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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09 19:37 수정 : 2015.07.10 13:52

신현동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짬] 곰팡이 박사 신현동 교수

“국제 환경단체 ‘어스워치’가 2008년 ‘지구상의 가장 소중한 생물 다섯 가지’를 선정했는데,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곰팡이·꿀벌·플랑크톤·박쥐·영장류였다.”

곰팡이 하면 사람들은 썩음·더러움·눅눅함·불쾌함 등의 단어부터 떠올리겠지만, 곰팡이계통분류학자 신현동(58·사진)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우리는 단 하루, 단 한 순간도 곰팡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출간한 책 제목도 <곰팡이가 없으면 지구도 없다>(지오북 펴냄)이다.

곰팡이계통분류학이란 곰팡이들의 미세구조와 유전자분석을 통해 그들의 친인척 관계를 밝혀 곰팡이 족보를 만드는 학문이다. 그는 이 분야에선 국제적으로도 알아주는 학자다. 곰팡이학 영향력 지수 1위라는 국제학술지 ‘스터디스 인 마이콜로지’의 최초이자 유일한 아시아인 편집위원이다. 그가 새로 발견해 자신의 이름 ‘에이치.디. 신’(H.D. Shin)을 넣어 지은 곰팡이 학명이 200종을 넘는다.

국내 보기드문 곰팡이계통분류학자
농대 나와 농작물병 연구하다 매료
이름 붙인 신종 곰팡이만 200여종

린네 이후 400년만에 생물분류 ‘혁명기’
환경재앙 심각해지며 ‘역할’ 연구 주목
“곰팡이 잘못된 통념 바꾸고자 책 펴내”

신 교수는 현미경 발명 뒤인 1753년 린네가 생물 분류·명명법을 확립한 이래 400년 만에 그 세계표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생물학 역사상 전례 없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약 20년 전부터 분류 기준이 유전자(DNA)로 바뀌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야 뒤늦게 출발한 국내 곰팡이 연구 환경에서, 그가 축적한 연구 실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기준 변화에 따른 것이다.

<곰팡이가…>는 그의 첫 대중용 저술이다. “관련 전문서적은 20여권 썼고, 번역서들도 있지만 일반인 대상은 처음이다. 곰팡이에 관한 잘못된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싶었다.”

그는 우리 일상 구석구석 곰팡이의 혜택을 입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된장과 가쓰오부시, 블루치즈, 홍국미에서부터 햄, 포도주 등 수많은 식품들을 즐길 수 있는 게 다 곰팡이 덕이다. 페니실린 등 수많은 의약품들도 곰팡이 없인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곰팡이가 없다면 세상은 온통 동물들의 배설물로 뒤덮이고, 죽은 식물 더미에 깔려버릴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세균도 동식물 사체를 분해시켜 자연의 순환에 중요한 구실을 하지만 동물 사체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더 분해하기 어려운 화학적 구조를 지닌 식물체의 분해는 대부분 곰팡이가 담당한다. 동물 사체 같은 단량체 분해는 세균이 없더라도 곰팡이가 대신 떠맡을 수 있지만, 나무처럼 덩치가 큰 중합체 분해를 세균이 대신 할 순 없다. 곰팡이야말로 더러움을 깨끗함으로 변화시켜 생태계를 재생시키는 놀라운 생물이다.”

생물학적으로 곰팡이는 효모와 버섯까지 아우르는 용어다. ‘균류’는 일본산 작명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식물, 동물, 이들을 분해해서 살아가는 곰팡이, 이들을 3대 진핵생물, 3대 고등생물로 꼽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곰팡이에게 식물·동물과 대등하게 ‘물’ 자를 붙여 식물·동물·균물로 대접하고 있다.”

독립영화 <산다>에도 등장하는, 메주에서 머리카락처럼 자라는 수염곰팡이는 메주공장에선 질색을 하지만 실은 “그 자체로는 독성도 없고 해롭지도 않으며 메주 품질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1958년 배우 스티브 매퀸의 등장을 알린 영화 <우주 생명체 블롭>에서 운석에 붙어 지구로 날아온 괴생명체도 곰팡이 점균(끈적균)의 특성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인터스텔라>에서 사멸해가는 지구 생태환경을 상징하는 옥수수 농사 파산의 원흉도 곰팡이다. 그는 옥수수에서 꽃가루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웅성불임’ 기술 등을 통해 생산량을 엄청나게 증대시켰지만 종의 다양성을 죽이는 이런 기술이 속수무책의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고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도 나무들을 죽이는 나쁜 곰팡이와 무너진 생태계를 정화하고 재생시키는 좋은 곰팡이들이 나온다. 그는 “영화 속 곰팡이들의 개념이 좀 모호하다. 제작할 때 전문가들한테서 컨설팅을 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의 곰팡이 이야기는 커피나무 대목에서 흥미를 더한다. 원산지가 에티오피아인 커피는 이집트와 예멘, 인도를 거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1696년 식민지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대량재배하기 시작한 뒤 동남아시아가 주산지였다. 약 200년 뒤 커피나무 녹병(곰팡이)이 번지면서 주산지는 중남미로 이동했다. 한데 70년대에 중남미 커피나무에도 녹병이 번지기 시작하면서 최근 베트남이 커피콩 생산 세계 2위국이 되는 등 동남아가 다시 커피 주산지로 부활하고 있단다.

강릉대 농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농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신 교수는 모교에서 7년간 원예학을 가르쳤고 97년 3월 고려대로 옮긴 뒤 주로 식물병학을 강의해왔다. 곰팡이를 강의 주과목으로 삼은 지는 20년쯤 됐다. “곰팡이 연구가 하나의 학문 분야로 성립된 게 식물병 연구 덕이다. 식물병의 70%가 곰팡이 때문이다. 15% 정도는 바이러스, 10%는 세균 때문이다.” 1840년대 아일랜드인 100만명이 굶어 죽고 150만명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도 곰팡이병으로 감사 농사를 망친 결과다. “이런 분야는 통상 미생물학으로 시작하는 일반적인 곰팡이 연구자들보다는 농학과를 나와 농작물 공부 체험을 한 나 같은 사람이 더 잘 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2억5천만년 전 페름기 생물 대멸종 때 숲의 파괴를 가속화한 게 곰팡이의 침엽수 공격이었다면서 “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스트레스로 숲이 활력을 잃으면 뿌리썩음병균 곰팡이가 번성해 페름기 대재앙이 재현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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