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찰리 바랑제, 로라 딜레. 사진 로라·찰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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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프랑스 출신 그래픽디자이너 찰리·로라 부부
“기업이윤 아닌 인간 삶에 기여하고파”
2013년 나란히 그만두고 ‘방랑’ 시작 올봄부터 6개월째 전국 12곳 농촌살이
그림 그려주며 생활 속 예술 가치 실감
“농사짓는 손·그림 그리는 손 같아요” “대학 졸업 때까지는 남들처럼 잘나가는 직장에 취업하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막상 취업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게 기업을 홍보하고 물자의 소비를 촉진하는 첨병 노릇이었어요. 삶의 질이나 사람의 감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상품 판매를 부추기는 데 회의가 들었어요.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게 뭘까, 고민이 들면서 직장을 그만두었죠.” ‘캠퍼스 커플’인 이들의 꿈꾸기는 곧 방랑의 시작이었다. 2013년 캐나다로 건너가 6개월 동안 머물며 프랑스 밖을 체험하고 여행에 필요한 영어를 익혔다. 파리로 돌아와 1년간 돈을 모은 이들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알려진 서울로 왔다. 하지만 다국적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하루를 보내기는 파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우프’를 해보기로 했다. 친환경 농가에서 숙식하며 일손 돕기. 땀 흘려 노동하면서 자연친화적인 유기농업을 체득하고 다양한 농촌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전통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들에게 딱 맞았다. “프랑스에서도 유기농을 하지만 대개는 한두 가지 판매·가공용 작물입니다. 식용·생활용품은 대규모 슈퍼에서 삽니다. 한국의 유기농가는 판매도 하지만 여러 작물을 길러 자급자족하는 게 놀라웠어요. 텃밭에 갖가지 채소를 길러, 남는 것은 자생장터를 통해 이웃들과 나눠 먹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프랑스에서도 가끔 그런 사례가 있는데, 손을 타지 않는 뒤뜰에 심어 자기 식구들만 먹거든요.” 이들은 한반도 전역을 돌아보기로 하고, 적절한 곳을 점찍은 뒤 사이트에 올려진 사진과 소개글을 살펴 선호하는 농작물을 기르는 농가 12곳을 최종 선택했다. 전통을 간직한 곳, 특히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일주일 중 엿새를 일하고 하루를 쉬었다. 일하는 틈틈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쉬는 날은 근처 관광지를 돌아보거나 산행을 했다. 한국인의 실생활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농촌에도 도시처럼 빨리빨리가 일상화되어 있지만 발효식품의 느릿느릿이 공존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이러니였어요. 기업화한 곳에서 만든 유기농 비료와 농약을 쓰면 유기농 인증을 쉽게 받는데, 정작 자체적으로 만든 천연비료와 농약을 쓰는 농가는 인증을 받지 못하더라고요. 기성 비료와 농약에 알려지지 않은 독성이 들어 있을 수 있는데 말이죠.” 그들은 제주의 한 농가 체험을 들려주었다. “부부는 아주 전투적이었어요. 그들이 생산한 병조림을 납품해 달라는 대형 마트의 요구를 거절했어요. 마트에서 상표를 새로 달겠다는 조건이 문제였어요. 그들은 자신의 어린아이한테 상표를 그리게 하고 한장에 100원씩 용돈을 줬는데, 마트의 조건을 맞추자면 아이의 일거리가 없어진다는 이유였어요.” 찰리·로라 커플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생활과 분리되는 게 아니었다. 농부의 아이가 그린 상표 그림이 그들한테는 예술이었다. “우리 그림이 예술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 또는 무엇을 위한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맞춰가기보다는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본능에 따라 그리는 게 예술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시간이 닿는 대로 농원 간판, 창고 벽화 등을 손그림으로 그려줬다. 농가들이 ‘그림을 그려준다’는 정보를 공유해 너도나도 원했기 때문이다. 농원 가족, 이웃 주민의 초상도 틈틈이 그렸다. 어느 곳에서는 들일 대신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이 그렇게 쓰일 수 있다는 데 무척 만족해했다. “여유가 있는 곳에서는 세밀화를, 힘든 곳에서는 단시간에 그리는 크로키를 그렸어요. 필요한 분한테 그림을 드리고, 화첩에 그린 것들은 고향 집으로 부쳤어요.” 그들은 아직 부치지 못한 10여권의 화첩을 보여주었다. 자신들의 삶의 기록이어서 두고두고 볼 것이라면서. 그들의 손은 농사일로 거칠어졌다. “혹시 그림 그리는 데 해가 되지는 않을까”라는 질문은 어리석었다. “손은 도구일 뿐입니다. 농사나 그림이나 손을 통해 이뤄지죠. 그림 그리는 손, 농사짓는 손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한국인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빨리빨리”와 “많이 먹어”. 가장 가슴에 남은 것은 믿음이었다고 했다. 어느 농가에서는 이들에게 집을 맡기고 일주일 이상 비우더라는 것. 돌아와서는 냉장고에서 김치만 먹은 것을 보고 “마음대로 꺼내먹지 그랬느냐”고 말하더라고 했다. “한국에서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웠어요. 언젠가 다시 올 생각입니다.” 그들은 인사동 아라아트 갤러리에서 전태일기념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시대정신> 전시회를 둘러본 뒤 마지막 체험 농가로 떠났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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