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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14 04:59 수정 : 2018.07.30 22:47

황진미의 TV 톡톡

<밥블레스유>(올리브 채널)는 최화정·이영자·송은이·김숙이 출연하는 새로운 ‘먹방’(먹는 방송)으로, 반응이 뜨겁다. 수많은 ‘먹방’과 ‘쿡방’(요리하는 방송)들 틈에서, 무엇이 새로운 걸까. 우선 음식들은 평범하다. 간편 야식에 속하는 간장 국수, 너무나 대중적인 김치찌개, 약간 비싼 메뉴가 간장게장 정도다. 형식이 특별하지도 않다. 그냥 네 여자들의 식사와 대화가 전부이다. 프로그램의 가치는 오직 캐릭터에 달려있다.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이 일생동안 구축한 캐릭터가 프로그램에 잘 녹아든 덕분이다.

<밥블레스유>는 누군가 머릿속에서 짜낸 기획이 아니다. 여성 예능에 대한 요구와 엎어진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기획이다.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에는 간간이 ‘먹부림’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작년 10월에는 김숙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스엔에스)에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와 밥을 4차까지 먹었다”고 썼는데, 당시 내로라하는 대식가들도 “밥으로 4차는 못간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던 차에 <김생민의 영수증>과 <전지적 참견시점>이 악재를 겪으며, 송은이, 김숙, 이영자가 억울하게 하차하자, 에스엔에스에는 이들이 뭉쳐서 그냥 밥 먹고 수다만 떨어도 재밌는 방송이 될 것 같다는 진언들이 올라왔다. 새싹 피디(PD) 송은이는 이를 놓치지 않았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원래 친한 사람들끼리 계모임 하듯 식사하는 모습을 담되,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처럼 시청자 사연을 받아 ‘음식으로 고민 해결’이라는 미션을 곁들이는 것이다.

<밥블레스유>가 ‘먹방’으로 지니는 가치는 음식을 삶의 맥락에 위치시키는 점이다. 그동안 수많은 ‘먹방’과 ‘쿡방’들이 있었지만, 요리나 먹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밥블레스유>는 함께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환기시키며, 어떨 때 누구와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를 말한다. 살면서 맛있는 음식이 주는 위로와 힘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며 원래 캐릭터대로 말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밥블레스유>는 <알쓸신잡>과 비견된다. <알쓸신잡>이 중년 남성들이 모여 온갖 지식과 교양을 뽐내는 ‘인문학 먹방’이었다면, <밥블레스유>는 중년 여성들이 모여 욕망의 해방과 일상의 위로를 전하는 ‘여성주의 먹방’이라 할만하다. 물론 프로그램에는 ‘여성주의’란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성주의 먹방’이라 할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비혼 중년여성들의 삶을 롤 모델로 보여준다. 이들은 40대 중반부터 60살로, 각자 개성과 커리어를 지닌 채 정글 같은 방송환경에서 살아남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결혼을 거부한 채 살고 있다. 물론 모든 비혼 중년여성들의 삶이 그들처럼 풍요롭지는 않다. 하지만 그동안 비혼 중년여성의 삶은 비가시화 되었고, 결혼하지 않은 채 나이 드는 여성의 삶이 고독하고 비참할 것이라는 통념이 널리 퍼져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이들이 건강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롤 모델이 된다. 지상파 방송에서 밀려났던 송은이는 “나랑 김숙은 아이와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을 못한다”는 뼈있는 농담을 들려주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육아를 보여주거나, 토크쇼에 나가 시어머니 욕을 해야 하는데 소재가 없다는 것이다. 왜 여성 예능인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 그뿐이었을까. 비혼 중년여성들의 삶이 그 자체로 재미있을 거란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둘째, 여성의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을 해방시켰다. 그동안 여성의 식욕은 규율당해 왔고, 여성의 말은 폄하되어 왔다. 진 킬본의 말처럼, 젊은 여성들에게 날씬하고 작은 소녀처럼 되라고 압박하는 것은 ‘부드럽게 여성을 죽이는 법’이다. 이는 역으로 여성의 힘과 자유에 대한 두려움을 방증한다. 김숙은 첫 회에서 “브라자 풀고 같이 먹어요”란 구호로 짜릿한 해방감을 안겼다. 대식가인 최화정이 날씬함을 유지하는 것은 체질 덕분이다. 이는 저체중의 몸매를 강요받는 걸그룹에게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라는 이중구속을 안겼던 최악의 ‘먹방’ <잘먹는 소녀들>과는 양상이 다르다. 일생동안 ‘대식의 요정’임을 증명해낸 최화정이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주문을 외울 때, 다이어트의 강박은 녹아내린다. 최화정과 이영자의 몸이 다른 것은 체질 차이이지 다이어트 유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밥상머리 여자들의 대화는 쓸데없는 수다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관계를 보듬고 위로를 안기고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의 말’로 격상된다.

셋째, 여성과 음식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다. 여자들끼리 밥 해먹고, 여자들끼리 밥 사먹는다. 이성애 규범에 의하면, 여자가 하는 밥은 가족을 위한 밥이요, 여자의 외식은 남자가 사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화정의 요리는 가족이 아니라 후배들을 먹인다. “신이 모든 곳을 돌볼 수 없어서 엄마를 주셨듯이, 우리에겐 화정언니를 주셨어”라는 송은이의 말은 모성이 아닌 자매애로 확장되는 보살핌노동과 여성의 임파워먼트를 말해준다. 또한 김숙의 맛집 투어는 여성의 외식이 내가 사먹는 밥임을 뚜렷이 각인시킨다. 여기에는 여자의 집밥을 먹는 남자나, 여자에게 밥 사주며 유세떠는 남자의 자리가 없다. 남자들은 아직도 더치페이 운운하며 역차별을 말하지만, 여자들은 이제 남자 없이 잘 먹고 잘 살면서 자매들과 함께 즐겁게 나이 들어가길 꿈꾼다. 가여운 남자들이여, 그대들에게도 부디 밥의 축복이 함께 하길!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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