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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5 18:30 수정 : 2019.12.16 02:41

[짬] 시사만화가 조남준 회장

조남준 만화가. 강성만 선임기자

<반민특위전-청산의 실패, 친일파 생존기>(한겨레출판). 시사만화가 조남준 작가가 최근에 펴낸 역사만화다. 친일파 청산을 위해 1948년 10월 23일 발족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반민특위) 활동을 다뤘다. 제헌국회가 만든 법률에 따라 구성된 반민특위는 설립 초기만 해도 박흥식, 이광수, 김연수 등 거물 친일파를 잡아들이며 기세를 올렸으나 곧바로 친일파가 장악한 이승만 정부의 폭력적인 파괴 공작에 밀려 와해의 길을 걸었다. 친일경찰 노덕술과 최운하가 반민특위에 체포된 뒤 이승만 지시를 받은 경찰은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기도 했다. 반민특위가 조사한 682명 중 실형을 산 이는 7명에 그쳤다. 그마저도 얼마 안 가 다 풀려났다. 친일파 청산의 꿈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지난 13일 서울 경복궁역 근처 카페에서 조남준 작가를 만났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반민특위 실패가 가져온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1950~70년대에 걸쳐 친일파가 정계, 관료, 군대, 경찰, 경제계, 학술문화계 등을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 (그 뒤로) 친일파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두려운 일이 되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중) 강인철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는 “한국은 과거사청산 대상자들이 법률에 따라 설립된 청산기관을 폭력적으로 무력화한 세계 유일의 사례”(<시민종교의 탄생> 중)라고도 했다.

조 작가에게 출간 경위를 묻자 “오래전부터 4·3항쟁이나 5·18, 6·10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큐멘터리처럼 쉽게 푸는 만화를 내고 싶었다”고 답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고 하자 중3 때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를 꺼냈다. “광주 항쟁을 보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는 고향이 서울이다. 학교도 서울에서 나왔다. 광주는 왜? “80년 5월 저는 서울에서 할머니와 살고 있었지만 부모님과 형은 광주 중심지인 충장로에서 가구점을 하고 있었어요. 5·18 뒤 여름방학에 광주 부모님 아파트에 갔더니 거실 아파트 천장에 계엄군이 쏜 총탄 흔적이 세 개나 있었죠. 아파트 바로 위층 이웃 한 분은 밖에서 날아온 총탄에 돌아가셨다고 해요. 이 일로 국민을 탄압하는 나쁜 독재 권력과는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가면 데모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반민특위전-청산의 실패, 친일파 생존기> 표지

그때의 다짐은 현실이 됐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총학생회장을 했고, 학생운동을 하다 졸업장도 받지 못했단다. “한성대 회화과 2학년 때 경찰에 끌려가 72시간 동안 잠을 안 재우는 고문도 당했어요.”

그는 93년부터 <내일신문> <한겨레>와 <한겨레21> 등 여러 매체에 꾸준히 시사만화를 그려왔다. <한겨레21>에 연재한 만화는 <시사SF-조남준의 소셜 판타지>라는 책으로 묶어 내기도 했다. 지난해는 진보적 성격의 만화가단체인 우리만화연대 회장(임기 2년)도 맡았다. 이 단체 회원은 200여 명이다.

그는 책 서문에 “반민특위는 한 번의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썼다. “일제 강점기 상처가 지금도 있고 피해자도 엄연히 있는데 일제 식민 통치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잖아요. <반일 종족주의>란 책도 나왔고요. 이걸 보면서 친일파의 행적과 친일파 청산 실패의 역사를 명확히 다룰 필요를 느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저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에 물어봐도 반민특위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이번에 낸 ‘반민특위 역사만화’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음에도 단숨에 읽힌다. 대표적인 친일파 11명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반민특위에 대한 친일파의 조직적인 저항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영향도 있을 것이다.

반민특위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그는 이른바 ‘6·6 반민특위 습격사건’을 들었다. 서울 중부경찰서장이 경찰을 이끌고 반민특위를 습격해 특위 사법경찰인 특경대원들을 체포한 사건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대통령 지시로 경찰이 국회에 쳐들어가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보좌관을 체포해 고문한 사건이죠. 친위 쿠데타이죠.”

그는 반민특위의 실패를 보면서 “디제이 이후 민주정부에서 시도된 언론과 사학, 검찰 개혁 시도에 대한 저항이 떠올랐다”고 했다. “7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반민특위가 민족 분열을 불렀다고 했잖아요. 반민특위 발족 직후 <동아일보> 사설이 그런 논리였죠. 보복과 반목은 악순환을 부른다고 했어요.”

