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23 19:31
수정 : 2015.03.23 21:11
[짬]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 장병권 씨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성적 지향도 하나의 차이다.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 규범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필요하다. 지난해 서울시민들이 제정을 추진했던 ‘서울시민인권헌장’도 규범 제정 운동 중 하나였다. 하지만 헌장 제정은 무산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들은 지난해 12월6일부터 6일 동안 서울시청 로비에서 농성을 벌였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 장병권(39·사진)씨는 ‘무지개 농성단’이라 불린 그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무지개 농성단은 최근 천주교인권위원회로부터 ‘제4회 이돈명인권상’을 받았다.
지난해 연말 ‘무지개농성단’ 참여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무산에 항의
‘동성애 지지 거부’ 박 시장 사과 받아
대학 때 통일운동 경험 연대운동 활용
성소수자 친구 자살에 ‘차별반대’ 나서
‘믿는 도끼’ 진보 정치인·언론에 더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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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활동가 장병권(39)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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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대흥동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장씨는 수상 소감 대신 지지해준 시민들에게 답례부터 했다. “그때 서울신문 전광판 앞에서 싸웠던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 광화문에서 2년 넘게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싸우고 있는 장애인 동지들, 세월호 유가족들, 쌍용차 해고자들, 코오롱, 기륭전자 등 직접 발로 찾아와서 도움을 주신 분들의 힘 덕분에 박 시장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어요.”
그는 “조율하고 조정하는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낮췄다.
6일 동안의 농성은 살아 있는 인권 교육의 장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찾아온 성소수자들과 밤새 이야기 나누고, 밤마다 문화제를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면서 울고 웃고, 박 시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양한 팻말에 담아서 벽이나 바닥에 깔고…, 인권의 가치를 배우는 현장이었죠.”
장씨는 초·중·고 학창 시절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이 남과 다름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개별성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정보의 장이 없었다. “혼자 끙끙 앓았다”고 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지성인들과” 성적 지향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신 피시통신 나우누리 ‘레인보우’에 성소수자들이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거기서 살다시피 했어요.”
대학에서 그는 통일운동을 했다. 그 경험은 그에게 사람과 사람을 엮어내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성소수자 당사자 운동은 2003년께 뛰어들었다. “그해 4월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하던 육우당이라는 친구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전신인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목을 매 자살을 했어요. 이후 통일운동을 정리하고 차별받지 않는 것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지요.”
한국 사회는 모든 시스템이 이성애자 중심이다. “양육과 보육, 결혼과 노동, 모든 것들이 이성애자 중심이죠. 여성에게 좋은 것이 성소수자에게도 좋고, 노동자에게 좋은 것이 성소수자에게도 좋고, 장애인에게 이주민에게 좋은 것이 성소수자에게도 좋다고 말하는데, 역으로 성소수자에게 좋은 것이 여성·장애인·이주민·노동자 모두에게 좋다고 얘기하는 것, 그래서 사회가 그런 구조로 가야 한다는 것을 구호로 표현하는 것이 성소수자 운동입니다.”
군대 역시 이성애자 중심이다. 2006년 2월 당시 동성애자인권연대에 상담 메일이 도착했다. 현역 군인인 그는 동성애자인데, 군 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했더니 군 당국에서는 “동성애자인지 증명해봐라”, “성관계 사진을 제출하라”고 반응했다는 내용이었다. “인권연대에서는 ‘명백한 인권침해이니 부대 복귀를 할 수 없다. 관련자를 처벌하고 이 사람이 온전히 대우받을 수 있도록 조처하라’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군에선 ‘일단 들어오라’고 했지요. 결국 국군통합병원에 들어가서 군대에서 받은 피해를 바탕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인정받아 전역 조처되었어요.” 장씨는 지금도 그 친구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다. “(군에서) 나오게 되면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했어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시스템은 이렇게 시대착오적이지만 시민들은 다르다. “미국 싱크탱크인 퓨리서치센터가 한국을 포함해 주요국 39개 나라의 동성애 수용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2007년 18%에서 2013년 39%로 긍정적 인식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로 조사됐어요. 그런데 서울시나 얼마 전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설립을 무산시킨 서울 성북구청 등은 성소수자 혐오단체들의 기부금과 표심만 걱정하며 시민들의 인식을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소수자 운동을 하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행태가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들이 관계를 잘 쌓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의 서울시, 정치인들, 그리고 ‘혐오 광고’를 의견 광고일 뿐이라며 싣는 <한겨레> <경향신문> 같은 매체를 접하면 힘이 쭉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얘기했던 게 뭐였나 싶고, 허무해질 때가 있어요. 그러지 말자고 주변을 다독이지만, 그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그는 멈출 생각은 없다. “성소수자 등을 혐오하는 세력이 탈동성애자 인권을 말하고 근본주의 인권을 말합니다.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가치들이 뒤틀리거나 훼손되는 상황을 보게 되지요. 열린 시민들이 그들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는 5월16일 ‘국제 동성애 혐오 반대의 날’(IDAHO) 기획단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성소수자 희망버스를 타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서로 보듬고 이야기하는 자리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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