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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4 20:45 수정 : 2015.12.14 20:49

김낙년 교수

[짬]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 김낙년 교수

“요즘 저한테 ‘정체가 뭐냐’고 묻는 이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라고 합니다.” 지난 7일 동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낙년(경제학) 교수가 몇번이나 힘주어 한 말이다.

그가 2009년부터 소장을 맡고 있는 낙성대경제연구소는 뉴라이트 담론의 한 축인 식민지근대화론의 학술적 기지 노릇을 해왔다. 그 핵심인 김 교수는 2006년 국민계정 통계를 토대로 일제시대에도 경제성장이 이뤄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식민시기 우리 경제를 수탈로 설명해온 국사학계의 전통적 관점에 실증 데이터를 들이밀며 도전한 것이다. 논쟁이 이어졌지만 사관의 문제까지 겹치며 쉬이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진보나 민족주의 사학 진영의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최근 3~4년 김 교수의 모습은 대중에게 사뭇 다르게 비쳐진다. 그는 이 기간 토마 피케티 모형을 적용해 우리 사회 불평등 실태를 드러내는 연구 결과물을 잇달아 발표했다. 2012년 소득세 자료를 추적해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가져간다는 사실을 밝혔고, 최근엔 부의 축적에서 상속이 기여하는 몫이 2000년대 42%로 늘었다는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흙수저 계급론’을 실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연구에 진보진영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불평등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실증자료이기 때문이다.

2006년 일제강점기 국민계정 첫 도출
뉴라이트 ‘식민지근대화론’ 근거로
2012년 소득세 자료로 ‘불평등’ 확인
진보쪽 ‘흙수저 계급론 실증’ 관심

“진보·보수프레임 따라 편향된 평가
통계일 지겹지만 사실 밝히는 재미”

“내 작업 결과를 놓고 이런 저런 논란이 많지만, 진보·보수 모두 자신들의 프레임에 맞춰 편향되게 봤을 뿐이죠.” 그는 자신의 연구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우리의 문제를 좀더 장기적 맥락과 국제비교 속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야 드러나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일제시대 국민계정 통계를 낸 것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려면 ‘국제적으로 통용가능한 수량기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발상 때문이다. 불평등 연구는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성장세가 꺾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 경제를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는 그간 분배나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존 경제학자들은 국민계정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아요. 사실 통계 작업은 매우 테크니컬하고 지겨운 일입니다. 예컨대 소득세 통계를 이해하려면 소득세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소득세법은 매년 바뀝니다. 통계 이해에만 몇개월이 걸려요. 저는 이런 작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의 논문을 보면 작업의 지겨움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수많은 자료가 열거된다. 딱 맞는 게 없으면 유사 자료를 찾아 과학적 방법에 따라 대리값이라도 구해야 한다. “좌·우 진영 모두 쓸 수 있는 통계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인프라 제공을 통해 공통 논의의 장을 만드는 의미가 있지요.” 그는 지겨운 일이지만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는 즐거움도 크다”고 했다. “사망률만 해도 시기별로 다 다릅니다. 내 아이디어와 자료가 합쳐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연구소는 내년말 연구원 20여명이 3년 프로젝트로 진행한 통계자료집 <한국의 역사통계>를 국문과 영문판으로 낼 예정이다. 조선 후기부터 가능한 수준에서 추계해 국민계정 말고도 물가와 임금·생활수준·인구·법률·교육 등 20개 항목의 통계를 담는다. “지금까지는 분야나 전공이 다르면 소통이 되지 않았어요. 이 자료집은 그런 장벽을 허무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논문에서 흙수저 계급사회가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해법을 묻는 질문에 “아직 연구가 되지 않아 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했다. “원인은 과학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의 문제에는 ‘시각’이 끼어듭니다. 저는 아직 입장을 세울만큼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아요.” 연구를 통해 확신이 생길 때 발언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장 세금을 늘리면 사회적 비용이 늘어납니다. 외국과의 비교 연구나 복지국가 지표에 대한 계층별 차이와 같은 연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지국가’에 적극적인 야당쪽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내가 야당 리더라면 복지국가 연구를 통해 비전을 만들겠어요. 우리 시대가 지금 이런 상태인데, 이런 사회로 가고자 하며, 노력하면 갈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증세의 구체적 방법론과 외국과의 비교 연구 내용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금 같은 방법으로는 야당이 다수를 설득하는 것은 택도 없어요.” 그는 건강보험이나 연금 분야가 자신의 후속 연구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복지국가를 하려면 이 문제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제자의 불평등 연구에 대한 스승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의 반응이 궁금했다. 뉴라이트의 좌장격인 안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학부 시절 김 교수의 지도교수였다. 김 교수가 생활비 지원까지 받고 도쿄대 유학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한 것도 그였다. 김 교수는 대학 4학년 때인 79년 유신반대 학내 시위를 이끌다 제적·투옥된 경력 탓에 대학원 입학을 거부당하자 85년 뒤늦게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 도쿄대 교수였던 안 교수는 86년 귀국해 이듬해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전신 낙성대연구실을 열었다. 김 교수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93년 합류했다. “안 교수님이 아직 논문을 읽지는 않으셨어요. 구체적인 코멘트가 없었어요.”

김 교수는 “교수님 역사의식 똑바로 가지세요”라고 자신을 공격하는 학생도 있다면서, 역사 교과서 논란을 언급했다. “국정 교과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어차피 정권 바뀌면 검정으로 돌아갑니다. 진짜 문제는 현 교과서가 교육의 다양성을 막고 있다는 것이죠. 민족주의나 배외주의 색채가 강해 균형있는 사고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일제의 쌀 수탈을 예로 들었다. 일제말기의 공출과, 그 이전 시장경제의 틀에서 이뤄진 수출은 다른 것인데 모두 수탈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의 잘못된 의식을 바로잡는 데 시간을 다 쓴다”며 ‘민족 중시’ 교육 현실을 답답해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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