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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24 19:14 수정 : 2015.11.24 21:06

[짬] 일본 허용하지마 헌법개악·시민연락회 다카다 겐 사무국장

“한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학자인 리영희를 기념하는 상을 새달 3일 서울에서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동지들이 저를 불러준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쁩니다.” 지난 19일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 지요다구 국회의사당 앞. 아베 정권이 9월19일 강행·통과시킨 안보관련법에 대한 비판 연설을 이어가던 다카다 겐(70) ‘허용하지마 헌법개악·시민연락회’(이하 시민연락회) 사무국장이 쑥스러운 듯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정말 제가 이 상을 받아도 되는지 망설였습니다. ‘전쟁법’(11개 안보관계법)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총궐기운동에 대해 한국 시민들이 이런 모양으로 연대의식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인 감정을 말하자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처럼 너무 기쁩니다.”

1982년 나카소네 총리 개헌 시도에
평화 헌법 9조 수호운동 본격 투신
정당 기대지 않고 자발적 풀뿌리 운동

지난 해 출범 ‘총결집행동’도 주도
“내년 아베 사임 끌어내는 게 목표”

올해 하반기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안보투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일본 시민들은 별다른 지친 기색 없이 19일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여 안보법제 반대 집회를 진행했고, 29일엔 히비야 야외음악당에서 일본의 안보투쟁과 오키나와 헤노코 기지 이전 투쟁을 잇는 대규모 집회를 예고해 두고 있다.

일본 시민운동가 다카다 겐
3회 리영희상 수상자로 결정된 다카다 사무국장은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본의 헌법운동을 이끌어온 시민운동가다. 그 때문에 오카모토 아쓰시 이와나미서점 사장은 그를 올해 리영희상 수상자로 추천하면서 “(다카다는) 지식인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추진하려는 ‘헌법 9조’ 개헌을 철저히 비판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하고 지탱해온 없어선 안 될 인물”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다카다 사무국장은 자신이 본격적으로 일본 평화헌법 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1982년 11월 취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97) 전 총리의 등장”이었다고 말했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주도한 미-일 안보협정 개정에 반대해 전국적으로 확산됐던) 1960년 안보투쟁 때 전 고교 1학년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반전운동에 참여했지만, 본격적으로 헌법 9조를 지키는 호헌운동을 시작한 것은 (개헌을 자신의 주요 정치 목표로 내건) 나카소네 총리가 등장한 뒤입니다.”

단, 그가 추진한 운동 방식은 기존의 헌법운동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사회당(현 사민당)이나 공산당 등 특정 정당과 관계없이 시민들의 자발성에 기댄 ‘풀뿌리 운동’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역의 여러 작은 풀뿌리 헌법운동 단체들을 한데 연결해” 만든 운동은 1993년 ‘스톱! 개헌·시민네트워크’를 거쳐 1999년 시민연락회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다카다 사무국장에게도 이번 안보투쟁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분열된 채 운동을 이어온 사민당, 공산당, 무당파 시민운동이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다, 9조를 부수지마 총결집행동 실행위원회’(이하 총결집행동)라는 단일대오를 형성해 아베 정권과 대결했기 때문이다. 다카다는 지난해 12월 총결집행동이 결성돼 이후 운동을 이어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까진 집회에 참여하고 싶어도 어디서 주최하는 집회에 가야 할지 몰라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함께 운동을 진행하게 돼 모두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와 같은 학생모임, 엄마들의 모임, 학자들의 모임이 결성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일본 시민운동은 지난 9월 아베 정권의 법안 강행 통과를 막진 못했다. 다카다 사무국장은 “(연립 여당인) 자민당-공명당 내에 (법안에 반대하는) 분열을 일으키지 못한 것”을 가장 큰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인 가운데 ‘데모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사람은 20%(약 2000만명) 정도 됐지만, 실제 집회에 나선 사람은 약 300만명이었다고 한다. “이 1700만명이 참여했다면 여당 내에 반란이 일어나고, 여론도 더 크게 변했을 겁니다. 앞으로 이들이 운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총결집행동은 ‘전쟁법 폐지를 요구하는 2000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8일엔 <아사히신문><마이니치신문>등에 이와 관련된 전면광고를 실었다. 1700만명이 쉽게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광고란 한쪽에 서명용지도 만들었다. 법안 반대 시민들은 이를 잘라 서명한 뒤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 등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여당은 2013년 참의원 선거 때 2500만표 정도를 획득했습니다. 우리가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전에 2000만명의 서명을 모으고 야당이 (선거 단일화 등을 이뤄내) 함께 싸울 수 있다면 여당을 깨뜨리는 게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렇게 아베 내각의 총사임을 이끌어내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는 이어 “일본의 전쟁법이나 헌법 개악에 대한 반대운동은 아시아 민중들의 연대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며 “아시아 민중들이 연대해 이 문제에 함께 대처해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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