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23 10:00
수정 : 2017.12.23 20:00
[황진미의 티브이 톡톡
<슬기로운 감빵생활>(티브이엔)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피디의 후속작이다. 특정 연도를 배경으로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응답하라 시리즈는 뛰어난 예능감과 독특한 구성으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특정 세대의 추억을 소환하는 기획이자, 비슷한 형식의 반복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장점을 계승하면서 비판의 지점을 피해간 영리한 기획이다.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물려받은 것들이 많다. 야구가 등장하고, 지인의 딸이자 동생처럼 여겼던 여성과의 연애가 나온다. 또 남자주인공의 성격도 비슷하다. 주인공의 서사를 중심에 두면서, 독자적인 서사를 지니는 주변 인물들을 비중 있게 다루는 반(半)옴니버스식 구성도 비슷하다.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구성이지만, 재치 있는 편집과 효과음 등으로 몰입감을 높이는 것도 같다.
드라마는 대학가의 하숙집이나 처마를 맞댄 골목처럼, 사연 있는 인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생활세계로 감방을 채택하였다. 그동안 영화 <빠삐용>, <쇼생크 탈출>,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등 감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았지만, 주로 탈옥의 장소이거나 범죄의 인큐베이터로 그려졌을 뿐, 생활공간으로 그린 작품은 거의 없었다. 교도소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드라마는 기존 장르물을 비틀며 감방을 다르게 그리겠다는 포부를 드러낸다. 탈옥을 준비하는 듯 비장하게 움직이던 재소자들은 온수기의 온도잠금장치를 부순다. 팔팔 끓는 라면을 먹으며 바깥세상의 정취를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수형시설에 관한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감방생활을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국정농단 사태이후 박근혜를 비롯한 권력자들이 수감됨으로써, 수형시설의 처우나 특혜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것을 계기로 나온 기획인가 싶지만, 그보다 훨씬 먼저 준비된 기획이라 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감방 안의 인간 군상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드라마이다. 그런 의미에서 탈옥영화들보다 이광수의 소설 <무명>이나 신영복의 에세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가깝다. 감방은 법을 어긴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놓은 공간이지만, 법과 사회의 바깥에 존재하는 예외지대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하게 기존 질서가 작동하는 공간이며, 법과 자본과 폭력이 가장 응축된 형태로 힘을 발휘하는 공간이다. 영치금이 없는 노인 수형자는 비굴함을 견뎌야 하고, 목공소에서는 노동착취가 일어난다. 반입금지 물품이 비싼 가격에 유통되고, 상권을 장악한 공급책은 엄청난 권력을 지닌다.
또한 감방은 재소자의 사연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응축하여 보여준다. 드라마는 캐릭터 열전을 통해 이를 부각한다. 가령 백억원을 횡령한 죄목으로 들어온 고 과장은 가장 성실하고 정직하며 고지식한 인물이다. 그가 20년간 근무한 대기업은 회사 차원의 비리를 고 과장에게 덮어씌웠다. 감방에서 온갖 부당함과 맞서 싸우는 그가, 정작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순간, 드라마는 ‘인지부조화’라는 단어를 투척한다. 부대원 폭행치사의 누명을 쓴 유 대위는 또 어떠한가. 부대원들은 집단 괴롭힘을 모두 알면서도 묵인하고 은폐했다. 아버지의 권력을 믿고 부당한 폭력을 행사한 진범에 대한 수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영화 <신과 함께>와 더불어 군 의문사 수사의 문제점을 환기하는 텍스트이다.
드라마는 엄청난 시련과 불운을 딛고 성공했지만, 메이저리그 진출 직전에 인생이 추락해버린 김제혁 선수의 휴먼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는 교통사고와 암 투병을 딛고 재활에 성공하였으며, 오른손잡이였으면서도 왼손투수가 되었을 정도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의 입을 통해 알량한 자기계발의 논리를 풀어놓지 않는다. 취업준비생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지만 감방에 오게 된 것이 모두 공무원시험에 붙지 못한 자기 탓인 것 같다고 말하자, 김제혁은 “어떻게 더 열심히 사냐, 세상이 더 노력하고 애를 썼어야지…. 네 탓은 하지 마”라고 말한다. 드라마가 김제혁을 통해 말하는 ‘슬기로운 감방생활’의 요령은 별것 없다. 그것은 버티기 위해 화를 다스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드라마에 딱 하나 불만이 있다. 영화 <1987>에는 체포된 고문경관이 가족과 면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에게 아버지는 “사람이 죽었는데 별일이 아니라니?”라 반문한다. 아들의 안위가 아닌, 피해자를 생각한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오직 판사만이 김제혁의 유죄와 정당방위를 넘어선 행위를 말한다. 김제혁이나 주변 인물 누구도 죽은 자를 생각하지 않는다. 동생을 성폭행하려던 자이기에 죽어 마땅하며, 다시 그 상황이 와도 똑같이 했을 것이란 확신만 존재한다. 그의 뇌사와 사망은 김제혁의 앞날에 악재로 파악될 뿐, 그도 피해자일 수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는 한 번도 논의되지 않는다. 감방을 다룬 드라마이니만큼, 법과 윤리에 대한 균형감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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