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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29 18:55 수정 : 2015.03.29 20:43

서양화가 김정수씨.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짬] 20년째 진달래만 그리는 서양화가 김정수씨

따뜻한 봄 햇살이 가득한 야산에 진달래꽃이 핀다. 추운 겨울을 숨죽이고 인내하다가 잎보다 먼저 피는 분홍 꽃잎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투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투명하지도 않다. 아이의 속살처럼 보드라운 꽃잎은 보는 이의 입술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가난했던 시절, 진달래꽃은 간식거리였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은 배고픈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진달래꽃을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수북이 쌓인 진달래꽃은 어머니의 정성이 더해져 맛깔스러운 화전(꽃부침개)으로 변신해 자식들이 잠시라도 배고픔을 잊을 수 있게 했다. 김소월 같은 많은 문인이 노래한 진달래는 한민족의 정서였고, 아픔이었고, 사랑이었다.

20년째 진달래만 그리는 서양화가 김정수(59·사진)의 진달래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진달래가 아니다. 투박한 바구니에 가득 담긴 진달래 꽃잎이다. 언뜻 보아선 그것이 진달래인 줄 알 수 없다. 마치 고봉에 가득 담긴 붉은빛 쌀밥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반투명의 진달래 꽃잎이 하나하나 활짝 피어난다. 그가 표현하고 싶은 진달래는 진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인색하지 않고 푸짐하다. 흔하디흔한 진달래꽃에서 그는 가슴 저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방황하던 나 잡아주신 어머니
진달래꽃 뿌리며 빌던 모습
시인의 말보다 가슴에 와 닿아

군사정권 비판하는 미술 하다
프랑스 유학중 정체성 찾아 헤매

진하고 질긴 어머니의 마음
진달래서 발견하고 다시 붓 들어
새달 1~14일 선화랑서 개인전

그는 중학생 시절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니며 부모님 속을 제대로 썩이던 문제아였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그의 손을 잡고 뒷동산에 올라갔다. 마침 봄날이었다.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다. 어머니는 자애로운 얼굴로 “아들, 얼마나 아프냐?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기다리면 너도 언젠가는 이 진달래처럼 환하게 필 거야”라고 위로해주었다. 그러곤 진달래 한 움큼을 따서 허공에 뿌리며 “내 새끼 잘되게 해주소서”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방황을 끝냈다.

“그때 진달래꽃을 배경으로 서 계신 어머님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배우보다 아름다웠고, 그 어떤 시인의 말보다 가슴에 와닿았어요. 공부를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시절 미술부에서 그림을 그린 그는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때 그는 군사정권을 사과에 검은 칠을 하거나 깨진 소주병을 합판에 붙이며 비판했다. 프랑스로 유학 간 그는 우연히 만난 백남준 선생이 해준 “입체가 아닌 평면 작업을 하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동양적인 추상화에 환경적인 구상을 접목했다.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가 썩어들어가는 추상표현은 파리 화랑가의 주목을 받았고,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영주권을 부여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아 헤맸다.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지를 알 수 없었어요. 도자기나 기와처럼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드러내지 않고도 한국인의 가슴 밑바닥을 울릴 수 있는 소재를 찾아야 했어요.”

한동안 붓을 놓았던 그는 마침내 진달래를 ‘발견’했다. 많은 문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진달래는 방황하던 자신을 붙잡아준 어머니의 진달래와 겹쳐졌다. 다시 작업할 용기가 생겼다.

진하고 질긴 어머니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진달래색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유화물감으로 햇빛에 투영된 아름다운 진달래빛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요. 아스라함이었어요. 진달래가 품고 있는 아스라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색깔이 짙으면 철쭉이 되었고, 너무 옅으면 벚꽃이 됐다.

바탕색으로 짙은 붉은색이 배어나오게 하고, 여러번 색을 덧입혀 조금씩 진달래 색깔이 드러나게 만든다. 진달래의 반투명한 빛을 내기 위해 빨강과 분홍색, 흰색과 검은색, 파란색 등 다섯 가지 색을 사용한다. 캔버스가 아닌 아마포에 고도로 집중해 꽃잎을 한장 한장 그려내야 한다. 그는 진달래꽃을 그려 화실 주변의 구멍가게 주인, 리어카꾼, 시장의 국수 파는 아주머니 등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소감을 들었다. 그래서 그들이 느끼는, 가슴속의 진달래색을 발견하게 됐다.

“한국 근현대사의 뒤안길에서 헌신하고 희생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바로 진달래입니다. 그래서 진달래만 그립니다. 앞으로도 그릴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변치 않는 것처럼….”

그는 새달 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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