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23 14:28
수정 : 2016.11.21 15:01
<그것이 알고싶다> ‘장항 수심원’ 악몽
격리 위주 정신장애인 정책 곱씹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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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폐쇄된 정신장애인 시설인 장항 수심원의 당시 원장. 그가 원생들을 때리고 죽인 뒤 암매장까지 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그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H6<그것이 알고 싶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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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스비에스) ‘장항 수심원의 슬픈 비밀’ 편은 19년 전 폐쇄된 정신장애인 시설 ‘수심원’의 현재를 통해, 격리 위주의 정신장애인 정책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충청남도 유부도에 위치한 수심원은 1974년부터 무허가로 운영되다가, 1995년에 사회복지법인으로 인가받은 정신장애인 시설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92년에 방송된 ‘인간의 조건-정신질환자 수용 실태보고’ 편을 비롯하여 4차례에 걸쳐 실태를 고발하였다. 1997년에는 8년간 수용되었다가 탈출한 신동석씨의 제보로 국회의원, 정신과 의사 등과 동행취재를 벌여 ‘잊혀진 죽음의 섬’ 편을 방송했다. 카메라에는 구타와 감금에 시달리던 원생들의 모습이 담겼다. 자신을 탈출시켜주지 않으면 죽게 된다고 호소하던 김삼식씨를 비롯해 9명의 원생이 취재진과 함께 섬을 나왔고, 시설은 한 달 만에 폐쇄되었다.
이번 ‘장항 수심원의 슬픈 비밀’ 편은 자화자찬이 아니라, 뼈아픈 반성을 담고 있다. 수심원에 6개월간 수용됐다가 1986년에 탈출한 정만식씨는 취재팀을 찾아와 원장의 살인에 가담했다는 죄책감을 털어놓았다. 당시 암매장된 사체가 5구나 나왔는데도, 폭행이나 살인에 대한 수사는 없었다. 원장 남매와 공무원들이 횡령과 수뢰로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뿐이다. 시설폐쇄 후 흩어진 원생들을 수소문한 결과, 상당수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망하였다. 생존이 확인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20년째 다른 시설에 수용되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사회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갈 곳이 없으며, 전문가들은 장기입원이 치료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진행자는 정신장애인을 시설에 격리한 채 방임해오다가, 문제가 불거지면 시설을 폐쇄하는 것으로 정의가 실현됐다고 믿은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반문한다. 아울러 정작 이들이 왜 가족에 의해 강제입원되었고, 수십년간 퇴원하지 못했으며, 시설에서 나온 후 대책 없이 사회에 버려졌는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장애인을 반드시 격리해야 할 위험한 존재로 보는 것은 언론이 만든 편견이며, 정신질환 입원기간이 선진국의 10배가 넘고, 강제입원 비율이 엄청나게 높은 것은 정신장애인 보호의 책임을 국가가 아닌 가족에게 지우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진행자는 시설 개선 정책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으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정책과 이를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지상파에서 이런 내용의 프로그램이 방송된 건 매우 뜻깊고, 시의적절하다.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이 정한 복지를 인정받지 못하며, 오직 정신보건법의 적용을 받아왔다. 그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이 19대 국회 막판에 통과되었다. 이름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로 바뀌었다. 새 법이 강제입원의 요건을 강화한데다, 법명에 ‘복지’가 언급되었으니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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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함께 수심원을 탈출한 김삼식씨는 10년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를 돌본 목사에 따르면 큰누나가 재산 욕심에 그를 수심원에 보냈고, 수심원을 나와서도 가족한테 돌아가지 못하고 곳곳을 옮겨 다녔다고 한다. 수심원을 탈출할 당시 “지옥에서 천국으로 탈출한 것 같다”며 환하게 웃던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건 누구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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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법 44조 2항에는 ‘경찰의 행정입원 신청 요청권’이 명시되어 있다. 경찰이 입법 과정에서 범죄 예방을 위해 정신장애인들의 강제구금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여, 행정입원 절차에 경찰의 역할을 삽입한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직후 경찰이 사건을 정신장애인에 의한 범죄로 규정하고, 강신명 경찰청장이 나서서 “경찰관이 치안활동 중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행정입원, 응급입원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다.
2000년대 이후 시작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이 정신장애인에게도 확대되어야 할 시점에, 경찰은 오히려 ‘대감금의 시대’를 열어젖히려 한다. 형제복지원과 수심원의 악몽은 오래된 미래인지도 모른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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