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8 19:15
수정 : 2018.05.19 01:00
[토요판] 황진미의 TV 톡톡|개그콘서트
<개그콘서트>(한국방송2·KBS2)가 계륵 신세다. 전성기 때 시청률이 27.9%에 달했지만, 지금은 6%대에 머문다. 제작진은 나름 사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준호, 김대희, 장동민, 김지민, 신봉선 등 예전 멤버들을 그러모아 익숙한 꼭지들을 보여준다. ‘봉숭아 학당’, ‘대화가 필요해 1987’은 기존 꼭지의 재활용이고, ‘욜노 민박’도 노부부의 비위생적인 짓을 중심으로 한 익숙한 코미디다.
새로운 시도나 걸출한 신인은 안 보이는 대신, 게스트 활용이 크게 늘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 여러 명이 여러 꼭지에 투입된다. 최근 ‘올라옵쇼’, ‘비둘기 마술단’, ‘뷰티잉사이드’, ‘데빌스’, ‘밥 잘 사주는 예뻤던 누나’, ‘내시천하’, ‘편안한 드라마’ 등에 게스트가 투입되었다. 게스트의 출연은 양념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관심과 관객들의 환호를 끌어내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개그콘서트>에 대한 기사 중 상당수가 게스트 관련 기사들이다. 게스트의 출연을 염두에 두고 만든 듯한 꼭지도 있다. 방청객 참여 꼭지인 ‘올라옵쇼’는 마치 게스트 팬미팅 행사처럼 진행된다. 영화 설정을 패러디한 ‘뷰티잉사이드’는 변신한 연인의 모습으로 게스트들이 깜짝 등장하기에 적합하다.
사실 <개그콘서트>의 문제는 실험정신의 부족이나 ‘게스트 빨’에 의존한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풍자와 혐오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 최근 ‘욜노민박’에서 노인의 죽음을 웃음 소재로 삼고, 실제 아동을 출연시켜 이를 연기시켰다는 점에 행정지도가 내려졌다. 노인 비하만 문제 되는 건 아니다. 예쁘지 않은 여성을 향한 혐오도 여전하다. 드라마를 패러디한 ‘밥 잘 사주는 예뻤던 누나’는 유학 간 지 3년 만에 촌스러운 중년여성이 되어 돌아온 누나를 보여준다. 코미디는 젊고 예쁜 여성과 “식당 이모” 같은 중년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대비시킨다. 이는 마치 남성들에게 연상 여성에게 잠시 끌릴 수는 있지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어서” 나이 든 여성은 곧 늙어버릴 테니 낭만을 접으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더욱 지독한 혐오는 성소수자를 향한다. 코미디에서 내시를 조롱해온 역사는 깊다. 그동안의 조롱은 주로 남성 성기와 남성성의 ‘없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내시천하’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내시들이 여성 속옷을 입고 운동하는 동료에게 “너 그러다 남자 되겠다”고 말한다. 심지어 세자를 유혹해 중전이 되는 상상을 한다. 내시를 거세된 남성이 아닌,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게이’로 재현하는 것이다. 즉 트랜스젠더 여성과 게이의 범주를 뒤섞으며 ‘남성을 유혹하려는 음험한 존재’로 정체화한다. 이는 이성애자 남성들이 성소수자들에게 품는 ‘호모 포비아’의 핵심이다. 또한 남성 성기의 결여를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게이로 간주하는 것은 ‘이성애자 남성’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여성,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등을 모두 ‘남성이 아닌 그 밖의 존재’로 주변화하는 남근적인 사고이다.
‘기울어가’는 무대 장치를 이용한 슬랩스틱 코미디로, 예전의 ‘풀하우스’에서 여러 명의 출연자들이 좁은 집에서 부대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의 변형이다. 무대를 넓게 쓰는데다 출연자들의 움직임도 커서 현장 반응을 끌어내기 쉽다. 하지만 기울어진 바닥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기울어진 세월호 선실에서 흐느끼던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연상시킨다. 물론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화방송>(MBC)의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어묵을 먹는 장면에 세월호 속보 화면을 배경으로 쓴 것처럼 무신경한 감수성의 산물이다.
이런 지적들을 의식하는 듯한 꼭지도 있다. ‘편안한 드라마’는 심의 준수를 위한 자체 검열로 드라마가 제작 과정에서 변질되는 상황을 담는다. 평범한 대사가 혐오로 오인될까 두려워 엉뚱한 대사로 바뀐다거나, 여성혐오 발언을 수습하기 위해 ‘여자’를 ‘남자’로 바꾸니 동성애 코드가 튀어나오는 식이다. 지나친 심의로 코미디 만들기가 어려워진 현실에 대한 자조인가 싶지만, 실은 혐오를 문제 삼는 윤리적 기준 자체를 비웃는 것이다. 즉 혐오가 중요한 문제임을 공감하며 사회적 책임을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혐오 논란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다’며 어깃장을 놓는 식이다. 이는 변화된 사회의 가치관과 감수성하에서 제작진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인이기도 하다.
사실 현재의 매체 환경에서 <개그콘서트>의 입지는 매우 애매하다. 3초 만에 웃겨주는 인터넷 ‘짤방’은 물론이고, 유튜브, 인터넷 방송 등에 다양하고 실험적인 코미디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사적 완결성도 어느 정도 갖추고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만한 지상파 코미디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케이블 채널만 해도 심의에서 한결 자유롭다. 그래서인지 <코미디 빅리그>(티브이엔·tvN)의 경우 황제성, 박나래 등 막 나가는 캐릭터를 통해 ‘병맛 코드’의 웃음을 뽑아낸다. 물론 심의 탓만은 아니다. 실력 있는 개그맨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를 감수하는 연출자의 감각이 높은 덕이다. <개그콘서트>도 부디 변화된 사회적 환경에서 요구되는 제 몫의 역할을 찾기 바란다. ‘게스트 빨’로 연명하면서 혐오나 일삼는 시대착오적인 프로그램이라며 폐지를 논하기엔 예능인들의 인큐베이터라는 사회적 가치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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