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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21 21:03 수정 : 2018.10.01 18:26

최근 방영한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88/18>(한국방송·KBS)은 올림픽을 꼭짓점으로 한 1980년대의 사회문화사를 담는다. 형식이 대단히 실험적인데, 기존의 방송 다큐멘터리와 달리 내레이션이 없다. <한국방송>에 보관되어 있던 방대한 분량의 영상자료 중 골라낸 장면들을 이어붙이고, 현재 인터뷰를 곁들였다. 사용된 영상자료는 뉴스, 스포츠 중계, 토크쇼뿐 아니라, 코미디, 드라마, 영화 등도 포함된다. 실제 기록영상과 픽션의 장면을 넘나들지만, 영상의 출처도 밝히지 않는다. 편집은 거칠고 설명은 불충분하다. 그러나 파편적인 이미지들이 충돌하고 불협화음을 내면서 새로운 의미들을 발생시킨다.

가령 이런 식이다. 시작부터 아무 설명 없이 5공 청문회에서 “5공 실세”로 지목당하는 젊은 허화평의 기록영상과 그 장면을 노트북을 통해 보는 늙은 허화평이 나온다. 기존의 방송 다큐멘터리라면, 현재의 허화평을 비춰주며 “그는 5공 실세였다”라는 내레이션을 깔았을 것이다. 자막도 설명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 키워드를 제시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용으로 사용된다. ‘우리의 미래를 바꿀 단 하나의 메가 이벤트-88올림픽’ 등의 자막이 독특한 서체로 등장한다. 복고풍의 자막은 오래된 화면의 일부인 양 녹아들어,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와닿는 느낌이다.

형식의 파괴 못지않게 내용도 충격적이다. 광주학살의 현장에서 <한국방송>을 못미더워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거쳐 전두환 대통령 취임을 낯 뜨겁게 찬양하는 자사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독재에 부역했던 언론사로서 통렬한 반성과 자조의 뜻을 담은 듯 보이지만, 그보다는 당대를 정직하게 비춘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태웅 피디는 <한국방송> 스포츠국 소속으로 <천하장사 만만세> <공간과 압박> <숫자의 게임> 등 자신만의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사람으로, 부역언론의 역사로부터 자의식이 한발 떨어져있다.

프로그램은 1980년대 영상물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올림픽이 마법의 주문으로 통했던 블랙코미디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전두환 정권은 광주학살의 죄과와 44%라는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타개하기 위해 아무런 준비 없이 올림픽 유치에 뛰어들었다. 하필 한·일전이 되어버린 유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올림픽 동원 체제에 전 국민을 몰아넣을 수 있었다. 올림픽은 온갖 사회 불만을 틀어막는 재갈로 사용되었으며 정경유착을 심화시켰다. 스포츠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전두환은 재벌들에게 각 종목의 후원을 맡기고, “금메달을 많이 따면 세무조사를 안 하겠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정경유착의 고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 올림픽을 위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3저 호황에서 수출로 벌어들인 자본을 내수로 돌리게 하는 매개로 작용했다. 올림픽대로와 한강 개발은 강남 개발을 본격화시켰으며, 지하철 개통이 부도심의 개발로 이어졌다. 물론 도시재개발사업의 이면에는 <상계동 올림픽>으로 대표되는 철거가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짓밟는 폭력이었지만, 모든 것이 ‘도시 미관’과 ‘외국인의 눈’이라는 말로 정당화되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완전한 공염불로 남은 것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으로 대표되는 건축물과 올림픽 중계를 위해 시험적으로 도입되었던 해저 광케이블은 이후 엄청난 문화 인프라가 되었다.

이것은 굉장한 역설을 품고 있다. 거짓 프로파간다로 출발하였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믿게 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올림픽으로 틀어막았던 사회갈등들이 1987년 민주항쟁으로 터져 나왔을 때, 전두환 정권은 올림픽이라는 대의에 발목이 잡혀 더 이상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 없었다. 마술쇼를 벌였던 유리겔라가 올림픽 후 세계평화의 도래를 이야기한 것은 사기극 같았지만, 동서화합이 이루어졌던 서울올림픽 이후 냉전이 종식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역설은 ‘아! 대한민국’을 부른 정수라의 인터뷰로 잘 요약된다. 정수라는 “가사가 당시 실제 상태와 맞지 않는데,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맞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윤시내의 노래 ‘기억할 수 있는 건 모두 잊었다오’를 들려주며 시작된 프로그램은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이 오면’으로 끝맺는다. 다가올 21세기를 두고, 전쟁이 사라지고 통일이 되고, 세계 10대 강국에 골고루 잘사는 나라가 될 거라고 말하는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폭압의 1980년대였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할 만한 단 하나의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일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정서이나, 최근의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떠오르는 희미한 설렘이 실로 낯설게 느껴진다. “그 후, 꿈꾸던 세상은 안녕하신가요?”라는 화두를 길게 안고 가고 싶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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