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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5 16:59 수정 : 2019.11.16 02:31

황진미의 TV 톡톡

<브이아이피>(VIP)는 백화점의 브이아이피 전담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린 오피스물이다. 장나라 주연에 패션 등 화려한 볼거리도 많으며, 불륜 등 자극적인 소재가 있으니 화제가 되려니 생각할 테지만 드라마의 진정한 가치는 따로 있다. 드라마는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이 응축된 브이아이피 전담팀의 업무와 불륜이란 소재를 통해 ‘화려한 겉모습 속에 감춰진 절박한 현실’을 보여준다.

혹자는 드라마가 브이아이피 전담팀을 통해 1% 상류층의 민낯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지 않고, 오피스 내 불륜녀 찾기 ‘떡밥’을 던지는 게 괴이쩍으며, 두 요소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한다. 또 어떤 이는 여성혐오를 감지하기도 한다. 양극화의 모순을 사치스러운 여성의 소비로 이미지화하고, 남자 한명을 두고 동료 여성들끼리 경쟁하는 구도가 감지되며, 부사장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승진했다는 여성이 등장하는 등 여성혐오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겉으로만 본다면 충분히 그런 오해를 품을 수 있다. 몇가지 문답을 통해 오해를 풀어보자.

첫째, 왜 브이아이피 전담팀인가. 드라마가 브이아이피 전담팀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1% 상류층의 민낯이 아니다. 드라마는 브이아이피에게만 제공되는 화려한 서비스를 보여주긴 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더 세심하게 그리는 건 이를 제공하는 감정노동자들이다. 그들은 브이아이피들의 억지스러운 요구에 맞추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드라마는 이들의 피로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의 허무와 균열을 포착한다. 부자를 상대하는 노동자들은 고객이 재벌인지 졸부인지, 가짜부자인지, 부자에게 딸려온 자인지 등을 알아보고 미묘하게 차별한다. 브이아이피 전담팀의 현아(이청아)는 고객을 차별하는 노동자를 적발하며, “나는 이들과 다른가?” 반문한다. 드라마가 브이아이피 전담팀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극단적인 감정노동이 요구되는 곳이자, 자본주의의 모순이 내적 분열을 일으키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내면이다. 이들이 느끼는 외화내빈의 위화감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자들이 겪는 곤경의 본질이다.

둘째, 왜 불륜인가. 드라마에서 불륜은 멀쩡한 겉모습에 가려져 있던 진실을 탐문하는 장치로 쓰인다. 완벽한 직장상사와 만나 특별한 사랑을 이룬 줄 알았던 정선(장나라)의 결혼생활은 “당신의 팀에 당신 남편의 여자가 있어요”란 문자 한통으로 ‘불신지옥’에 빠진다. 남편을 뒤쫓고, 팀의 동료를 의심하게 된 정선을 따라 시청자들도 이들의 면면을 살핀다. 그런데 이들의 사정이 외화내빈의 극치다. 미나(곽선영)가 사무실을 비우고 달려간 곳은 유치원이다. 연년생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미나는 독박육아와 승진 누락으로 미치기 직전이다. ‘내추럴 본 부잣집 딸’로 명품의 소비감각을 꿰고 있는 현아가 여관방에 든 이유는 집안이 쫄딱 망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빚에 몰려 도망 다니고, 추심업자가 현아의 직장에 찾아온다.

셋째, ‘소파승진’ 했다는 유리(표예진)는 여성혐오적 캐릭터인가. 식품매장 시식코너에 있던 계약직 고졸사원 유리가 브이아이피 전담팀에 발령받자 소문이 무성하다. 드라마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밝히지 않으며, 가난한 유리가 명품 백을 꺼내 들고 호텔에 가는 장면을 짧게 보여준다. 또한 “여자는 남자의 150%를 일해야 인정받는데, 저런 사원이 있으면 여자는 쉽게 승진할 수 있다는 편견을 부추긴다”는 여성직원의 말도 들려준다. 즉 드라마는 ‘소파승진’의 가능성과 그에 대한 비판도 십분 인정하면서 당사자의 내면에 접근한다. 유리는 자신을 배척하는 직원에게 “처음 가져본 기회”라고 토로한다. 모두 그를 비난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전혀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는 말이 폐부를 찌른다. “물러설 곳이 없다”는 그의 절박함은 결국 상대를 움직인다.

드라마가 유리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쉽게 산다고 비난받는 여성’의 진실이다. 사내 불륜이 적발되면 쫓겨나는 분위기라지만 도덕적 비난도 권력이 없는 자에게 집중된다. 정작 부사장은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으니 말이다. 유리는 도덕적 비난에 짓눌리기보다 생존의 의지를 드러낸다. 이는 세린(유빈)을 보고 감응받은 것이다. 세린은 백화점 최고 매출 고객으로, 인기 유튜버이자 28살의 쇼핑몰 대표다. 하지만 그도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다. 세린은 빚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에게 3억원을 더 빌려 명품 쇼를 연다. 쇼는 여론의 비난을 받지만 매출은 대박난다. 비난은 구매력 없는 자들의 몫이었고, 구매력이 있는 자들이 모방소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세린이 쓰고 나온 자체 브랜드 선글라스가 가장 많이 팔렸다. 가장 만만하게 살 수 있는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선망과 소비욕망을 정확하게 꿰뚫은 세린은 ‘사즉생’의 각오로 덤볐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노동과 소비의 진풍경은 근면과 검소를 미덕으로 여기던 산업화 시대의 도덕률과 엄청난 괴리를 보인다. 드라마는 외화내빈의 자본주의적 실상을 살아내는 여성노동자들의 살얼음판 같은 삶을 보여준다. 결국 미나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가출한다. 지난 7월 종영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티브이엔)가 멋진 언니들이 보여주는 근미래적인 낙관을 품은 드라마였다면, <브이아이피>는 현실의 모순과 악전고투하는 여성들이 각성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이야기를 보여주리라 기대된다.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진 채”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골고다 언덕을 넘는 자매들에게 응원의 인사를 나누고 싶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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