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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성평등도서관 ‘여기’ 이숙진 대표.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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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국내 첫 성평등도서관 ‘여기’ 이숙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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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서울시·구 기증자료로 채워
첫 성희롱 사건·여성정책 기록 집적
도서관·기록관·박물관 결합한 공간 여성의 노동권 향상이나 성폭력 해소 등 다양한 여성정책의 목표가 결국은 ‘성평등’이라는 큰 가치를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여성도서관’이 아니라 ‘성평등도서관’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여기’는 기증자와 함께 만든 도서관이다. 이 대표는 “전시된 1만여점의 자료 가운데 우리가 구입한 건 한건도 없다”고 말했다. 여성 단체와 운동가, 시민들이 기증한 자료 5000여점을 비롯해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의 여성정책 자료 등 1만여점이 비치돼 있다. 최대 6만점까지 전시할 수 있어 아직 책장은 넉넉하게 비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여기’의 자료를 풍부하게 채우는 데 기여했다. 박 시장이 공동변호인으로 나서 국내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을 소송화한 ‘서울대 신교수 사건’(1993년) 변론 자료 등을 비롯해 ‘호주제 폐지’(2005) 자료 등을 기증했다. 이 대표는 “개관 3일 전에 박 시장님을 만나 개관 소식을 말씀드렸더니 그다음날 상자 세개 분량의 파일로 잘 정리된 자료를 보내주셔서 전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서관 ‘여기’는 라키비움(Larchiveum)을 지향한다. 빽빽한 단행본으로 채워진 일반 도서관이 아니라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을 혼합한 개념이다. 자료를 열람하는 기본 도서관 기능과 함께 기록을 보존하고 연구·전시하는 기능까지 통합해 이용객들한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개념이다. 여성정책 자료와 연구보고서, 단행본, 기증자료 등은 기본이고, 여성단체들의 ‘운동’ 흔적인 배지나 포스터, 수첩 등도 모두 전시 대상이다. 이 대표는 “잃어버린 자료는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의 자료를 충실히 채워나가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단체들이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60여곳의 여성단체와 협약을 맺고 풀뿌리 단체들의 기록들을 모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시민과 함께한다’는 ‘여기’의 지향은 건축 공간의 형태와도 이어진다. 실제로 ‘여기’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857㎡(259평) 규모의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진다. 빽빽한 서가 대신 허리 정도 오는 책장부터 2m 넘는 높은 책장까지 유선형으로 배치돼 있다. 십진분류표를 보고 책을 찾는 게 아니라 ‘여성주의 일반’ ‘성주류화, 정치참여’ ‘돌봄, 일·가정 양립’ 등의 주제별로 구분돼 있다. ‘여기’의 윤지영 사서는 “일반 도서관에 비해 이런 구성을 낯설게 느끼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서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도서관이 앞으로 전시와 체험, 교육, 토론 등의 프로그램으로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성평등 정책의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며 “조용하게 숨죽이는 도서관이 아닌 조금은 북적대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평등도서관 ‘여기’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열고, 월·일요일, 공휴일엔 쉰다. 글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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