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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21 19:21 수정 : 2015.09.22 08:20

[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소장 박영재 씨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고향에 갈 마음에 들떠 있었다. 퇴근하려는데 인사부에서 연락이 왔다.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통보였다. 인사 담당자는 “추석 연휴 동안 가족들로부터 위로를 받으면 좋을 것”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하지만 차마 가족들에겐 이야기하지 못했다. 큰아이는 유치원생, 둘째는 4살배기였다. 고향 부모와 헤어져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자신이 해고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화를 냈다. “그런 이야기를 왜 이제야 해요. 내가 당신에게 그런 존재밖에 안 됐나요? 잘됐어요. 그런 회사라면 잘 나왔어요. 새로 시작해요.”

하지만 ‘새로운 시작’은 험했다. 1990년대 후반, 아이엠에프(IMF) 금융위기 때였다. 30대 중반에 해고를 경험한 그는 피시(PC)방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퇴직금 8천만원까지 날렸다. 그 뒤 한 중소업체에서 일하다 9년 전부터 중장년층 대상 재취업 상담 전문가로 나섰다. 최근 100살 시대 은퇴자들을 위해 <50대, 이력서 쓰는 아빠>(국일미디어)를 펴낸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박영재(52) 소장의 얘기다.

지난해 연구소를 차린 그는 50대 은퇴자들에게 이런 조언부터 한다. “구직을 직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직업으로 삼아도 구직은 정말 어려운 길입니다.”

30대 중반 아이엠에프 위기때 ‘잘려’
피시방 사업 올인했다 퇴직금 날려
섣부른 창업보다 재취업 도전 나서

자신같은 ‘베이비붐 세대’ 고민 공감
‘50대, 이력서 쓰는 아빠’ 펴내고 강연
“100살 대비 당당한 ‘구직자’ 되라!”

그는 은퇴 뒤의 삶을 ‘정글에서 살아남기’로 규정했다. 그리고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버틸 수 있나’를 고민해야 한다. 섣불리 창업에 뛰어들었다간 대부분 실패하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 버티기 작전의 첫번째 단계는 ‘철저한 좌절’이다. “퇴직은 죽음만큼이나 치명적인 스트레스입니다. 이 시기를 어설프게 넘기면 재도약을 하기 어렵습니다. 고치 속으로 들어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버텨야 합니다.”

그는 50대 퇴직자들의 정서적 반응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반화해 보았다. 낙관~의기소침~초조와 불안~분노의 과정이다. 퇴직 직후에는 자신의 경력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고 곧 재취업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유지한다. 그러면서 직장에 다니는 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 등산, 혼자 빈둥거리기 등을 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가족, 특히 부인과 어색한 관계가 형성된다. ‘남들은 제자리에 있는데 왜 나만 떨어져 나왔지?’라는 열등감과 가장으로서 무기력을 느끼면서 사회와 가족에 대해 영향력이 없어지는 현실에 분노한다. 보통 석달쯤 지나면 본격적으로 구직 활동을 시작하는데 재취업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의기소침해진다. 6개월 정도 지나면 구직 활동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재취업 지원업체나 헤드헌터와 접촉 빈도도 줄어들고,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연락도 뚜렷하게 감소한다. 마치 영원히 취업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과 초조를 경험한다. 차츰 눈높이를 낮추기 시작한다. 기회만 주어지면 급여에 관계없이 경력과 노하우를 활용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마음먹지만 구직시장에서는 이마저도 무시당한다. 결국은 이전의 직장이나 직장 상사, 사회에 분노를 전가하게 되고, 정신적인 외상(트라우마)이 깊이 남게 된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경험하는 심리상태와 다를 것이 없다. 박씨는 “50대 가장의 퇴직 스트레스는 죽음과도 비교될만큼 큰 충격”이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박씨가 상담한 은퇴자 가운데, 감원의 칼바람을 피하지 못한 증권맨 출신의 한 50대 가장은 은퇴 3개월 만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고생하는 이도 있다. 그는 “퇴직이 비록 죽음 같은 스트레스를 주긴 하지만 퇴직은 죽음과 분명히 다르다. 퇴직 뒤 망가진 선배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고, 멋진 은퇴 후 삶을 살고 있는 선배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인 55~63년생 700만명의 퇴직 행렬이 이미 시작됐다. 이들은 윗세대인 60대들과는 차이가 있다. 양질의 교육을 받았고, 급격한 성장기에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잡았다. 87년 6월의 민중항쟁을 이끈 주역이었고,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수혜자였다. ‘1가구 1자가용 시대’와 해외여행 자유화를 맛보았고, 프로 스포츠와 다양한 대중문화를 경험한 7080 문화의 주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 때 중간 간부급에서 해고를 당하기도 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고급 간부가 될 무렵인 2008년엔 또다시 금융위기로 옷을 벗어야 했다. 그래도 살아남은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제는 정년이라는 마지막 시련을 맞고 있다.

박씨는 섣부른 창업은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며 어렵지만 재취업을 권한다. 마치 자신의 직업이 ‘재취업’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달라붙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마우스품을 팔아야 합니다.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 있어요. 인터넷과 친숙해져야 합니다. 또 ‘왕년의 내가…’라는 어깨 힘을 빼고, 이력서를 항상 업그레이드해서 유에스비(USB)에 저장해 다녀야 합니다.” 또 정부 관련 기관에서 하는 다양한 무료 교육의 혜택을 받는 것은 세금을 낸 내가 찾아야 하는 권리이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창업을 한다면, 되도록 소규모로, 퇴직금의 70% 이내에서, 1년 이상 준비기간을 거쳐 뛰어드는 게 위험부담이 적다. 특히 귀농·귀촌은 ‘사회적 이민’으로 불릴 만큼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덜컥 농촌에 집부터 산다든지 하는 무리수를 두지 말고 우선 교육부터 받는 게 현명하다.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퇴직자들은 서슴지 말고 ‘구직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60살부터 100살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고 찾아야 합니다. 은퇴의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적극성이 우선입니다.”

글·사진/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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