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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7 21:40 수정 : 2015.12.17 21:40

<문화방송> 아침드마 <내일도 승리>

황진미의 TV 톡톡

<내일도 승리>는 <폭풍의 여자><이브의 사랑>을 잇는 <문화방송>의 아침드라마이다. 전작들이 ‘막장드라마’로 악명이 높은 탓에 <내일도 승리>역시 ‘막장드라마’의 계보를 이을 거라 단정하기 쉽다. 물론 <내일도 승리>에 막장의 요소가 많은 건 사실이다. 남자의 배신, 은폐된 범죄, 재벌가 후계 구도, 출생의 비밀 등이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치 지구상의 인구가 십여 명도 되지 않는 듯 인물들끼리 우연히 마주치거나 얽히는 일이 잦은 것은 드라마의 질을 많이 떨어뜨린다.

하지만 <내일도 승리>는 기존의 막장드라마에 비해 반보 전진한 드라마이다. 일단 승리(전소민)는 비슷한 드라마의 인물들에 비해 ‘착해 빠져서 당하기만 하는 시기’를 빠르게 졸업한다. 승리는 임신한 아이까지 있었던 선우(최필립)에게 배신당하고, 의문의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뱃속의 아이를 잃고, 집안이 몰락하는 환란을 휘몰아치듯 겪는다. 하지만 재빠른 현실인식으로 선우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승리가 선우의 회사로 들어간 건 아버지의 도둑맞은 가업이자 자신의 재능인 간장 제조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이다.

드라마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완전히 걷어낸다. 결혼이나 연애를 통해 신분상승을 꾀하는 것은 오히려 남자이다. 가난한 집 장남인 선우는 수년간 자기 공부를 뒷바라지해주고 가족끼리도 모두 알고 지내던 승리를 한 달 만에 차버리고 재벌 딸 재경(유호린)과 결혼한다. 승리와 새로운 로맨스로 엮이는 홍주(송원근)는 ‘실장님’이 아니라 무려 ‘제비족’이다. 재경과의 결혼을 위해 선우는 관계를 폭로하겠다는 승리에게 울며 사정한다. 그렇게까지 하여 재벌의 사위가 되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다. 고부 갈등과 장서 갈등이 끊이지 않으며, 승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승리와의 과거를 재경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한다. 선우와 재경은 승리를 회사에서 내쫓기 위해 온갖 속임수를 쓰지만, 승리는 정직한 노동과 실력으로 승부한다. 또한 승리의 노동은 ‘제비족’으로 살아가던 홍주를 건강한 노동의 세계로 이끈다. 사기꾼이던 홍주가 승리에게 등 떠밀려 식당에서 일을 하고, 승리를 위해 “해고 철회” 피켓을 드는 모습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드라마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정반대인 평강공주 콤플렉스를 보여준다. 승리는 홍주의 과거 속에 숨어 있던 뜨거운 순정과 놀라운 능력을 끌어낸다.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을 통해, 홍주가 서 회장(한진희)의 숨겨진 아들임을 암시한다. 이로써 드라마의 향방은 분명해 보인다. 일찍이 아이까지 있었던 자신을 버리고 재벌의 사위가 된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재벌의 며느리가 되는 이야기가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 치정복수극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청춘의 덫>이 이 드라마의 원형판본이다. 그런데 <청춘의 덫>과 비교하면 <내일도 승리>의 정신은 대단히 건전하다. 승리는 배신한 남자를 ‘부숴버리기 위해’ 재벌가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노동과 전문성을 통해 서 회장에게 차츰 인정받고 있으며, 결혼 대상자로 최악의 조건에 놓여 있는 홍주와 사귀며 그의 삶을 이끈 것이 ‘출생의 비밀’이란 지렛대를 통해 재벌가 며느리가 되도록 운명 짓는 것이다.

승리는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자기 노동을 통해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일하는 여성’이다. 그의 옆에서 흔들리며 분열하는 것은 오히려 자본화된 삶을 쫓아 끊임없이 거짓을 행하는 선우와 재경이다. 연애와 결혼에 자기 운명을 거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잃었던 자아를 일깨우는 승리야말로 가장 여성주의적인 주체이다. 복수는 답이 아니다. 진정한 승리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승리는 그것을 아는 모양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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