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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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청소년 영화학교 ‘밀짚모자’ 교장 김행수
학교밖 방치된 청소년들 돌보기로
지난 5월 1년 과정 무료 ‘영화’ 강의 하길종 감독 강연 듣고 영화과 진학
첫 데뷔작 ‘단’ 이래 30년 ‘무명 중견’
‘청소년 세상 충돌기 논픽션 공모전’ 추진 경남 고성에서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온 김 감독은 ‘거칠게 놀았다’고 한다. 사고를 쳐 퇴학 위기에 몰렸다. 학교도 못 가고 고향 집에도 못갔다. 추운 겨울날 온기없는 자취방에서 자다가 안면마비가 왔다. 엄한 아버지가 무서웠다. 뒤늦게 치료하러 집에 갔으나 너무 늦어 얼굴 반쪽이 굳어버렸다. 학교에서는 아픈 사실을 알고 제적을 ‘포기’했다. 학교를 다니는둥 마는둥 하다가 우연히 신문 광고를 보았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만든 하길종 감독이 ‘실험영화’에 대해 강연을 하러 부산에 온 것이다. 강연을 들은 그는 하 감독에게 무작정 때를 썼다. “영화를 배우고 싶으니 서울로 데리고 가 주세요.” 물론 어처구니 없는 부탁이었다. 서울예대 영화과에 합격했다. 영화만이 자신을 구원해줄 것으로 믿었다. 졸업 후 영화를 만들었다. 그무렵 베스트 셀러였던 소설 <단>를 영상화했다. 두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으나 흥행엔 실패했다. 하지만 충무로를 떠날 수 없었다. 지난해엔 국제영화제를 겨냥해 불교 구도 영화인 <건반없는 피아노>를 제작하기로 했으나, 투자자가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아직 못 찍고 있다. “첫 영화가 안 되면 계속 실패한다는 영화판의 징크스가 있어요. 그 징크스를 깨고 싶었는데….” 그러던 김 감독이 영화학교를 열기로 마음 먹은 계기는 밤거리에서 만난 중학생들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을 훈계하던 그는 되려 봉변을 당했다. “우리 아버지도 참견하지 않는데 아저씨가 왠 참견이야. 그냥 가시는 게 좋을 걸요.” 그 일을 겪은 김 감독은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해 7만 명의 청소년이 학교를 떠납니다. 이 가운데 20% 정도 각종 대안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어요. 나머지 80%는 꿈도 희망도 미래에 대한 아무런 목표도 없이 생활하고 있어요. 이들은 대부분 절대 빈곤과 결손 가정 아이들입니다. 정부도 이들에 대해선 거의 무관심합니다.” 김 감독은 영화학교 입학한 청소년들에게 우선 시나리오를 쓰게 했다. “제 목표는 이들 청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시나리오를 쓰면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씁니다. 그러다보면 스스로를 살펴보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곧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거죠.”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이 되고 배우가 된다. 촬영·조명·녹음·음악·편집까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영화를 만든다.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한 제작비 300만원도 지원한다. 교실은 서울 관악구의 성불암 주지 스님이 빌려주었다. 1기생 가운데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8년간 한번도 집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던 아이도 있다. 이들과의 수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월~금, 오후 2시~ 5시 수업을 했으나 제대로 나오는 학생이 드물었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학생들은 김 감독의 열정에 녹아들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사회가 포용하려면 우선 그들에게 조그만 일자리라도 마련해줘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김 감독은 ‘제1회 대한민국 청소년 세상 충돌기 논픽션 공모전’도 추진중이다. ‘세상 충돌기’는 청소년들이 세상과 부딪혔던 일을 글로 기록한 것이다. “청소년은 자기 발전을 위해 당연히 세상과 충돌해야 합니다. 문제가 없는, 충돌하지 않는 청소년들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런 청소년은 청소년기를 아깝게 버린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사회나 학교로부터 겪었던 진실하고 솔직한 얘기를 기다립니다.“ 당선 작품은 ‘밀짚모자’ 학생들에 의해, 영화나 연극, 웹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진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왔어요. 친구들이 조금씩 도와주어서 밀집모자를 운영하고 있지요. 하지만 학교 밖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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