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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6 08:54 수정 : 2018.06.16 10:53

에스비에스 제공
<기름진 멜로>(에스비에스)는 <파스타>(문화방송, 2010년)를 썼던 서숙향 작가의 로맨틱 코미디다. 전작에서 중식 요리가 폄하되었던 것을 만회하려는 듯, 수준 높은 중식 요리의 세계가 펼쳐진다. 당연히 요리와 요리 과정을 담은 화면이 ‘쿡방’의 쾌감을 안기고, 작가 특유의 달달한 로맨스가 기본 맛을 낼 터이다. 여기에 복수, 액션, 조폭코미디가 토핑으로 얹힌다. 캐스팅도 쫄깃하다. <마녀의 법정>(한국방송2, 2017년)의 원톱 정려원과 <김과장>(한국방송2, 2017년)에서 연기력을 입증 받은 준호가 주연을 맡고, <돈꽃>(문화방송, 2017년)에서 마성의 매력을 뿜던 장혁과 이미숙이 무려 조연으로 출연한다. 여기에 박지영, 임원희 등이 웃음을 담당하니, 재미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웬걸. 도통 재미가 없다. 시청률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유가 뭘까. 혹자는 <파스타> <질투의 화신> 등 작가의 전작들이 자기 복제되었음을 문제 삼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드라마가 총체적 나이브함에 빠져있는 것이다.

첫째, 로맨틱 코미디로서 나이브하다. 이들은 우연히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설득력은 별로 없지만, 모든 것을 단새우(정려원)의 순진미로 퉁치려 한다. 이런 백지 같은 설정을 상쇄하느라, 주인공을 처녀·총각이 아닌 것으로 두었다. 하지만 진짜 유부남·유부녀면 도덕적 금기를 깨야 되니까, 소심하게 남자는 결혼식을 했지만 혼인신고를 못했고 여자는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을 못한 것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이들을 모두 배신당한 피해자로 그린다. 도덕적 금기도 건드리지 않고, 식상함도 면하겠다는 얄팍한 꼼수다.

둘째, 복수극으로 나이브하다. 호텔중식당에서 억울하게 쫓겨난 서풍(준호)이 호텔 앞 중국집을 부흥시켜 복수한다는 서사지만, 복수의 계획이 딱히 없다. 자신이 개발한 조리법으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호텔중식당 가격의 십분의 일에 내놓으면 입소문을 통해 손님을 빼앗아올 수 있다는 게 계획의 전부다. ‘실력과 노력’만으로 거대자본을 이길 수 있다니, 그렇게 간단한 것이라면 <최강 배달꾼>에서 벌어졌던 그 많은 일들은 다 뭐란 말인가.

셋째, 폭력에 대해 나이브하다. 조폭 출신 사채업자 두칠성으로 분한 장혁은 순전히 멋진 액션을 보여주느라 캐스팅된 듯하다. 심심하면 펼쳐지는 13대 1의 격투에, 칼부림까지 등장한다. 서풍을 둘러싼 폭력도 만만치 않다. 호텔 직원들에게 두들겨 맞고, 주방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고, 조폭들이 강제로 그의 등에 문신을 새긴다. 심각한 폭력이지만, 드라마는 이를 스펙터클로 소비하거나 웃기는 장면처럼 처리한다. 가장 끔찍한 것은 서풍이 헤어진 여자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그는 오밤중에 여자의 침실을 찾아가 방문에 칼을 꽂는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낙태했던 사실을 안 서풍은 방문을 따고 들어가 여자와 새 남자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칼을 날린다. 새 남자가 “살인미수”라 일갈하지만, 드라마는 둘 사이의 사연을 모르는 남자의 흰소리로 치부하고, 서풍의 분개에 힘을 싣는다. “너 자신에게라도 사과하라”는 그의 말을 똑똑히 들려주면서. 만약 그 자리에 새 남자가 없었거나 그가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자가 진짜로 칼을 맞지 않았을까. 드라마는 여성이 느낄 공포나 안전 이별의 이슈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남자의 억울함만 강조한다.

넷째, 계급적으로 나이브하다. 드라마는 ‘착한 조폭’과 ‘착한 부자’를 내세운다. 두칠성은 서풍과 단새우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이다. 그는 살인 미수를 포함해 전과 3범이지만, 유부녀에게는 구애하지 않는 순정남이다. 드라마는 두칠성의 멋짐과 부유함을 그리지만, 조폭출신 사채업자를 미화하는 것이냐고 발끈하기엔 아직 이르다. 드라마는 단새우를 천진한 부잣집 딸로 그리며, 집안의 몰락에도 꿋꿋이 버티다 신분을 되찾는 ‘소공녀’의 서사를 밟는다. 단새우의 아버지는 저축은행장으로, 7천억 원 부실대출로 구속되었다. 물론 드라마는 그가 사기를 당한 것으로 그리며, 저축은행 도산으로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은 일절 그리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 부실대출로 저축은행을 도산시킨 금융사범과 조폭출신 사채업자 중 더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일반 통념은 둘 다 나쁘다고 보지만, 드라마는 둘 다 착하며 이들의 부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단새우가 말을 타는 부잣집 딸이고, 그를 ‘아가씨’라 부르는 가사 도우미와 운전 기사가 단새우 모녀의 곁을 지키며 돕는 것을 어찌 보아야 할까. 신분제 사회인가. 정유라 관련 기사나 한진그룹의 ‘갑질’ 기사를 볼 때, 사람들은 그들의 인성을 악마적으로 상상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들의 인성이 아니다. ‘갑질’을 가능케 하는, ‘갑과 을’이 있는 구조자체다. 그들이 단새우처럼 순진한 인성이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동네 중국집 주방에서 사랑을 꽃피우던 <최강 배달꾼>(한국방송2, 2017년)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조회를 만들어 거대자본에 저항하는 이야기였다. 로맨스 역시 ‘탈조선’을 꿈꾸던 여자가 남자의 뜻을 지지하여 함께 자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그렸다. 반면 <기름진 멜로>는 여자를 빼앗기고 직장에서 쫓겨난 서풍의 복수극을 표방하면서도, 그를 짓밟는 힘의 실체를 그리지 못한다. 몽롱한 계급의식 속에서 서풍은 떠난 여자에게 젠더폭력이나 휘두르고, 드라마는 백 년 전의 <키다리아저씨>와 <소공녀>의 정서를 답습할 뿐이다. 촛불혁명 이후에는 이제 이런 반동적 텍스트는 그만 만들고 그만 봐야 하지 않을까. 백년 세월이 아깝다.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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