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호원대 겸임교수.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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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장자’ 33편 완역해낸 김갑수 교수
국내 첫 ‘장자 박사’로 유명
역주 준비하다 번역 먼저 끝내 “외·잡편 사회비판 성격 강해
고 안동림 교수 역주 신뢰
번역도 학술업적 인정해줘야”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에게 중요한 것은 ‘도와 덕을 타고 소요하는’ 삶이다. 유가가 말하는 인의예지의 삶은 ‘백성을 부리기 위한 위정자의 술책’일 뿐이다. 중국 철학자 펑유란(1895~1990)은 장자의 사상과 문체를 두고 ‘초탈적이고 광활하다’고 했다. 장자의 논변 속엔 뛰어난 문학적 예시들이 가득하다. 대붕을 비웃는 뱁새 이야기는 초월과 현세, 다름과 같음 같은 사유 영역에서 제법 적실한 질문을 던진다. 장자는 <이소경> <사기>와 함께 ‘중국의 3대 문장’으로도 불린다. 김 교수는 고교 시절 독서광이었다. 교과서보다는 칸트, 공자, 예수의 생각을 궁금해했다. 논어는 너무 좋아해 외우고 다녔다. 그러다 대학 입시 재수를 준비하던 시절 운명처럼 장자를 만났다. “논어에서 느낀 격식이랄까 격조랄까, 이걸 풀어버린 자유분방함이 참 멋있었죠.” 성격에도 맞았다. “제가 형식을 싫어하거든요. 구애됨이 없이 살고 싶었어요.” 장자를 만나면서 서양철학을 전공하려던 애초 생각을 바꿔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을 배웠다. “성대의 교시가 인의예지입니다. 노장 철학의 현실인식을 주제로 한 석사논문 심사를 받는데 심사위원장께서 제 논문을 땅바닥에 내던졌습니다. 도가의 유가 비판 내용을 두고 ‘누가 그러더냐,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가서 배우라’고 하시더군요.” 다행히 지도교수의 설득으로 논문은 통과됐다. 하지만 모교에서 강의할 기회는 잃었다. 지금껏 장자 독법에 변화는 없는지 물었다. “단순한 이야기의 집합체가 아니라 정교한 사상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지요. 외편과 잡편(장자는 내편과 외·잡편 33편으로 구성)은 특히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합니다.” 이어 그는 ‘절성기지’(絶聖棄知)란 말을 꺼냈다. 노자에 1번, 장자에 2번 나온다고 했다. “유가가 말하는 성인과 지식을 끊으라는 뜻인데요. 지식인과 성인이 가져다준 문명이 결국은 못 배운 민초에 대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로 이어졌다는 것이지요. 백성은 권력의 개입 없이도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봤어요. 장자는 자유의 조건으로 평등을 지향합니다.” 김 교수는 “장자는 부유함 자체가 죄악이자 구속이며, 가난은 자유로운 삶을 보장한다고 확신했다”고 적었다. 가난한 이들이 진짜로 가난을 즐길 수 있을까? “최근 뉴스를 보니 거부가 재산환원을 통해 가난하게 죽고 싶다고 했다는군요. 저도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 이지요. 가진 사람들이 돈에만 목표를 두지 말고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는 것, 그게 장자가 주는 오늘날의 메시지이겠지요.” 그는 국내의 장자 역주본 가운데 영문학 전공자인 안동림 전 청주대 교수가 쓴 책을 신뢰하는 편이라고 했다. 주관적 해석이 억제되어 있어서다. “기존 번역서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말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공자의 번역은 문장이 너무 옛날식이지요.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보면 문법은 맞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도 많습니다.” 예를 들었다. “경거망동(輕擧妄動)의 망자가 있지요. ‘함부로’로 옮기면 될 것을 굳이 ‘망령되이’로 번역해 ‘망령되이 묻겠습니다’ 라고 옮깁니다.” 이번 번역서에도 그는 자신의 주관적 해석을 넣지 않았다. 독자들이 직접 판단하라는 취지에서다. 그는 고전 해석에서 ‘주관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했다. “장자의 무지 개념은 자아의식이 아예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장자의 견지에선, 최고의 지적 상태이지요. 일부 연구자는 이를 신비화해서 ‘직관을 통해 도달하는 최고의 지적 상태’라고 직관 개념을 끼어 넣기도 합니다. 그릇된 주장이지요.” 김 교수는 얼마 전 헌책방 순례 때의 경험을 소개했다. “1930년대 일본서 출판된 ‘일본사상사전’을 샀는데요, 그때 일본서 번역된 사회주의 서적 판본 목록이 적혀 있더군요. 거의 모든 마르크시즘 서적이 망라되었습니다. 사회주의 서적이 이 정도이니, 고전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장자가 우리말로 번역되기 시작한 게 60년대 말, 일본어 중역을 통해서였다. “노벨상을 못 탄다고 하는데, 학문의 두께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우린 ‘학문의 종주국’이 아니지요. 일단 번역이 제대로 되어야 합니다.” 그는 대학에서 번역도 일반 저서와 동등하게 학술적 업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했다. “번역을 하다 난관에 부딪히면 어떻게든 해결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번역은 책을 쓰는 것 이상으로 힘든 작업입니다.” 노장 사상에 대한 연구와 저술로 글쓰기에 자신이 붙었다는 김 교수는 앞으로 장자 역주본 출간과 더불어 중국철학사 저술, 고전 번역 등을 해나갈 계획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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