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4.01 19:55 수정 : 2015.04.01 19:55

김주대 시인.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짬] 작품집 내고 문인화전 여는 김주대 시인

“빛의 경로를 따라 몸을 빠져나간 나무가 벽에 납작하게 붙는다. 추운 겨울 벽은 나무의 색과 소리를 지우고 아픔의 뼈대를 까맣게 안아준다. 손을 내밀어 벽을 쓰다듬는 나무. 나무의 손길을 제몸에 파 넣는 벽. 상처를 지우며 진입해 비명도 없이 하나가 되는 서로가 있다.”(‘나무 그림자와 벽’)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퇴락한 가옥이 있고 잎이 진 나무 한그루가 그 앞을 가리고 서 있다.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 희미해 보이는 나무보다는 가옥의 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의 존재감이 더 뚜렷하다. 시인은 이 그림자에서 벽과 나무가 서로를 안고 쓰다듬는 사랑을 보았다. 김주대(사진) 시인의 문인화 ‘나무 그림자와 벽’이다.

2012년 20년 해온 학원경영 ‘파산’
술만 마시며 죽을 생각까지 ‘방황’
SNS ‘시 판다’ 농담에 진짜 주문

페친 화가들에 물어가며 혼자 습작
“그림 완성도보다 시적 발상에 공감”
점점 온화한 소재로…‘위로’ 주고파

<한겨레>에 ‘김주대 시인의 붓’을 연재중인 김 시인이 1일 문인화전을 개막했다.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7일까지 이어질 이번 전시에 그는 문인화 60점을 내놓았다. 2013년 11월에 이은 두번째 전시인데, 지난해 10월에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서 창립 40돌 기금마련전을 열기도 했다. 문인화 100편과 짧은 산문을 엮은 책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현암사)도 출간되었다.

“처음 문인화를 그릴 때는 세상에 대한 비판과 욕을 담은 작품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보는 이를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내놓았어요. 앞으로도 위로가 되고 또 위로를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1989년 <민중시>와 1991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해 지난해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까지 모두 여섯권의 시집을 낸 그가 문인화를 시작한 것은 2012년 말께였다. 강사에서 출발해 직접 운영까지 20년 가까이 해 온 학원사업이 “쫄딱 망하면서” 하루아침에 길에 나앉게 되었다. 두달 정도를 술만 마시며 아예 죽을 생각까지도 했지만, 다행히 고향과도 같은 시가 그를 구원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시를 쓰면서 농담처럼 ‘시를 팔겠다’는 글을 올렸더나 정말로 사겠다는 분이 나타나더라구요. 그렇지만 문자 텍스트인 시를 어떻게 팔 수 있을까 고민이 됐는데, 그러다가 생각하게 된 게 그림이었어요.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곁들여서 그분에게 판 게 문인화의 출발인 셈이네요.”

처음에는 한 블로그 친구가 보낸 준 테블릿 피시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다. 피시용 연필이 너무 굵어서 섬세한 표현에는 한계가 있었다. 붓으로 종이에 직접 그렸더니 한결 나았다.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페북 친구들에게 수시로 물어 가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붓과 종이, 먹을 골랐다. 어렵다는 배접(褙接·그림을 그린 종이 뒤에 사진 촬영 등을 위해 받침용 종이를 붙임) 기술도 배웠다. 재료와 기술이 좋아지면서 그림과 글씨도 점점 나아지는 느낌이다.

“제가 봐도 글씨와 그림이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실제로 그려 보면서 화선지에 먹이 번지는 특징을 저절로 터득하게 되고, 글씨도 제 나름의 개성과 스타일을 찾아 가는 것 같구요. 이번 전시에는 먹만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아크릴을 활용한 채색 작품도 두어점 내놓았어요.”

형편상 포기해야 했던 미술의 꿈을 뒤늦게 이룬 셈이지만, 그탓에 달갑지 않은(?) 말도 듣게 되었다. ‘시보다 그림이 낫다’는 것이다.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그림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로 대표되는 문인화의 전통 위에 서 있다고 믿습니다. 애초에 시가 없었으면 그림이 있을 수 없는 거죠. 제게 그림은 시의 시각적 확장이에요. 시는 제 작업의 기본이자 최종 목적지입니다. 전업 화가들 그림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는 제 그림이 그나마 인정받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시적인 발상’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얻기 위해 그는 작업실 책상에 앉아만 있지 않고 자주 ‘취재 여행’에 나선다. 노트북과 카메라를 지참하고 손수 차를 몰아 한달이면 열흘 정도는 전국을 떠돈다. 맞춤한 장면을 만나면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린 다음, 집으로 돌아와서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반복한다. 현재 ‘한겨레’를 비롯한 매체 네곳에 문인화를 연재하며, 모교인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주2회 시 창작 강의도 한다. 일요일에는 돈벌이를 위해 운전 아르바이트도 하는데, “이번 전시로 돈을 좀 벌면 그만두려 한다”고 그는 말했다.

“얼굴 안에 감추어져 있던 미소를 살짝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밀어낸 미소를 멀리 보내지 않고 얼굴의 중앙에 모아 놓는다. 어떤 즐거움을 홀로 즐기는 듯 고요하다. 밖으로 나가면서도 안으로 모이고, 안으로 모이는데도 밖으로 번져, 보는 이에게 전염되는 미소. 오붓하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 불상을 비롯해 석탑과 토우, 백자 항아리 같은 문화재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 여럿 나왔다. ‘아버지’ ‘목숨’ ‘그리워’ ‘사랑해’ 같은 글자를 그림처럼 형상화한 문자화도 보인다.

“전에는 죽은 물고기나 깨진 불상처럼 부정적인 소재를 많이 그렸는데, 이제는 온화하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고려 불상의 웃는 얼굴은 장난스러움과 함께 겸손과 자기만족을 보여줍니다. 제 그림도 보는 이들에게 위안과 힘을 주었으면 해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