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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25 19:32 수정 : 2015.03.25 21:07

이성희 큐레이터

[짬] 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 맡은 이성희 큐레이터

“맨 처음 생겨날 때도 그랬듯이 ‘풀’은 스스로 서왔습니다. 그동안 지치고 힘들어 누울 뻔한 적도 많았지만, 늘 스스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올 들어 지원금 삭감의 ‘한파’를 맞았지만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으니까요.”

1999년부터 미술인들이 함께 꾸려온 대안공간 ‘아트 스페이스 풀(POOL)’이 26일부터 5월17일까지 개관 이래 4번째 기금마련전을 연다. 최근 새로 살림을 맡아 <2015 풀이 선다>를 기획한 이성희(36·사진) 디렉터는 “이번 위기를 해묵은 숙제인 재정 자립 문제를 공론화하는 기회로 삼아 풀의 긍지를 지켜내고 싶다”고 야무진 포부를 밝혔다.

풀은 개관 초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 문예기금, 서울문화재단 등 지역문화재단의 기금, 개인 후원금, 작품 판매 수익금의 일부 기부 등 다양한 재원을 모아 운영을 해왔다. 그런데 일정한 규모로 꾸준히 지원을 받아온 문예기금이 올해 절반 이하로 대폭 삭감되면서 빠듯한 살림에 큰 구멍이 나게 됐다. “지원 기관에서 삭감의 근거나 이유를 밝히지 않아 답답하지만, 전례가 없는 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26일부터 ‘풀이 선다’ 기금마련전 개막
올들어 문예기금 대폭삭감으로 운영난
30대 여성 기획위원 4명 재능기부
‘재정 자립’ 공론화 삼아 전화위복 시도

99년 김수영의 ‘풀’ 저항정신 본떠 개관
설립때부터 회원 작가들 자율 공동체로

풀은 ‘미술의 대안적 실험과 주체적 미술문화 형성’이라는 구호 아래 20여명의 작가, 기획자, 비평가, 이론가, 미술학도 등이 공동 발기해 99년 2월 문을 연 비영리 전문예술공동체다. 2003년까지 서울 관훈동 시절 ‘90년대 대안미술 선봉’을 자임했고, 2004년 전문예술법인체로 등록하면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운영체계를 갖춰나갔다. 인사동 일대의 상업화로 공간 임대료가 사업과 기관 운영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풀은 2006년 개인 후원자의 도움 덕에 지금의 구기동으로 옮겨 안정된 공간에 정착할 수 있었다. 조건영 건축가는 건물 설계를 맡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재정 자립화는 지금껏 풀지 못한 과제였다. 99년 3월 ‘설립 기금마련전’을 시작으로 2001년 7월, 2006년 4월 등 3차례나 참여 작가들의 십시일반 성금과 후원자들의 애정을 모아 고비를 넘어왔다. 이번 기금전에도 초기 민중미술 세대부터 모더니즘을 거쳐 설치미술 그룹까지 선후배 58명의 작가와 그룹이 150여점의 작품을 기꺼이 내놓았다.

“기금과 후원의 문제, 작가 프로모션과 작품 판매에 관한, 쉽지 않지만 풀어야만 하는 문제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기획전, 작가 프로덕션, 워크숍, 세미나, 연구 랩, 교육, 국제교류 등의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처럼 해묵은 숙제를 안은 채 이씨가 기꺼이 디렉터를 자임한 이유는 무엇일까?

“풀의 원동력인 ‘공동’의 의미와 가치가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독자적 디렉터십으로 지휘하기보다는 참여 주체들 간의 호혜적 관계에 기반한 ‘협력’(어소시에이션) 방식이 저하고 잘 맞기도 하고요.”

애초 화가를 꿈꾸며 미대에 입학했던 그는 대학 시절 다양한 미술모임에 참여하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활동에 더 흥미와 재능을 발견하면서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경력을 쌓아왔다.

풀과의 인연은 지난해 11월 풀 프로덕션 이름으로 <저온화상-홍콩과 서울을 잇는 낮은 목소리> 기획전을 하면서 깊어졌다. 여기에 30대 중후반의 또래 여성 큐레이터들의 연대도 용기를 줬다. 이번 기금전의 공동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안소현·이수연·채은영씨가 그들이다. 이들 4명은 새달 25일 오후 4시 ‘풀칠’을 주제로 전시 연계 토크에도 나선다.

“풀을 중심으로 모인 기획자, 작가들이 기획과 운영에 대해 제안을 하고, 더 나아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다양성의 공동체가 되려 합니다. 한목소리를 내기 위한 장이 아니라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 그리고 해체의 가능성을 직시하고 오히려 지속의 동력으로 삼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실제로 풀은 그동안 전시만이 아니라 교육, 출판 활동을 통해 작가 지원, 미술 담론 생산, 소통 기능을 수행하는 미술전시공간, 민간 미술교육기관, 미술인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미술 이외 인접학문, 공공, 지역 현장과의 국내 네트워크 연계 협업활동을 실행하며 우리 미술의 맥락을 풍성하게 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전통을 지속하되 구조를 개방, 확장해 국가 경계를 초월한 문화권역 간, 지역 간 대인·대기관 네트워크를 통해 미술문화 생산 주체들 간의 협업체를 다지기 위한 시도도 해왔다.

‘풀’의 명칭은 초대 대표였던 미술비평가 이영욱(현 전주대 교수)씨가 시인 김수영(1921~68)의 유작시 ‘풀’(1968)의 제목을 빌려 붙였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불굴의 청년정신, 대안적 실험 추구를 상징하기도 하고, 영어로도 ‘사람들의 모임’을 동시에 함축해 미술인 공동자립운영이라는 설립 정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풀은 감히 한국 현대미술의 비판성과 저항정신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이번 기금전의 성공으로 그 자부심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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