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06 19:26
수정 : 2015.04.07 16:18
[짬]‘천만의 합창 국민위원회’ 꾸린 황의중 집행위원장
‘우리의 소원’은 참 오래된 노래다. 1947년 당시 서울대 음대 2학년이었던 안병원이 작곡하고, 그의 아버지 안석주가 작사한 이 노래의 작곡 때 노랫말은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현재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작곡가 안씨는 한 인터뷰에서 일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90년 12월 서울에서 250여명의 남북 음악인들이 함께 연 남북송년음악회를 꼽았다. 사회자의 예정에 없는 요청으로 갑자기 남북 음악인들의 합창을 지휘하게 된 그는 청중들의 거듭된 재청에 무려 일곱차례나 ‘우리의 소원’을 불렀단다. 모두 부둥켜안고 눈물바다를 이뤘다. 남북은 늘 이 노래를 함께 목청껏 불렀다. 정작 안씨의 소원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그만 부르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또 어디 있나요. 참 말도 안 되고 부끄러운 일이에요.”
30여년 국어를 가르쳐 온 황의중(57·불암고) 교사는 더 부끄러운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노래가 더 이상 불리지 않고, 점점 잊혀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그럼 점차 사라질 텐데….”
30년 교단에서 국어 가르쳐온 교사
고교생들 대부분 노래 몰라 ‘충격’
천만 대합창 ‘나비 날다’ 추진 나서
8월15일 잠실운동장 대축제 계획
“혼자하면 꿈 여럿이하면 역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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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중 ‘나비 날다’ 프로젝트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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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17명의 고등학생들한테 물어보았다. 그 가운데 1명만이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 중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다고 했다. 검인정 음악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고 안 실리기도 한단다.
지난해 12월 그는 가깝게 지내던 문화기획자 이철주, 그리고 김종철 거버넌스센터 이사, 배덕호 지구촌동포연대(KIN) 공동대표와 만났다. 그리고 3월1일 ‘천만의 합창 국민위원회 일동’의 이름으로 ‘우리는 꿈을 가졌습니다’로 시작하는 출범 선언문을 냈다.
“우리는 역사적인 장면에 대한 꿈을 꿉니다. 동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전세계에서 동시에 불려지는 감동의 장면입니다. 나의 작은 날갯짓이 결국 천만의 날갯짓이 되어 빚어낸 천만의 대합창, <나비 날다>입니다.”
‘나비 날다’ 프로젝트의 발의자인 그는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3일 비가 흩뿌리던 저녁, 카페에서 만난 그의 표정이 밝은 건 아니었다. 3월1일 33인의 준비위원을 모집했지만 조금 지체됐다. 그리고 3월31일까지 1945명의 추진단원을 꾸리기로 했지만 이에 못 미쳤다. 행사 장소는 잠실 운동장으로 잡아놓았다.
제대로 캠페인을 벌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1천만명에게 1천원씩 모금하겠다고 했는데 이런 규모의 소셜펀딩을 해본 회사가 없어서 애를 먹었어요. 휴대폰 등 간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최근 업무협약을 맺었으니 곧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암고 학생들의 호응은 그를 감동시켜주고 있다.
“선생님. 저는 1학년입니다. ‘나비 날다’는 한반도의 첫 날갯짓인 동시에 저의 첫 날갯짓입니다. 저에게 날개를 뻗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다른 학생은 ‘나비 날다’의 페이스북에 “지금 이 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벅찬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라며 이런 글을 올렸다. “생각해봐. 1945명이 온 국민, 그리고 전세계를 흔들어서 천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람들한테 천원씩 받아가지고, 백억원을 들여서 엄청난 축제의 장을 만들어. 그러곤 그곳에서 사라져가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살려내기 위해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너무 뜻깊고 좋은 일이지 않아?”
도봉구 동북초교의 한 학부모는 “아이가 아빠랑 같이 하자며 자기 용돈으로 추진단원 가입을 시켜버리네요~ㅎㅎ”라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39살인 이 학부모는 “개인적인 사견으로 간략하게 생각한 아이디어”라며 ‘전세계 합창(2015년 8월15일 8시15분)=세계 기네스북 등재 도전(동일 노래 세계 최다 인원 동시 합창 부분)’이 담긴 행사 진행 프로그램까지 보내왔다.
현직 교사인 그가 이처럼 민족과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남다른 이력이 자리잡고 있다. 5년간 일본 오카야마 한국교육원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일본에서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민족교육의 현실을 보고 팔을 걷고 나섰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재일조선인을 도와줘야 했는데 외면한 것 아닌가, 동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는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닌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에다가와조선학교 지원 모금’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일본 유일의 강제징용 기념관인 ‘단바망간 재건 한국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천만 모집이 불가능할 것 같아요? 단지 천원을 내서 역사를 만들겠다는 건데요. 2015년 8월 또 꿈은 이루어집니다. 역사는 교과서에 있는 대로 외워 시험 보죠. 역사는 내가 살아가는 거고, 내가 만들고, 내가 멋지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의 꿈은 꿈이지만, 여럿의 꿈은 역사입니다.”
그는 5월부터 8월까지 통일음악회, 미술전, 8월15일 천만의 합창 공연 등 다양한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다. 누리집(cafe.naver.com/wemadehistory)에서 누구나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글·사진 강태호 선임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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