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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31 19:06 수정 : 2015.09.01 10:23

박태규 화가

[짬] ‘마지막 영화 간판장이’ 박태규 화가

화가보다 영화 간판장이로 불리기를 바랐다. 화가 박태규(49·사진)씨가 오는 5일 오후 5시 광주시 충장로 광주극장 앞에서 극장전을 연다. ‘여기 사람이 있소’라는 주제의 극장전은 가로 380㎝와 세로 210㎝짜리 두 개의 간판을 걸며 시작된다. 두 개의 영화 간판에는 실제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현실의 아픔을 담은 작품이 그려진다. 마당극 배우 김호준·김은숙씨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한다. 박씨는 “세월호의 아픔이 처절하게 잊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날을 기억하고,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극장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30일까지 이어진다.

5일 광주극장 앞에서 극장전 개막
‘여기 사람이 있소’ 배우들도 함께
90년대 일했던 간판 작업실도 공개

미대 시절 민중미술운동에 동참
생계도 할 겸 극장 찾아 허드렛일
“극장 간판은 내 시작이자 목숨”

박씨는 이날 광주극장에 간판을 건 뒤 옛 영화 간판 작업실로 관객들을 안내할 참이다. 1992년부터 일했던 미술실엔 <광주탈출>(2002), <풍경소리>(2001) 등 그가 광주비엔날레전에 선보였던 간판 작품들이 지금도 전시돼 있다. 광주극장 바로 인근에 있는 ‘영화의 집’엔 <기억>을 주제로 박씨가 그린 10여점의 회화 작품이 전시된다. 극장 안 로비에는 <미워도 다시 한번> <여로> 등 옛 영화 주인공들을 담은 작은 그림 20점도 선보인다. 박씨는 10~11일과 18~19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객들과 영화 간판을 함께 그리는 작업도 진행한다.

80년대 말 호남대 미대 재학 때부터 걸개그림과 깃발, 포스터 등 사회참여 그림을 그렸던 그는 졸업 뒤 “규모가 큰 작품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 간판 그리는 일에 발을 디뎠다. 당시 광주극장 미술팀에는 고 홍용만 선생을 비롯해 간판 작업 담당이 5명이나 됐다. 50~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 때 영화 간판장이는 인기 직종이었다. 광주에서도 광주극장, 무등극장 등 6개 극장엔 미술팀이 있었다. 박씨는 “매일 붓이나 빨고 수레에 간판을 싣고 나르는 단순노동부터 시작해 2~3개월 만에 처음 영화 간판 붓을 잡았다”고 회고했다. 2000년대 들어 복합상영관이 유행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영화 홍보가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전국의 극장에선 영화 간판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2004년 장기수 북한 송환 문제를 다룬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 마지막으로 그린 정식 영화 간판이었다”고 했다.

박씨는 “영화 간판은 대중과의 소통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번 극장전은 그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기도 하다. 그는 ‘간결하고 화려하게 표현되는 영화 간판 작업의 경험을 살려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2002년 10월 광주 롯데화랑에서 첫 개인전 ‘마지막 영화 간판장이’를 연 뒤 꾸준히 세상과 소통하는 그림 작업을 해왔다. “영화 간판은 아주 장점이 많은 매체입니다. 흰색, 노랑, 빨간색, 청색, 검은색 등 오방색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은 색상이 강렬하고 내용이 쉽게 눈에 띕니다.”

그는 광주극장 일을 그만둔 뒤에도 1년에 한 차례 정도 가상의 영화 간판을 무보수로 그려왔다. 박씨는 “2008년 재일조선인학교 돕기 <우리 학교>, 2012년 이소선 어머니을 다룬 <어머니> 등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영화 작품의 주인공을 그려 간판을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한국전쟁 때 미군의 노근리 학살 사건을 주제로 한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등 가상의 영화 간판들을 전시한 적도 있다.

광주극장은 8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곳으로, 여전히 단관을 고수하며 대형 영화관에선 잘 상영하지 않는 예술영화 등을 틀고 있다. 34년 호남지역 최초로 조선 자본으로 개관한 광주극장은 한국 영화와 악극단, 판소리 등을 극화한 창극단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등 민족의식을 결집하는 문화공간 구실을 했다.

박씨의 작업은 항상 현실에 발을 딛고 진행된다. 그는 올해부터 광주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99년 회원으로 출발해 환경연합 생태미술학교에서 강의를 맡았던 그는 생태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2004년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인 모임을 결성해 ‘광주천의 숨소리’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문흥동 문산마을에서 매주 수요일 오후 시작해 60여회 지속돼온 마을 촛불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박씨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감성을 작품 속에 표현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박태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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