이승만 친일경찰 파괴 공작에 와해

반민특위 다룬 역사만화 최근 출간

친일파 11명 행적과 조직적 저항 등

“친일파 권력 끊임없이 확장 시도”

진보 성향 ‘우리만화연대’ 회장도 맡아

93년부터 ‘한겨레21’ 등에 시사만화

그는 친일파 권력의 토대는 지금도 튼튼하며 끊임없이 확장을 꾀하고 있다고도 했다. “친일파를 중용한 독재 정부가 몇십 년 지배했잖아요. 그들이 만든 시스템이 정말 강해 깨기 쉽지 않아요.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2002년 언론 개혁 때 목숨을 걸고 저항하더군요. 결국 언론 개혁은 실패했죠. 두 신문은 힘이 세 지금도 건드릴 수 없어요. 노무현 정부가 시도한 2005년 사학 개혁도 마찬가지죠. 지금도 사학 곳곳에 친일파 동상이 있어요. 이승만 정부 때 친일로 얻은 재산을 지키는 차원에서 친일 세력이 사학을 많이 세웠어요. 친일의 뿌리를 하나씩 뽑고 정리해야죠.”

화가가 되려고 회화과를 택했으나 만화로 진로를 바꾼 데는 사연이 있단다. “대학을 다닐 때 동아리방 벽에 사인펜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소재로 만화를 그렸는데 학생들 사이에 재밌다고 소문이 나 수십명이 그림을 보러 동아리방을 찾았어요. 그때 제가 만화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했죠. 만화가 그림보다 사람들한테 호소력이 있고 소통 능력도 있어요. 그림은 자본권력에 휘둘리잖아요.”

2015년 3월26일치 ‘조남준의 발그림’

지금껏 그린 시사만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컷을 묻자 그는 2015년 3월26일치 <한겨레>에 실린 ‘조남준의 발그림’을 들었다. 턱이 높은 계단에 힘겹게 매달린 한 학생이 지폐로 된 계단을 밟고 유유히 오르고 있는 다른 학생을 응시하는 장면이다. 글자는 하나도 없지만 단박에 입시가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현실을 풍자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나라 밖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국외 유명 만화 사이트에서 10대 만화로 꼽히기도 했죠.” 세월호 참사 다음 날인 2014년 4월 17일치 ‘조남준의 발그림’은 배우 심은경이 트위터에 공유해 상당한 반향을 얻었다. 그는 초록빛 바다 위에 “착한 바보들아/ 항상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했던 착한 아이들아”로 시작하는 11줄 문장을 한자씩 새겼다. “내가 세월호로 희생된 아이들 심정이 돼 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이 너무 착해 어른들 말을 너무 잘 들었다는 생각에 ‘착한 바보들아’라고 표현한 게 심금을 울린 것 같아요.”

2014년 4월17일치 ‘조남준의 발그림’

그의 시사만화에는 통계나 그래프가 자주 등장한다. “통계가 들어가면 만화가 재미없어요. 하지만 통계는 팩트 자료여서 전하려는 메시지 설득에 도움이 됩니다. 만화가 과장하고 뻥치는 것도 좋지만 팩트 제시도 할 수 있어야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상의 생활을 대입해 만화를 그리면 공감이 가장 큽니다.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상징적인 사물을 씁니다. 두번 째 방법이죠.”

대부분의 시사만화가에게 마감 공포는 숙명이다. 그도 다르지 않았단다. “마감하고 헛구역질을 자주 했어요. 지쳐서죠. 마감을 앞두고 사흘은 계속 머리를 쥐어짜지만 아이디어가 한 두 시간 만에 딱 나오는 경우는 없어요. 오후 6시가 마감이라면 늘 오후 4시쯤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죠. 그럴 때 마감을 재촉하는 전화가 오면 미칩니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을까? “따로 없어요. 매번 방식이 다 달라요. 아이디어를 구하려고 어떤 때는 인터넷 사진들을 계속 보기도 해요. 또 내가 수첩에 적어 놓았던 것들을 들추기도 해요. 그래도 안 나와요.”

시사만화가로 가장 신났을 때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었단다. “꼬집을 게 너무 많았죠. 정책도 정책이지만 그분이 이상한 말을 너무 많이 했잖아요.”

진보적 성격의 만화가단체인 우리만화연대 회장 조남준의 가장 큰 화두는 뭘까. “제일 중요한 것은 만화가의 권리를 찾는 것이죠. 노조적 성격을 갖는 단체를 만들어 만화가의 권익을 지키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에스앤에스와 유튜브 영향으로 출판 시장이 죽어 만화가들이 먹고살 수 없는 지경입니다.”

우리만화연대에는 웹툰 작가들도 있다. 웹툰은 안 그리냐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웹툰은 다음 회가 가장 중요해요. 계곡 물이 흘러 강이 되고 초원을 지나 바다를 만나잖아요. 그런데 웹툰에는 계속 계곡만 나와요. 자극적이죠.”

조남준 만화가.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등산 마니아다. 6천 미터가 넘는 산(에베레스트 지역 로부체 이스트 피크)을 오르기도 했고 3년 전에는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인 쏘롱라 패스(5416미터)를 홀로 넘다 폭설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겼단다. “제가 성격이 강한 편이라 암벽 등반이나 농구 등 위험하고 격렬한 운동을 좋아해요. 등산을 주제로 한 만화도 구상하고 있어요. 제가 겪은 재밌는 일들이 많거든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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