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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16 19:58 수정 : 2015.07.17 10:16

사진작가 손현주씨.

[짬] 첫 국내 개인전 ‘안면도 오디세이’ 손현주씨

그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냥 생활사진가였다. 대학 입학 기념으로 아버지를 졸라 구입한 카메라로 일상을 찍고 의미를 새겼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국제적인 사진가가 됐다. 지난해 6월 영국 런던의 한 유명 갤러리에서 개인전 <섬은 부표다>를 열었다. 갤러리에서 초청해서 열어준 전시였다. 적지 않은 전시 작품이 팔렸다. 주변에서는 기적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10일부터 서울 종로 두산갤러리에서 개인전 <안면도 오디세이>를 열고 있다. 사진작가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졸지에’ 국제적인 사진작가가 된 손현주(51)씨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서도 알려진 적이 없는 무명작가가 국제 무대에서 돌연 조명을 받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대학 입학 선물 받은 카메라로 시작
편집기자 20여년 마치고 5년전 낙향
두차례 도보일주 ‘안면도 속살’ 찍어

지난해 런던 큐레이터가 초청해 전시
“버려진 물건들에서 삶의 진정성 발견”
무명 생활사진가에서 일약 사진작가로

2013년 10월께, 손씨는 런던 대영박물관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갤러리 ‘목스페이스’로부터 전시를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깜짝 놀랐다. 대학 졸업 뒤 신문사 편집기자로 20년 근무하다 고향인 안면도에 정착한 그는 2011년부터 몇 차례 그룹 사진전에 참가했을 뿐이었다.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사진을 지켜봐 왔었고, 그와 몇 번의 이메일이 오고 갔다.

손씨는 하루 한두 장씩 자신이 찍은 안면도 사진을 에스엔에스(SNS) 공간에 올렸다. 그런 사진을 본 큐레이터가 “사진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전시를 제안한 것이다. 전시를 본 영국인들은 “런던도 섬이지만 다른 이미지를 지닌 동쪽 반도 그 작은 섬의 신비가 놀랍다”며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가 전시한 안면도 사진은 아름다운 풍광이 아니었다. 해변가에 흘러들어온 쓰레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고발 사진을 통해 환경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쓰레기가 단순히 쓰레기가 아닌 섬의 상징적 물질(오브제)로서 순환과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해안가 숲 속에 저울이 숨겨져 있었어요. 알고 보니 조개를 채취한 아낙네들이 현장에서 조개를 팔기 위해 준비해 놓은 겁니다. 세월이 흐르며 그 저울엔 녹이 슬었어요. 아! 삶이 저런 거구나.” 그는 해안가에 덩그러니 버려진 텔레비전을 보며 돌아가신 큰외삼촌을 떠올리기도 했다. “여름방학이면 외가에 갔어요. 밤이면 온 가족이 평상에 앉아 귀신 이야기로 더위를 식혔지요. 그 정겨웠던 장면이 그립더군요.”

낙향한 뒤 손씨는 2010년, 2014년 두차례, 15일간에 걸쳐 안면도 120㎞를 걸어서 일주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지겨워서 탈출한 안면도였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낯설고 무서웠다. “열아홉살 때까지 살았고, 조상 대대로 살아왔고, 아버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만, 정작 이 섬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섬을 알고 싶어, 뚜벅뚜벅 걸어서 돌아다녔다. 발톱이 두개나 빠져가며 일주를 하는 동안 그는 마음 가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3만여장의 안면도 모습이 저장됐다. “카메라는 미적 사유라기보다는 관찰 도구였어요. 그냥 보이는 대로 찍었어요.” 어느 날 사진첩을 살펴보다 ‘쓰레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갯벌에 버려진 파손된 쪽배와 깨진 거울, 찌그러진 주전자와 냄비, 요강과 플라스틱 콜라병, 안전모와 전구 등등.

“이 쓰레기들은 무수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기억을 해체하거나 보관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섬사람들과 더불어 순환 구조 속에 들어가는 마지막 과정인 셈이죠. 파손된 스티로폼 부표가 제 가치를 잃어버리고 섬으로 흘러들어와 쓰레기가 된 것이, 마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부유하다가 외롭고 쓸쓸하게 마감하는 인생과 같다고 느꼈어요.” 그러니 쓰레기는 곧 우리의 ‘자화상’인 셈이다.

그는 비록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은 지 5년밖에 되지 않지만, 스스로는 50년쯤 됐다고 여긴다. “사진은 그 사람의 인생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업(業)이 셔터를 누르며 터져 나오는 결정체입니다.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를 찍는 것이 아니라 내 안 깊숙이 있는 우물에 두레박을 던지는 일이지요. 그 두레박을 끌어올리는 깊이가 사진을 결정해요. 그동안 내가 추구해온 가치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된 인문학적 고리가 돼 끌려 나오는 것이죠.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은 그 사람이 살아온 평생의 인과가 녹아 있어요.”

현재 와인과 음식 칼럼니스트, 그리고 여행작가로도 활동 중인 손씨는 “오십은 사진 찍기 좋은 나이”라고 말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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