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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2 18:57 수정 : 2015.02.23 10:35

가수 최백호 씨.

[짬] 인디밴드 후배들 키우는 가수 최백호씨

수염이 덥수룩하다. 손질을 안 한 희끗한 수염은 반백의 머리에 잘 어울린다. 화려한 조명 아래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그가 한때 한국 최고의 가수임을 의심치 않게 한다. 스스로를 ‘지하 음악창작 소굴의 어미벌레’로 지칭하는 최백호(65·사진)는 자신의 소굴에 가득 ‘악당’ 등을 모이게 할 계획에 분주하다. 그 악당들은 팔팔한 ‘인디밴드’들이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재잘거리고, 라면도 끓여 먹고, 커피도 마음껏 마시며 음악을 공부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 그 공간의 이름도 스스로 지었다. ‘뮤지스땅스’. 음악(뮤직) 하는 지하 독립저항군(레지스탕스)을 합쳤다. 위치도 독특하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8차로 아스팔트 마포대로의 지하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실내 분위기는 이 공간의 두목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느끼게 한다. 최씨는 왜 지하로 스며들었을까?

인디밴드들 위한 음악창작시설
정부 요청에 무보수로 운영 맡아
한국음악발전소 만든 게 인연

예산 깎여 기부금 모으느라 분주
“밑바닥 친구들 있어야 케이팝 지속
실력파 가수들 활동 메카 됐으면”

이 지하 2층 공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35억원의 예산을, 마포구가 장소를 제공해 만든 인디밴드를 위한 음악공간이다. 5개의 개인작업실과 2개의 밴드작업실, 70명을 수용해 공연과 함께 녹음을 할 수 있는 공연장 등 전문적 창작설비가 마련돼 있다. 다른 녹음 시설보다는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음원을 제공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수백개의 시디를 수입했고, 안락한 소파 등 휴식 공간도 있다.

최씨가 이 공간을 책임지게 된 것은, 이미 원로 음악인과 인디밴드들을 돕는 ‘한국음악발전소’의 소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씨가 선배뿐 아니라 후배들의 음악 창작활동을 도울 공간의 주인으로 적합하다고 여겨 부탁했고, 최씨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제가 처음 가수로 데뷔했을 때 겪었던 쓰디쓴 경험을 후배들은 더 이상 경험하지 않길 바랍니다.”

1977년 최씨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래로 가수로 처음 히트를 쳤으나 당시 소속 레코드사는 최씨에게 수익금을 한푼도 주지 않았다. 계약금으로 50만원을 주더니 홍보비 명목으로 40만원을 되받아 갔다. 10만원의 계약금만 받았던 최씨는 하숙비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결국 최씨는 계약조건을 위반하며 다른 레코드사에 1000만원을 받고 옮겼다. “대부분 가수들이 레코드사의 횡포에 대응하지 못하고 손해를 보던 시절이었어요. 후배들에게 그런 고통을 주지 않을 작정입니다.”

최씨는 이 공간에서 음악 창작활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기획사를 연결해 줄 작정이다. 음악을 녹음하면 그 결과물을 평가해 다음 단계로 가는 좋은 길라잡이 구실을 하고 싶은 것이다.

최씨가 특히 자랑하는 뮤지스땅스 공간은 공연과 녹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라이브땅’이다. 소규모 인원이 관객인 인디밴드가 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공연 실황을 그대로 녹음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디밴드의 열정과 관객들의 거친 숨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5억원을 들여 최신 음향시설을 들여놓았다. 누구나 누리집(www.musistance.com)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이 공간을 빌려 쓸 수 있다.

최씨는 현재의 케이팝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선 후배들이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케이팝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잘 춘다고 생명력이 길지 않아요. 곡을 쓰고, 편곡하고, 녹음하고 그런 친구들이 밑바닥에서 뒷받침돼야 그 위에서 지금의 케이팝 열풍을 지속할 수 있어요. 이미 일본의 케이팝 시장이 가라앉고 있고, 중국도 자국 가수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뮤지스땅스가 실력파 가수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소가 돼, 대중음악의 메카가 되길 바란다.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최원봉)와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고교 졸업 후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가수 길로 나선 최씨는 ‘낭만에 대하여’ ‘영일만 친구’ 등 많은 히트곡으로 ‘낭만 가객’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다음달 본격적으로 문을 여는 최씨는 요즘 어깨가 무겁다. 이 공간을 운영할 예산이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문을 열면서 애초 6억원이 책정된 1년 예산 중 3억원만 썼더니 올해 예산으로 3억원만 책정된 것이다. 3억원으로는 음악감독과 사무실 직원, 시설 관리원 등 10명의 인건비와 전기료, 난방비 같은 기본 비용만 겨우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자신은 무보수로 일한다.

예산에 반토막 나며 애초 계획한 자체 공연이나 외부 강사 초청 강연 등은 무기한 연기됐다. 최씨는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마포구청까지 찾아다니며 예산 증액을 호소하고 있고, 기부금 모금 활동도 하고 있다. 최씨가 고단한 이유다.

하지만 신은 난다. “음악 하는 젊은이들의 소굴이 될 것입니다. 바글바글….”

60대 중반의 최씨는 맵시 나는 청바지에 흰 끈의 운동화를 신고 젊은 직원들을 힘차게 지휘한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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