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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17 04:59 수정 : 2018.11.17 15:33

한국방송 제공

<죽어도 좋아>(한국방송2)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오피스 드라마이다. 드라마는 원작이 지닌 타임루프 설정의 ‘병맛’을 살리면서, 원작과는 다소 다른 캐릭터와 에피소드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낸다. 무난하게 회사생활 하는 것이 목표인 이루다(백진희)는 죽이고 싶은 상사 강진상(강지환)이 저주를 받고 죽으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고, 강진상을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백진희, 강지환, 인교진, 이병준의 맛깔나는 연기와 재치 있는 연출이 큰 웃음을 준다. 리얼한 직장생활의 묘사도 공감되거니와 진상 상사가 골백번 고쳐죽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안긴다. 여기에 이따금 터지는 사이다 발언은 감동을 더한다.

시작부터 굉장하다. 의문의 공간에 직장 상사들이 갇혀 있고, 이루다가 이들을 심판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잘난 척을 해대는 강진상 팀장에게 화가 폭발한 이루다는 “사형”을 외치며 불 속으로 날려버린다. 물론 꿈이다. 눈을 뜬 이루다는 여느 때와 같이 강 팀장의 잘난 척에 시달리며 출근을 한다. 중요한 행사에서 큰 실수가 벌어지자, 팀 전체가 문책을 당하는 자리에서 강 팀장은 팀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만 쏙 빠져나간다. 강 팀장의 행태에 치를 떨던 이루다는 회식자리에서 혼잣말로 죽으라고 욕을 한다. 그러자 진짜로 강 팀장이 죽는다! 울다 눈을 뜨니, 다시 같은 날 아침이다.

타임루프 설정은 <사랑의 블랙홀> 이후 <엣지 오브 투모로우> <하루> 등 무수한 작품에서 변주되어, 하위 장르가 되었다. <사랑의 블랙홀>에서 반복되는 하루를 살게 된 주인공은 권태에 시달리다가 사랑을 얻기 위해 점점 더 나은 존재가 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주인공은 전쟁터에 던져진 뒤 무수한 죽음을 반복하며 마침내 전쟁영웅으로 성장한다. <하루>의 주인공은 딸의 사고를 막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시도해본다.

더 이상 색다를 것이 없는 타임루프 설정이지만, 이를 오피스물에 적용하니 묘미가 살아난다. 사실 타임루프가 가장 실감나는 상황이 직장생활이기 때문이다. 직장이라면 누구나 어제와 구분되지 않는 오늘을 겪는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무한반복된다는 현상은 신기한 환상이 아니라 일상에 가깝다. 요컨대 타임루프는 우리네 삶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는 비유이고, 타임루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주인공은 이를 자각하고, 어제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에 가깝다.

이루다도 무수한 변주를 경험하며 차츰 달라진다. 이루다는 전철에서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던 하루”라는 진부한 기관사의 멘트에 귀를 막는다. 하지만 그 멘트는 “주위에 대한 관심과 작은 시도가 나와 주변 사람들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훌륭한 문장을 위한 서두였다. 이루다는 타임루프를 겪으며, 그 말의 의미를 새롭게 성찰한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 사람만이 비로소 내일을 맞을 수 있다는 뜻임을 알게 된 이루다는 사건을 낱낱이 되짚는다. 관성적인 사고로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고, 미처 살피지 못했던 주위 사람들을 돌보게 된다. 이루다는 마침내 만삭의 워킹맘을 궁지에 몰아넣고 뻔뻔하게도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해 ‘맨스플레인’을 해대는 강 팀장의 멱살을 잡고 하극상의 일갈을 퍼붓는다. 마치 내일이 없다는 듯한 이루다의 용맹한 행동에, 강 팀장은 죽음을 면하고 마침내 이루다의 하루가 바뀐다!

이루다는 타임루프에서 벗어나지만, 회사생활은 더욱 힘들어진다. 아예 이직을 결심한 이루다는 다시 몇번의 반복된 날을 경험하며, 면접에 쉽게 합격한다. 하지만 이직을 해도 직장생활의 어려움은 마찬가지일 것이고, 강 팀장이 죽으면 다시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생각에 이루다는 강 팀장의 죽음을 막기 위해 회사의 꼼수를 폭로해버린다.

이루다의 폭로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몇번의 실패와 반복을 겪으며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고 이들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던 상황들이 변화된다. 특히 모두의 미움을 살지언정 원리원칙에 입각하여 입바른 소리를 해대던 강 팀장의 면모가 회사의 비리와 맞서는 상황에서는 전혀 다르게 부각된다. ‘회사는 인격이 없고, 오직 증식만을 원한다’는 ‘자본론’적인 통찰을 지녔지만 노동자를 감시하는 중간관리자 역할에만 충실하던 그가 회사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직원들에게 “뭐든 소리를 내서 의사를 표하라”는 선동의 연설을 하고, 내부고발을 깔끔하게 수행하는 장면은 아찔한 감동을 안긴다.

강 팀장 역시 변화된 상황을 겪으며, 이루다의 타임루프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환영처럼 떠올린다. 자신의 무수한 죽음을 고통스럽게 떠올리게 된 그가 이제 다른 존재가 될 것인지, 그의 앞에 나타난 구조조정 전문가 유시백(박솔미)과는 어떤 대결이 펼쳐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드라마의 메시지는 이미 훌륭하게 전달되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제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용기를 내는 일은 다른 차원의 우주를 열어젖히는 일이라고. 그것만이 윤회의 무간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견성의 길이라고.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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