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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09 18:44 수정 : 2015.09.09 18:44

무술감독 정두홍씨.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짬] 할리우드 진출한 무술감독 정두홍 씨

불살라 버렸다. 무술 동작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보아온 중국 무술영화 비디오테이프 수십 편을 타는 장작 더미 위에 던졌다. 아무리 고민해도 동작이 나오지 않았다. 중국 무술은 결코 우리 동작이 아니었다. 영화 <무사>(2001)의 주인공 정우성이 보여줄 창술 동작을 만들어야 했던 무술감독 정두홍(49·사진)씨는 한밤중에 혼자 봉을 들고 섰다. 어둠에는 익숙했다. 무술에 집중하기 위해 한밤중에 홀로 연마를 하곤 했다. 희미한 달빛에 몸이 가는 대로 발을 옮겼다. 손에 든 봉은 나름대로 허공을 갈랐다. 그 연속된 동작을 기억했다. 처음 해보는 보법이었고, 생소한 봉술이었다. 날이 밝자 스태프들을 불러 간밤에 완성한 봉술을 선보였다. 다들 “처음 보는 무술”이라며 신기해했다. 그 봉술을 익힌 정우성은 영화에서 멋지게 연기해 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나 중국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영웅>에서 비슷한 분위기의 봉술 장면이 등장한다. 장 감독은 “영화 <무사>를 여러차례 봤는데 봉술 연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한국의 감독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정 감독은 “무술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은 한가지 무술 기법을 새로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중국 무술영화 비디오 태우고
영화 ‘무사’에 독창적 봉술연기 고안
“무술영화 때마다 무술기법 창작 고민”

‘베테랑’ 1천만…스턴트 인센티브 없어
제대로 대접받는 할리우드 본격 진출
10일 개봉 ‘제7기사단’ 첫 액션 총지휘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베테랑>의 무술감독을 맡았던 정씨는 하루하루가 고민이다. 남들은 이 영화의 격투·액션 장면이 인상적이라며 박수를 치지만 그는 “아마도 그 박수는 3개월을 안 갈 것입니다. 관객들은 또 새로운 형태의 액션을 원하니까요. 더 신선한….”

그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액션은 손가락과 손날, 팔꿈치 등 배우의 몸이 그대로 무기가 돼 상대방을 제압하는 장면의 연출이다. 주인공의 시선과 몸동작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겨 관객들이 마치 주인공처럼 몰입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실제로 관절이 꺾이면 아파요. 그런 아픔이 과장이나 허위가 아니라 현실감 있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 숙제입니다.”

지난 25년간 그는 스턴트 배우 세계에서 정상을 지키고 있지만, 애초 그의 몸은 운동하기엔 부적합했다. 온몸의 관절이 정상보다 간격이 좁아(협착)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고 아프다. 액션배우에게 그런 증세는 치명적이다. “어렸을 때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잘 먹지 못했어요. 운동을 본격적으로 할 때도 못 먹었어요. 물과 소금만으로 버텼으니까요. 그러니 몸이 정상이 아니죠.”

그는 뒤늦게 운동을 시작했다. 고교 2학년 때였다. 텔레비전에서 어린이 태권도 대회를 중계하는 것을 보고 태권도와 합기도를 배웠다. “사실 운동에 소질은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열심히는 했어요.” 영화는 큰누나 덕분에 익숙해졌다. 중학 시절 방학 때면 서울에서 우유 배달을 하는 누나의 자취방에 놀러 갔고, 누나는 하루 1000원씩 용돈을 줬다. 그 돈으로 동네 동시상영을 하는 영화관에 가서 자주 영화를 보았다. 주로 무술영화였다.

그가 처음 스턴트 배우를 시작할 때 영화감독은 면접을 보며 “63빌딩에서 뛰어내려 무사히 착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죠. 와이어(밧줄)를 묶고 뛰어내릴 수 있어요.” 그러자 감독은 호통을 쳤다. “그런 것은 누구나 해. 스턴트 배우는 맨몸으로 뛰어내려야지.” 훗날 자동차를 뛰어넘고, 공중에서 회전하며 뛰어내리는 등 몸을 아끼지 않고 연기를 펼치는 정 감독에게 그 ‘독한 감독’은 “음, 역시 프로군”이라며 격려해줬다.

스턴트나 액션 연기를 할 때 그는 유서를 미리 써놓고 한다. 워낙 위험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서엔 두 가지가 쓰여 있다. 만약 죽으면 보상 관련 협상은 ○○○가 하고,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옆에 묻어 달라는 부탁이다. 사고로 숨지더라도 원만한 협상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아버지 곁에 묻어주길 바라는 이유는? “힘들고 외로울 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에게 지혜와 용기와 힘을 주세요’라고.” 그의 아버지는 조그만 어선 선장이었다.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의 영혼이 스턴트 현장에서 항상 그를 지켜준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가오’가 있으셨어요. 비록 가난한 어부였지만 남들에게 비굴하게 살지 않으셨어요.”

이미 200여편의 무술·액션영화에 출연하거나 연출한 정 감독은 지난 1년간 놀았다고 한다. “영화를 함께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젊은 무술감독도 많으니까요. 대부분 저와 함께 영화를 만들며 성장한 후배들이죠. 서운하냐고요? 전혀 아니에요. 후배들이 쑥쑥 크는 것을 보니 흐뭇해요.”

요즘 주위에서 <베테랑>의 흥행으로 수입이 늘었느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그는 쓴웃음을 짓는다. “스턴트와 무술감독은 그저 스태프입니다. 흥행이나 배급에 따른 인센티브가 아직은 전혀 없어요. 할리우드 영화판과는 달라요.”

그의 바람은 할리우드에 본격 진출해 한국 무술과 스턴트맨의 역량을 인정받는 것이다. 10일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영화 <제7기사단>은 그의 첫 할리우드 액션 연출 작품이기도 하다. 클라이브 오언, 모건 프리먼 등 세계 정상급 연기파 배우들의 액션 연기를 지휘했다. 조금씩 그의 꿈이 이뤄지고 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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