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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1 19:24 수정 : 2015.10.02 15:38

진미은 중사

[짬] 세계군인체육대회 육군5종 선수 진미은 중사

선머슴처럼 자랐다. 맨발로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를 했다. 방과후엔 운동장이나 동네 골목을 마냥 뛰어 다녔다. 피아노를 배우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뒤로 흘려 버렸다. 같이 놀 수 있는 ‘동네 오빠’들이 좋았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를 거쳐 투원반 선수가 됐다. 하지만 어느날 깨달았다. 운동선수로는 기울어져버린 집안을 일으켜 세울수 없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은 어렵기만 했다. 좌절했다. 우연히 길거리 포스터를 보았다. 육군 부사관을 뽑는 공고였다. 직업군인이 되는 길이었다. 1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어려운 후보생 훈련을 거쳐 하사로 임관했다. 전방의 분대장으로 부임했다. 남자 군인 10명을 인솔하는 책임이 부여됐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아! 이것이 나의 천직이야” 너무 좋았다.

 그렇게 분대원들과 동고동락하던 진미은(29) 중사는 2013년 어느날 전화를 받았다.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자신을 훈육해던 무서운 담임교관이었다. “세계군인체육대회가 한국에서 열려. 네가 선수로 나가면 좋겠어.” 

피아노보다 ‘동네 오빠’와 놀던 아이
홀어머니 가계 돕고자 투원반 선수로
한계 느껴 스포츠 강사하며 학업 매진

길거리 포스터 보고 육군 부사관 지원
부하 10명 인솔 ‘직업군인 천직’ 깨달아
2년 전 한국 대표 발탁 “상위권 목표”

육군5종 선수로 차출된 진 중사는 2일 개막하는 ‘제6회 세계군인체육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다. 비록 자신의 주종목인 투원반의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120여개 나라 7300여명의 ‘군인 선수’들이 24개 종목에서 ‘계급장 떼고 한판 붙는’ 대회에서 한 몫을 하게 된 것이다.

 경북 영천의 제3사관학교 안에 설치된 육군5종 가운데 장애물달리기 경기장은 스포츠라기보다는 생명을 걸고 하는 생존 게임을 연상케 했다. ‘지옥의 레이스’로도 불리는 장애물 달리기는 꾸불꾸불하게 만들어 놓은 500m의 트랙에 모두 20개의 장애물이 설치돼 있다. 군인이 도심 전투에서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을 재현해 놓았다. 5m 높이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뛰어내리는가 하면 2m 깊이의 콘크리트 함정에 뛰어내렸다가 아무런 도움없이 탈출해야 한다. 조그만 구멍을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높이가 다른 장애물을 위로, 아래로 빠져나와야 하고, 철조망을 대신한 밧줄망이 있는 모래바닥을 기어나와야 한다. 지그재그로 설치된 디딤돌을 껑충껑충 뛰어 넘어야 하고, 로프를 잡고 경사면을 올라 점프하기도 한다. 마치 익스트림스포츠인 파쿠르(야마카시)가 떠오른다. 용감성과 대담함, 그리고 민첩함과 강인한 체력이 없이는 도전조차 하기 어려운 종목이다. 너무 힘이 들기에 선수들은 내달릴 때 배경 음악을 선택한다. 대부분 빠르고 경쾌한 곡들이다.

 진 중사의 기록은 2분40초대. 세계 정상급이 되려면 2분15초 안에 들어와야 한다. 선수들의 경기 모습만 보아도 손에 절로 땀이 난다.

50m 길이의 장애물 수영도 특별하다. 잠수로 장애물을 극복하고 수영하다가 높이 1m의 장애물을 솟구쳐 올라가 넘어야 한다. 수류탄 투척도 다양하다. 정밀 투척은 남자 5.75㎏, 여자 3.75㎏ 무게의 모의 수류탄을 15m~30m 거리에 있는 외부 지름 4m·내부 지름 2m 표적에 던져야 한다. 3분간 1개 표적에 4발씩, 4개 표적에 총 16발을 투척해 표적의 원 안에 넣어 점수를 받는다. 장거리투척은 3회를 던져 최장거리 기록을 점수로 매긴다. 또 200~300m 표준 소총 사격과 남자 8㎞, 여자 4㎞의 산악지형을 달리는 크로스컨트리가 있다. 1946년 프랑스 대위 앙리 드브뤼가 네덜란드 공수부대가 하던 전투 훈련 체계를 응용해 고안한 것이니, 진짜 군인을 가리는 종목이라고 할 수 있다.

 진 중사는 경북 예천의 풍양중 1학년 때 단거리 선수를 했다. 2학년부터는 창과 원반던지기 선수로 종목을 바꿔 도학생체전에 나가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경북체고에 특기생 입학한 그는 원반던지기 선수로 활약하다가 부산 경성대 체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투척 선수로 대성하기엔 덩치(167㎝, 57㎏)가 왜소했다. 비록 1남3녀의 막내였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가정을 일으켜 세우렸던 자신의 꿈이 ‘과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국체전 3등이 최고 성적이었다. 어머니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엄마,미안해. 내가 주제를 모르고 욕심을 부렸어.” 딸의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네 인생은 네가 사는 거야. 엄마 걱정하지 말고 하고싶은 거 해. 누가 뭐래도 너는 내 소중한 딸이야”라고 오히려 격려해 주셨다.

 진 중사는 용기를 얻었다. 자퇴를 하고 다시 공부해 이번엔 대구대 스포츠레저학부에 입학했다. 비록 엘리트 선수의 길은 접었지만 다양한 스포츠를 하고 싶었다. 수영과 스키 강사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한 학기 조기졸업하고, 내친김에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학업에 회의가 들었다. 그러다 운명처럼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진 중사는 지난 2년 동안 합숙훈련하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상위권 진입이 목표입니다.” 지난해 열린 프리대회에서 한국은 중간 수준에 머물렀다. 이제는 어머니에게 생활비도 충분히 드릴 형편이 됐다. 진 중사를 스카우트한 하선애(상사) 코치는 “진 중사가 기초체력이 좋고, 특히 한국 선수들이 취약한 장거리 투척에 뛰어난 성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한다.

 진 중사는 남들과 달리 모의 수류탄을 그냥 던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원반 던지 듯이 기운차게 온 몸을 두번 회전을 해 던진다. 자신이 못이룬 엘리트 선수의 꿈을 호쾌하게 허공에 날리듯….

영천/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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