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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8 18:48 수정 : 2015.10.09 13:47

다큐멘터리사진가 권철씨.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짬] 제주 다큐멘터리사진가 권철씨

지난 4일 오후 6시 제주시 이호테우해변 매립지에서 다큐멘터리사진가 권철씨가 국화빵을 굽고 있었다. 20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해 가족과 귀국해 제주에 정착한 그는 생계수단으로 ‘빵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다큐멘터리사진작가로 살고 싶은데 이건 도대체 막막하기 짝이 없다. 여러 궁리를 하다 국화빵을 택했다. 일본에서 덤프트럭 운전을 했으니 여기서도 할까 했으나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올 일이 가끔 있어 돌아다니는 일은 곤란했다. 그래서 매일 저녁에 장사하고 새벽에 철수할 수 있는 국화빵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국화빵을 굽다 말고 그는 자신이 찍고 전시했던 ‘야스쿠니 사진’에 불을 붙였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작품 40점이 고스란히 재로 변하는 것을 보는 그의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일본 활동 20년만에 지난해 제주 정착
사진가로 생계 막막 ‘국화빵굽기’ 나서
“처음이지만 비법 개발해 명물 만들터”

‘야스쿠니 사진전’ 언론 오보탓 취소
시민 항의에 제주지사 사과 뒤 재전시
“돈 안되는 사진찍는 게 내 운명이려니”

그가 야스쿠니신사를 현장취재한 사진들을 모아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전시회를 제주 관덕정(목관아지) 안에서 열려고 했던 것은 광복 70돌인 지난 8월15일이었다. 그런데 돌연 <제민일보>에서 “식민역사를 부정하는 야스쿠니 풍경 사진을 역사적 장소인 관덕정에 건다”고 오보를 냈다. 이를 본 광복회 제주지부는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제주시에 항의했고, 제주시에서도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관덕정 내부 전시를 취소해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조처에 시민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8월17일 김병립 제주시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진작가와 제주시민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추석 연휴 때 관덕정에서 야스쿠니 전시는 다시 열렸고 지난 3일 제주시청 광장 전시를 거쳐 이날 이호테우해변 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권 작가는 이날 사진을 찍어주며 친해진 이호테우 해녀들과 주민들을 초청했다. 이들은 제주순대, 아강발(제주도 돼지로 만든 족발), 막걸리 등을 챙겨 와 거리전시를 축하하면서 한판 놀았다.

-굳이 태울 필요까지 있는가?

“한국인의 불감증에 대해 자극을 주고 싶었다. 이것은 퍼포먼스다. 군국주의의 발톱을 감춘, 야스쿠니신사의 두 얼굴 중 하나를 까발리고 싶었다. 앞으로도 거리전시를 하면서 야스쿠니 사진을 태울 것이다. 계속 알려야 한다.”

-그 뒤 <제민일보> 쪽에선 어떤 반응이 있었나?

“정정보도는커녕 꼼짝도 않고 있다. 우리(졸지에 친일작가로 낙인찍힌 권 작가와 광복절 전시를 못 해 손해를 본 간드락소극장)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제민일보사와 해당 기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다.”

-국화빵 장사는 언제부터 했나?

“준비할 게 많더라. 실제 제주시 노형오거리에 나온 것은 일주일 된 셈이다. 처음엔 많이 태워 먹었다.”

-이것도 퍼포먼스인가? 아니면 제대로 할 건가?

“한다면 한다. 태어나서 장사는 처음이다. 국화빵을 굽는 것도 처음이다. 유사한 업종의 풀빵, 국화빵, 하루방빵 등을 먹으면서 연구했다. 재료를 좋게 써야 한다는 상식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만든 국화빵이 최고라고 자신한다. 물론 반죽에 비밀이 들어 있고 밝힐 수 없다. (진지한 표정으로) 물 한 컵이 다르더라. 이건 퍼포먼스가 아니라 사진을 계속 찍기 위한 밥벌이다. 국화빵 굽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 해보면 모른다. 정말 솔직히 말해서 사진 찍는 게 훨씬 쉽겠다.”

-손님들 반응은?

“그 일주일 사이에 두 명이나 나를 알아보는 고객을 만났다. 한 분은 이호테우 주민이고 한 분은 방송에서 나를 봤다는 학생이었다. 하하하, 국화빵 하나 더 넣어줬다.”

-앞으로 계획은?

“국화빵 장사를 본격화할 것이다. 빵을 담아주는 종이봉투에 사진과 관련된 뭔가를 포함하거나, 트럭 뒤편에 스크린을 만들어 사진 영상 슬라이드쇼를 한다거나, 대형 주차장이 있는 곳이라면 이젤 전시도 가능하겠고…. 나는 굳이 고급 갤러리에서 전시할 생각이 없다. 시민, 관객에게 다가가는 전시 형태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국화빵은 나의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내 사진과 관객 간의 문턱을 낮추는 구실도 하는 것이다. 제주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권철의 국화빵’이 인정받게 되면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지 않을까? 지난 관덕정 전시 때 중국 젊은이들이 많이 왔다 갔다. 그들은 야스쿠니가 뭔지 한눈에 알아보더라. ‘항일’에 관해서 중국 사람들도 관심이 많다.”

한때 일본 사진작가들이 필름으로 찍은 다음 단 한 장만 인화를 하고 필름을 태우곤 했다. 필름이 남아 있는 한 무한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품적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짓이었다. ‘유일한 프린트’란 것을 입증하려는 의도였다. 권 작가는 지금 시점에선 사진 판매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의 철학은 “다큐사진 작가는 그가 찍은 피사체를 이용해 이윤 창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시는 해도 작품을 판매하진 않겠다는 것이다. 그 역시 작품을 태우지만, 그 취지는 하늘과 땅만큼 다른 셈이다.

씨알도 안 먹힐 말이겠지만, 권 작가에게 “너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 아니라면 사진을 판매하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니니 마음을 고쳐먹어라”라고 권유해봤다. 그는 “돈 안 되는 사진만 찍는 게 나의 운명이려니 한다”고 마무리했다.

제주/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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