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욱 교수.
|
[짬] 한국식용곤충연구소장 김용욱 교수
서울 강남에서 중·고교를 나왔다. 영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스위스의 호텔학교도 나왔다. 귀국해선 대학교수가 됐다. 이런 이력이면 ‘엄친아’이거나 공부만 하는 범생이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고교 시절 전교 꼴찌를 도맡아 했다. 전국에서 그보다 성적이 나쁜 학생이 단 두명이었다. 그러니 그의 변신은 기적이다. 바로 경주대 김용욱(39·외식조리학과) 교수다.
그는 중학 시절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다. 만화동아리를 만들기도 했고, 유명 만화가 작업실에 가서 문하생으로 있기도 했다. 고3 때는 연예인을 꿈꿨다. 백댄서로 나가려고 춤을 배웠다. 나머지 시간에는 학업을 포기한 아이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러다 전방 수색대에 근무하며 많이 변했다. 캐나다 밴쿠버 농장에 취직했다. 유학을 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성적이 안 됐다. 6개월 만에 영국으로 옮겼다. 영어를 배우고 싶었지만, 그때까지 발음기호도 읽지 못했다. 옥탑방에 살며 밤엔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런던의 영어학원에서는 그의 영어 구사 능력이 4살 수준이라며 난색을 표시했다. 다행히 한 여교사가 그에게 일대일로 수업을 해줬다. 1년 만에 대학 진학 수준이 됐다. 스위스로 가서 호텔전문대학을 마치고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서 석·박사를 땄다. 귀국해서 대학교수로 7년째 재직중이다. 이렇게 남다른 이력을 지닌 그가 또 남다른 일을 시작했다. 바로 곤충을 요리로 먹게 하는 일이다.
만화가·연예인·백댄서…‘학포자’
전방 수색대 근무하며 방향 전환
스위스 유학해 박사 따고 교수로
세계식량기구 ‘미래식량 곤충’ 지목
연구소 차려 식용곤충 6가지 개발
강남에 ‘빠삐용의 키친’도 운영중
지난 7월 서울에 전문식당을 차렸다. 이름은 ‘빠삐용의 키친’.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이 감방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바퀴벌레를 먹는 것을 연상해 이름을 지었다. 메뉴는 옥수수수프, 토마토파스타, 아이스크림이 차례로 나오는 코스 요리다. 그렇다고 징그러운 벌레를 통째로 넣는 것은 아니다. 모든 메뉴에는 잘게 다지거나 빻아서 가루로 넣은 곤충이 들어간다. 실제로 먹어봐도 곤충이 들어갔다고 느낄 맛은 거의 나지 않는다.
“전세계 19억명의 인구가 이미 1900여종의 곤충을 먹고 있어요. 곤충은 단백질 함량이 소고기의 2~3배에 이를 만큼 영양분이 풍부해요. 미래엔 이들 곤충이 해결사로 나서게 됩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바퀴벌레를 가공해 만든 가공식품이 식량으로 등장했다. 과연 곤충은 특유의 혐오감과 징그러움을 극복하고 식량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명쾌하게 인간이 곤충을 싫어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문명화되기 전엔 인간도 곤충을 별 거리감 없이 먹었어요. 산업혁명을 하면서 식품 가공이 발달되면서 굳이 곤충을 먹지 않아도 식량 문제가 해결됐어요. 벌레를 먹으면 미개한 민족이 됐어요. 선입견이 굳어진 거죠. 여기에 예고 없이 나타나는 벌레는 인간을 놀라게 하잖아요. 그래서 혐오감이 깊어진 거죠.”
|
미래식량 곤충
|
김 교수는 곤충이 미래 식량이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를 여러가지 제시한다. “지구에 사는 150만 생물종 중 절반을 차지하는 곤충은 최대의 천연 단백질 보급원입니다. 가축 사료 10분의 1 비용으로 동일한 분량의 단백질을 얻어낼 수 있어요. 메뚜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2㎏의 사료면 충분하지만 소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선 10㎏의 사료가 필요합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돼지나 소에 비해 100분의 1 정도이니 친환경적입니다.”
식용 곤충 사육에 들어가는 물의 양도 파격적으로 적다. 소고기 1㎏을 얻으려면 물 1만5천ℓ가 들어가는데, 동일한 양의 단백질을 얻기 위해 키우는 식용 곤충은 0~3700ℓ이니 비교가 안 되는 셈이다. 소 한마리 평균 600여만원의 사육비가 들어가는 데 비해 곤충을 키우는 데는 불과 3만~6만원이면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12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식량농업기구 총회에서 미래 식량으로 곤충을 꼽는 것을 보고 독자적으로 곤충 연구에 몰두했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한국식용곤충연구소’를 차렸다. 곤충 특유의 잡내를 없애고, 고소한 맛이 나는 제조법을 개발했다.
|
‘빠삐용의 키친’의 파스타.
|
|
‘빠삐용의 키친’ 애프터눈 티 세트.
|
김 교수가 현재 식용으로 쓰는 곤충은 6가지. 정부는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갈색거저리 애벌레를 식용으로 허용했다. 현재는 메뚜기, 누에번데기, 귀뚜라미, 고소애, 꽃벵이, 장수풍뎅이 등이다. 고소애는 갈색거저리 애벌레, 꽃벵이는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의 애칭이다. 애벌레라는 단어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을 피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에서 지난 4월 새로 붙인 이름이다. 맛이 고소하다고 해서 ‘고소애’, 꽃과 굼벵이를 합해 ‘꽃벵이’다.
김 교수는 심지어 파리의 유충인 구더기도 언젠가는 인체에 치명적인 박테리아를 퇴치할 수 있는 식용 곤충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자기 체중의 50%가 단백질, 25%가 지방인 구더기는 6일 만에 성장 발육이 끝나, 가까운 미래에는 우선 가축 사료로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그는 <빠삐용이 몰랐던 식용곤충식>(범우) 책도 펴냈다. 초콜릿 피자의 도(반죽)로 이스트, 설탕, 중력분과 함께 귀뚜라미 파우더를 넣는다. 메뚜기, 귀뚜라미, 꽃무지 유충, 불개미, 개미 등이 감자튀김, 수제비, 파스타, 탕수육, 쿠키, 인절미, 카르보나라, 해물파전, 호떡 등과 어울린다. 이미 발 빠른 몇몇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에서는 그와 함께 곤충이 들어간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현직 청와대의 요리사도 연구소의 곤충식량 개발팀에 참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곤충식량을 본격적으로 개발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등에 보급하고 싶단다. 전교 꼴찌의 의미있는 변신이 놀랍기만 하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