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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1 18:50 수정 : 2016.05.12 00:26

옥상두 시장. 사진 김경애 기자

[짬] 호주 스트래스필드 카운슬 옥상두 시장

“오늘부터 선거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오늘 호주 의회 사상 두번째로, 연방 상·하원이 동시 해산됐습니다. 상원 후보로 공식 출마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시드니 스트래스필드 카운슬 옥상두(63·사진) 시장이 지난 9일 보내온 메시지다. 지난해 9월 한인으로선 두번째로 지자체장에 뽑힌 그가 50여년 한인 이민사회에서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도전하는 것이다. 뉴사우스웨일스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새달 통합되는 스트래스필드·버우드·캐나다베이 등 3개 시의 후보다.

“한인 이민자들이 아웃사이더에서 플레이어로 호주 주류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물꼬를 튼다는 각오로 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파이’를 나눠달라고 요구만 해왔다면, 이제는 직접 파이를 만드는 책임도 함께 지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출장 방한 중에 한겨레신문사를 찾아온 옥 시장에게 정치 출사표를 던지는 각오를 미리 들어봤다.

 

1985년 기회의 땅 찾아 ‘맨손 이민’
스낵장사 등 생업하며 정치학 전공
“한인회·지역사회 소통 위해 출마”

2012년 한인 두번째 카운슬 시장에
한국 오가며 ‘코리아 가든’ 조성 추진
7월 한인 사상 첫 연방 상원의원 도전

경남 거제도 출신인 그는 부산고를 거쳐 1974년 서강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뒤 무역회사에 근무하며 결혼해 딸 둘을 둔 가장이던 85년, 그는 ‘기회의 땅’이라는 이웃의 권유로 호주 유학 이민을 감행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무모한 자신감 하나로” 낯선 이국땅에 내린 그는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며 뉴사우스웨일스대에서 정치학 석사·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가장으로서 생업을 하면서 공부를 하느라 무척 힘들었어요. 처음엔 아내와 함께 마켓에서 스낵 장사부터 닥치는 대로 했죠. 4살짜리 큰딸이 8개월 된 동생에게 엄마 노릇을 해야 했죠.” 지금도 부인은 시드니의 이탈리안 마을로 이름난 라이카트의 쇼핑센터에서 소매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컨설팅과 무역업에 종사하던 그는 2008년 한인 밀집지역인 스트래스필드 시의원 선거에 처음 나섰다. 재호주 한국유학생회 회장과 시드니한인회, 한-호문화재단 사무총장 등으로 공익 봉사활동에 앞장선 그를 보고 먼저 정당 쪽에서 공천 제안을 해온 것이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들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통해 오는 한국 대학생이 늘어나면서 한류 바람이 가장 먼저 퍼진 곳이 시드니였어요. 한인문화재단에서 2004년부터 몇년간 봄 페스티벌 행사로 ‘케이(K)-아이돌’ 콘테스트를 열었어요. 팝송을 따라 부르며 영어를 익혔던 경험을 되살려 음악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해보자는 취지였죠. 한국 방송사에서 우승자를 소개할 만큼 화제를 모았어요. 그래서 이곳 한인사회에서는 ‘케이팝’을 처음 작명했다는 자부심도 큽니다.”

아쉽게도 첫 도전에서 낙선했지만 그에게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호주의 정치와 선거 시스템을 피부로 익히면서 주류 사회와 소통의 필요성을 한층 절감하게 됐어요.”

덕분에 그는 2012년 9월 보수진영인 자유당 후보로 두번째 나서 인구 4만명 카운슬의 시의원 7명 중에 당당히 당선됐다. 지난해 9월에는 시의회에서 시장으로 뽑혔다. 2008년 이민 1.5세대인 권기범 시장에 이어 두번째였다. 우리와 달리, 카운슬의 시장은 임기 1년의 무보수 봉사직으로 약간의 회의 참가비와 차량만 제공된다고 했다. 시의 일반 행정업무는 ‘제너럴 매니저’가 담당한다.

“이민 30년 만에 시장으로서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수여하면서 ‘명예’를 실감했죠. 물론 생업과 사생활을 희생해야 하는 일이어서 힘듭니다. 하지만 시민권 한인사회의 숙원사업인 ‘코리아 가든’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코리아 가든 사업은 시드니 올림픽파크 인근 브레싱턴파크에 한국식 정원과 한국문화센터를 비롯해 회의장, 공연장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을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올 들어 매월 건립위원회를 직접 주재해 터를 확정지은 그는 지난달 출장 방한을 통해 ‘한국식 정원’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고 자매도시인 경기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을 비롯한 전남 담양 소쇄원, 경북 영주 국립산림치유원 ‘다스림’ 등 대표적인 정원을 두루 견학했다. “조만간 마스터플랜을 마무리짓고 사회적 기업 형태의 민간투자 유치를 위한 공개입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한국 건축가는 물론 기업이나 지자체의 참여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대일본규탄 한·중동포연대위원회의 한인위원장을 맡아 추진한 ‘한국인·중국인·호주인 3명의 소녀상’ 건립도 그의 과제 중 하나다. 스트래스필드시에 건립을 위한 터 제공을 요청했으나 지난해 8월 일본계 주민들의 로비와 반대로 일단 무산된 상태다.

사실 정치학을 전공한 그에게 정치활동은 꿈이자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10대 시절 정체성 혼란으로 갈등을 겪은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서였다. “힘든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지금은 잘 정착한 딸들을 보면서, 우리 2세들에게 ‘모국’을 만들어주는 것이 저를 비롯한 이민 1세대의 소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연방의회에 진출하게 되면 “한국 특유의 역동성을 정체된 호주 사회에 접목하는 고리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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