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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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새달 6일 재난구호단체 출범 현해 스님
30대초반 그룹 ‘달빛호랑이’·배우로
스턴트우먼 1세대 ‘영웅여걸’ 활약 34살때 출가…미국서 태권도 포교
팽목항 세월호 현장서 봉사 계기로
대한재난구호안전봉사회 설립나서 그는 충남 당진의 평범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오빠 9명에 막내 외동딸이었기에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오빠들 중엔 운동선수가 많았다. 마라톤과 권투 선수 출신도 있었고, 경찰도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선머슴으로 자랐다. 공부보다는 운동이, 특히 몸과 몸을 부딪치는 격투기가 좋았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 선수였다. 중학교 들어가선 온갖 무술을 배웠다. 고교 졸업 때쯤에는 이미 어떤 남자와 겨뤄도 밀리지 않는 무술의 고수가 됐다. 태권도, 우슈, 격투기, 검도 등. 킥복싱은 동양챔피언으로 15차 방어전까지 치렀다. 암벽타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여성무술시범단 ‘영웅여걸’의 핵심으로 활약한, ‘국내 스턴트 우먼 1세대’였다. 긴 칼과 짧은 칼, 두 개를 허리에 찬 그는 명함을 공중에 손으로 튕겨 날린 뒤, 칼을 전광석화처럼 뽑아들어 허공에 있는 명함을 반쪽 내 다시 손으로 반쪽 난 명함을 받아내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때 각종 무술 단수를 합치니 23단이었다. 태권도 4단, 우슈 5단, 킥복싱 5단, 거합도 5단 등등. 세계적인 영화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왔고, 국내 대기업에서 광고 모델 제의도 왔다. 영화 주인공으로 발탁돼 촬영하기도 했다. 격투기엔 대적할 여자 선수가 없어서 남자 선수와 맞붙었다. “어느 순간 연예인의 화려함이나 인기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한창 인기가 있을 때 속세를 떠났어요.” 34살이 되던 95년 뒤늦게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큰스님의 권유에 그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깎았다. ‘어진 바다’라는 뜻의 법명 ‘현해’(賢海)를 얻고, 직지사에서 사미니계를, 송광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수행의 길은 어려웠다. “많이 답답했어요. 불경을 외우는 것도 힘들고 엄한 규율을 따르기도 쉽지 않았어요. 나를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하심을 갖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어요.” 스님이 됐지만 타고난 끼와 운동에 대한 열정은 누를 수는 없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동안 태권도로 포교 활동을 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는 45일간 팽목항 현장에서 유가족을 위해 봉사를 했다. 봉사는 그의 수행이자 포교 활동이었다. “선방을 나와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뒤늦게 출가해서 큰스님들처럼 되지는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재난 현장에 법당을 차리고 자비 공덕을 베풀자는 결심을 했어요.” 경비행기 조종 자격증도 땄다. “경비행기를 몰고 일본과 중국을 거쳐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까지 가보는 게 목표였어요.” 이제는 체계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재난구호단체를 만들었다. “대만의 비구니 스님이 창설한 봉사단체 ‘자비공덕회’를 보고 재난 현장에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해 숭실사이버대학 소방방재학과에 입학했다. 전문성을 갖추고 싶었다. 지난달에는 국민안전처로부터 사단법인 ‘대한재난구호안전봉사회’의 설립허가를 받았다. 새달 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출범식을 연다. “작은 봉사부터 시작해야겠죠. 노숙자와 독거노인을 찾아가 월동 준비를 도와주고 목욕 봉사를 할 것입니다. 분야별 전문가를 초빙해 봉사자를 재난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갖추려고 합니다.” 현해 스님의 법당은 따로 없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수행입니다. 재난 현장이나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는 제 차가 바로 법당입니다.” 법당이 없으니 자유롭다. 요즘은 구호단체 설립을 마무리하느라 서울 도심에서 거처한다. 아침이면 청계천 주변을 달린다. 비록 젊을 때의 날렵한 몸은 아니지만 무공의 깊은 내공이 풍긴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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