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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19 19:22 수정 : 2015.08.20 08:16

임진영·백래혁 부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짬] 푸드 트럭 ‘미스 꼬레아’ 차린 임진영·백래혁 부부

중고 포터 트럭을 사서 개조했다. 이름을 지었다. ‘해리 포터’. 소설처럼 마법 같은 꿈을 이루길 바라서였다. 인터넷을 통해 무쇠 가마솥을 주문했다. 메뉴는 김치볶음밥. 임진영(39·오른쪽)씨는 가마솥에 기름을 두르고 밥을 넣어 달달 볶는다. 잘게 다진 김치를 첨가해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정성을 젓는다. 고소한 냄새가 트럭 주변으로 퍼진다. 남편 백래혁(38·왼쪽)씨는 그 옆에서 철판에 계란 프라이를 부치고, 소시지와 햄을 기름에 튀긴다. 붉은 빛깔의 김치볶음밥은 네모난 종이그릇에 담긴다. 계란과 햄, 소시지는 토핑이다. 한 그릇에 5천원. 부부가 만든 김치볶음밥은 허기진 이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좁은 공간에서 힘겹게 음식을 만들지만 부부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푸드트럭이다. 개업한 지 3개월. 임씨는 억대 연봉의 외국계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고 푸드트럭에 올랐다.

외국 영화사 스카우트됐지만 ‘불편’
노량진 학원가 컵밥 맛보며 ‘결심’
중고 트럭·가마솥 장만 창업 3개월

세계시장 진출 목표 ‘미스 꼬레아’
페북 통해 노르웨이에서 합작 제안도
“크라우드펀딩으로 확장할 계획”

쉽지 않다. 푸드트럭으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지난해 3월 규제개혁 대상 1호로 꼽힌 푸드트럭은 ‘규제완화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정부는 푸드트럭을 합법화해 일자리 6000개를 창출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재 전국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푸드트럭은 고작 33대에 불과하다.

부부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동문이다. 부인 임씨가 2년 선배다. 임씨는 대학 졸업 뒤 드라마 제작 회사에 입사해 기획과 판매를 담당했다. 이어서 디즈니와 소니 등 한국에 진출한 외국 영화사에 스카우트됐다. 연봉은 1억원 가까이 됐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이 영업을 잘해 매출을 올리면 올릴수록 외국회사에 이익을 주는 일이었다. 3년 전 우연히 남편과 노량진 학원가를 갔다가 인기였던 ‘컵밥’을 맛보았다. “순간 진짜 인생을 걸 만한 일이 떠올랐어요. 바로 한국음식을 푸드트럭을 통해 전세계에 전파하는 일이죠.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메뉴는 김치볶음밥으로 정했다.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가마솥에서 바로 볶아준다는 것을 강조하기로 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는 남편도 발 벗고 나섰다.

임씨는 그때부터 짬짬이 김치볶음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묵은지를 써보기도 했고, 막김치를 넣어보기도 했다. 마늘 등으로 소스를 만들고, 볶는 순서를 바꿔보기도 했고, 버터와 식용유를 고루 써보기도 했다. 볶음밥 위에 올리는 토핑으로 번데기를 써보기도 했고, 생선회를 올려보기도 했다. 가게 이름은 ‘미스 꼬레아(Miss Corea) 김치볶음밥’으로 정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겨냥했다. 식당차에 파리, 시드니, 뉴욕, 베이징,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 도시 이름을 새겨넣은 이유다. 마침내 지난해 연말 임씨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올해 3월부터 길거리로 나섰다. 창업에는 4천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영업할 곳이 별로 없었다. 백씨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이렇게 촘촘히 자리잡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한다. 정부가 푸드트럭 영업을 허가한 곳은 대부분 주변에 음식점이 없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던 것이다.

운전도 서투른 임씨가 직접 트럭을 몰고 다니며 장소 물색에 나섰다. 학원가가 즐비한 서울 대치동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시간에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편의점에서 사 먹던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가 아닌 ‘집밥’ 느낌인 김치볶음밥에 줄을 섰다. 세 끼를 내리 사 먹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부모들에게도 소문이 나 사가곤 했다. 하지만 제법 장사가 되는 듯하자 인근 상인이 신고했다. “벌금 40만원을 물었어요. 이제는 못 가요.” 임씨는 자신이 만든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던 청소년들이 눈에 밟힌다.

요즘은 주로 주말 이벤트 행사장에 초대되곤 하는 임씨 부부의 벌이는 초보치고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평일에도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보고 다양한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일을 맞은 남편의 회사에 점심을 보내고 싶다는 아내, 초·중·고 야구부, 드라마나 예능 프로 촬영장에 보내고 싶어하는 연예인 팬클럽 등등. 이달 말에는 전문직들이 모이는 ‘프라이빗 파티’에까지 초대받았다. 틀에 박힌 와인 파티가 아닌 새로운 분위기를 원해서다.

“편하게 사무실에서 일하다 직접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치는 건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어요. 추위와 더위부터 사회의 멸시, 냉정함, 가혹함을 절실히 느꼈어요.” 하지만 임씨는 그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꿈이 있고 매일 만나는 인연을 통해 그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부부는 배고픈 이 땅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facebook.com/missgamasot)을 통해 푸드트럭을 본 노르웨이의 한 페친은 현지에서 합작을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임씨가 김치볶음밥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넓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신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백씨는 이런 임씨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앞으로 크라우드펀딩 등의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전통과 첨단이 결합해 글로벌하게 진출하는 사례를 꼭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서울시는 최근 ‘생활밀착형’ 규제개혁 방안을 발표하면서, 청년창업 아이템인 푸드트럭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임씨 부부는 더욱 신이 난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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