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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08 18:55 수정 : 2015.07.08 22:05

필리핀의 한 빈민촌에서 활동하던 2011년, 양철수씨가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이다. 사진 페이스북 갈무리

[짬] 아마추어 다큐사진가 양철수 씨

‘한국 1세대 다큐사진가’로 꼽히는 최민식(1928~2013년)의 이름을 내건 ‘제2회 최민식사진상’ 수상작이 선정돼 7일 시상식이 열렸다. 최민식사진상은 전업 사진가를 대상으로 하는 본상과 아마추어 사진가 부문 특별상으로 나뉜다. 그런데 일부에서 대상작의 적합성과 선정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더구나 특별상 수상자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인 양철수(64·사진)씨는 수상의 영예를 거부했다. 상금 100만원은 누군가에겐 대단치 않을 수 있지만 사실 그에겐 꼭 필요한 큰돈이기도 했다. 그 사연이 궁금해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그와 페이스북 메시지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양씨는 1999년 필리핀으로 건너가 빈민촌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이번 최민식사진상에 출품한 포트폴리오 <아, 필리핀>도 그곳에서 만난 수술이 시급한 아이들의 아픔과 꿈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리핀이 배경이고, 비교적 최근이란 시점이 다를 뿐, 최민식의 사진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최민식에게 바치는 오마주’라는 느낌이 매우 강하다.

1999년부터 필리핀 빈민촌 봉사 기록
심장병·한센병 환자 치료비 보태고자
‘최민식에 바치는 오마주’ 사진집 출품

‘최민식사진상’ 특별상 뽑혔지만 거부
“선생의 사진 정신에 맞지 않는 선정”
암 발병해 귀국…기초생활수급자 처지

양씨는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하긴 했으나 형편이 어려워 미루던 중, 71년 군에 입대해 스쿠버다이빙을 익히면서 수중사진을 배웠다. 제대한 뒤 88년부터 잠수업체에서 일했고 수상 인명구조, 주검 인양 등을 줄곧 했다. 98년 부산 영도에서 바다에 빠진 택시를 건져낸 공로로 ‘부산시장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무렵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면서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됐다. 인명을 구조하고 주검을 인양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한데다 가정을 소홀히 하게 되어 불행한 개인사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 99년 전세계 다이버들이 몰리는 필리핀의 네그로스섬으로 건너가 바콜로드라는 작은 섬에서 스쿠버숍을 열고 남을 돕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2011년 임파선암이 발병해 수술하러 귀국한 그에 이어 가족들도 들어와 지금은 형편 닿는 대로 필리핀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왜 수상을 거부했는가?

“사진전에 응모해본 것이 난생처음이다. 아마추어 부문 대상에 선정되면 상금이 500만원인데 그 돈으로 심장병을 앓고 있는 메리조이(12)의 수술비에 보태고 싶어서 응모했던 것이다. 대상이 아닌 장려상이라 100만원이지만 우리에겐 큰돈이다. 지난달 22일 수상 소식을 들었고 28일께 내 작품을 비롯해 전체 수상작이 실린 사진잡지가 집으로 배달되었기에 정말 흥분된 마음으로 펼쳐 봤다.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본상도 그렇고 특별상의 일부도 그랬다. 내가 사진평론가도 아니니 일일이 ‘사진이 어떻다…’라고 시비할 일은 아니다. 생전에 최민식 선생을 직접 만난 적도 있는데, 최 선생은 특히 ‘몸으로 체험하지 않은 사진은 인정할 수 없다’는 지론을 갖고 계셨다. 자기 체험, 경험, 직접적인 상황을 승화하는 사진이어야 하는데 이번 수상작들은 최 선생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최 쪽인 협성문화재단에 수상을 거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 최 선생을 흠모했고, 어려운 이들과 15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온몸으로 틈틈이 찍어온 사진이다. 사진 속 사람들의 고통을 내 가슴에 묻어 표현한 사진들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특별상 대상에 선정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냥 모른 척하고 받아서 상금 100만원이라도 좋은 일에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수상 거부 메시지를 보내고 난 다음날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최민식사진상 선정에 대한 비판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외국에서 활동해 국내 사진계를 잘 몰랐는데 이번에 실상을 알게 되었다. 주변의 지인들도 한국 사진계가 원래 그러니 그냥 상금을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 상을 받는다면 평소 존경해온 최민식 선생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보잘것없지만 나 하나라도 이 상을 거부하는 것이 사진계가 조금이라도 맑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계도 어려운데 필리핀 빈민 돕기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현지에 살 때는 스쿠버숍 수익으로 현지인 목사인 아내와 처남과 함께 마을 아이들을 보살피고 교회도 짓고 아픈 아이들 수술을 도왔다. 사실 난 지금 기초생활수급자다. 대신 페이스북을 통해 신발·옷·가방 등을 모아 보내고 있다.”

-수술을 기다리는 필리핀 아이들은 어떤 상태인가?

“메리조이는 심장에 구멍이 3개 난 상태다. 수술비로 2천만원이 필요한데 밀알선교센터에서 1500만원을 내기로 했고 내가 500만원을 모으기로 했다. 알비나는 2차 수술을 해야 하고, 제리코는 한센병 환자로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8월6일 바콜로드섬으로 건너가는데 우선 100명분의 한센병 약을 들고 간다. 현지에 수천명의 한센병 환자가 있다고 하는데 아직 현황 파악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한국 정부나 창원시 차원에서 필리핀과 연결이 되면 좋겠는데….”

-이번 최민식사진상 파문을 겪은 소회가 어떤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사진가도 아니고 사진가가 될 생각도 없다. 오직 아이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사진을 찍을 뿐이다. 그 사진을 보고 모금활동이 더 잘되면 좋다고 생각할 뿐이다. 최민식 선생의 정신을 따라 사진을 찍을 뿐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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