 삶의 행태를 바꾸게 된다. “2040년이 되면 결혼제도 자체가 없어질 수 있어요. 교통이 발달하고 모든 대화가 동시통역되는 통역기가 언어장벽을 없애면 국경도 큰 의미가 없어집니다. 일자리를 찾아 지구촌을 이동하며 살게 됩니다. 평균 수명이 120살을 넘어서면 한 파트너와 100년을 함께하는 삶이 인위적으로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산 파트너, 사랑 파트너, 생활 파트너 등 평균 3명의 파트너와 삶을 함께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긴 세월을 같이 지낼 생활 파트너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 동물, 로봇, 동성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예상한다. 미래는 주택 형태도 크게 변한다. “지금도 3D 프린터로 24시간 이내에 집을 지을 수 있어요. 3D 프린팅 건축이 활성화되면 주택 가격이 획기적으로 떨어지고, 집의 개념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의 호텔처럼 필요할 때 만들어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패션에 신경을 쓰지 않는 65살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면 의류산업도 사양화된다. 대신 나노섬유가 발달하면서 스스로 세정 기능이 있어 빨아 입지 않아도 되고, 여름과 겨울에 스스로 발열과 흡열 기능이 있어 옷 한 벌로 사계절을 지낼 수 있는 세상이 곧 온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에는 음식이 아닌 알약을 먹거나, 심지어 수천개의 나노봇을 체내에 삽입하면 한번 동력주입으로 75년간 효력을 발휘해, 한끼만 먹어도 75년간 살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박씨는 애초 1998년부터 수양부모협회를 만들어 20여명을 직접 기르며, 10년간 일반가정 위탁양육 운동을 벌인 사회사업가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경북대 불어교육과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도 마친 학구파인 그는 주한 영국대사관과 오스트레일리아(호주)대사관에서 공보 담당으로 25년 가까이 근무한 외교통이기도 하다. 미국인 남편(명지대 교수)과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며 며느리 노릇도 해왔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해온 그가 미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30여년 전인 1982년, 영국에 살며 정부 산하 미래청에서 일하면서부터다. 이후 세계미래회의 등 20여개 미래 관련 국제기구에서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해 일해왔다. 그가 사용하는 두 대의 휴대폰에는 미래에 대한 최신 정보가 담긴 유에스비(USB) 20여개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미래를 알아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정부가 미래를 모른 채 정책을 펴는 것을 보면 울분이 느낄 정도로 답답합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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