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9 19:33
수정 : 2016.05.0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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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김유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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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입양인 가족찾기 돕는 입양인 김유리씨
“제 친구 호영이는 남은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이미 한국 경찰을 통해 수소문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80년 한국사회봉사회의 입양 서류에 적힌 친부모(아버지 최덕만, 어머니 김학명)의 인적 사항이 사실과 다른 것 같다고 합니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언론의 도움을 청합니다.”
지난달 한 독자가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다급하고 간절한 사연이다. 암 투병 중인 덴마크 한인 입양인 최호영(40·작은 사진 왼쪽)씨의 마지막 소원인 혈육 찾기를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최씨는 2013년 발병해 그동안 6차례나 수술을 받았으나 암이 전신으로 퍼져 현재 런던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편지를 보내온 독자 김유리(44·사진)씨가 지난 5일 직접 <한겨레>를 찾아왔다. 자신도 프랑스 한인 입양인이라고 밝힌 그는 최씨만이 아니라 한국 가족을 찾는 덴마크 친구들의 서류를 한아름 가지고 왔다.
7살때 프랑스로…21살에 가족찾아
고학하며 대학서 ‘한국어’ 전공
“손잡아준 선생님들 덕분에 정착”
덴마크 입양 최호영씨 암 투병 사연
우연히 알고 ‘마지막 소원’ 돕기 나서
“한국인의 정으로 ‘한’ 풀어주세요”
“덴마크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에는 1970년대초~90년대초 집중적으로 보내져 한인 입양인들이 가장 큰 아시안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이 결혼해서 자녀들 낳게 되면서 부쩍 뿌리찾기에 나서는 추세입니다. 아이들이 가족에 대해 자꾸 물어보니까요. 5월은 가정의 달이고, 5월11일이 입양의 날이라고들 하던데, 평생 단 한번도 “엄마! 아빠!”라는 단어들을 써보지 못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한국에 한번 와보고 싶어도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꿈만 꾸고 있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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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덴마크 한인 입양인 최호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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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씨는 입양인 단체나 기관에서 활동한 적도 없는 자신에게 이처럼 도움 요청이 몰려와 “솔직히 겁이 났다”고 했다. “호영이만 해도 10년 전부터 아는 사이인데, 서로 입양인인 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2월 덴마크 한인 입양인 사이트에 호영이가 사연을 올려 깜짝 놀랐어요. 스웨덴인 남편과 결혼해서 남매 낳고 몰타에서 사업으로 성공해서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투병을 하면서 애타게 혈육이 그리워진 거였어요.” 김씨가 이 사이트에 쓴 답글을 보고, 다른 입양인들도 그에게 ‘입양 파일’을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전 운이 좋은 편이어서 93년 21살 때 귀국하자마자 2주 만에 가족을 찾을 수 있었어요. 7살 때 입양이 된 까닭에 친부모는 물론 형제자매와 정릉의 집까지 기억이 뚜렷했으니까요.”
김씨는 17살 때 프랑스인 양부모에게서 독립해 고학으로 파리 국립동양어대에서 한국어·한국문학을 전공했다. 그때 사귄 한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는 가족도 손쉽게 찾을 수 있었고, 아르바이트로 한국 언론의 취재를 도운 인연으로 2002년부터 국내에 정착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파리에서 마침 홍세화 선생님의 따님과 알바를 같이 했어요. 덕분에 지금껏 좋은 선생님들이 손을 잡아주셔서 정체성 혼란이나 상처에서 비교적 잘 벗어날 수 있었죠.”
영문으로 단편소설을 써서 발표한 적도 있다는 그는 요즘은 프리랜서로 영상제작 프로듀서 작업과 통역 활동을 하고 있다. “80년대엔 한국에 관한 기사만 한 줄 나오면 오려서 오랫동안 간직하며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달랬다”는 그는 최근 올림픽축구대표팀과 알제리의 친선경기 때 통역을 맡았을 때 한국인으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얘기보다는 덴마크 한인 친구들의 사연을 더 널리 알려달라고 몇번이나 다짐을 했다. 현재 국내 입양인 단체는 미국계, 기독교계가 주도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유럽계 입양인들이 참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나 기관들도 있지만, 관리·감독이 소홀한 탓인지 입양인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구들이 보내온 입양 파일을 하나하나 보면서 막막해서 혼자 서럽게 울기도 했어요. 친부모를 찾을 확률이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해도, 같이 울어주고 손을 잡아주면서 한이나마 풀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김씨는 “한국인에게는 ‘한’을 ‘흥’으로 바꾸는 특유의 정이 있다는 라종일 선생님 말씀을 체험으로 공감한다”며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 기회가 생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제보를 받을 전자우편 주소(
kimyooree@gmail.com)도 공개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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